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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밍북 Jun 30. 2023

사랑을 향한 수고로움을 쏟아낸 후 터져 나오는 탄식

읽는 연극 에세이11 사랑의 헛수고 

사랑을 향한 수고로움을 쏟아낸 후 터져 나오는 탄식, 모두 헛수고였다네  

작품: 사랑의 헛수고 (Love's Labour's Lost)     


                                                                                                                           글: 노운아      

 

 셰익스피어 극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전부터 나는 이걸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비극이 아니라 왜 희극을 읽어야겠다고 했는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혼란스럽고 어려운 플롯을 감상하며 마치 시험 문제 풀 듯 분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관한 자괴감, 다른 한편으로는 플롯이 실종된 이야기에서 대유희만 느끼면 그만이라는 세태 앞에 오는 슬픔, 이러한 것들에서 빠져나와 ‘단순 유쾌함’을 느끼고 싶어서 ‘희극’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왜 또 셰익스피어일까 하는 물음이 뒤따라오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의 설렘을 간직하고 있다면 ‘희극’에 있어서도 셰익스피어를 다시 선택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지만지 드라마 도서 겉표지 (김미예 옮김)

 이 희극의 이야기 구성은 복잡하지 않다. 큰 이야기 틀은 ‘나라비아’의 왕과 그 신하 3명이 프랑스 공주와 그녀의 시녀 3명을 두고 벌이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금욕 맹세, 사랑에 빠짐, 그리고 구혼으로 형성되어 있다. 거기에 이 이야기를 더욱 감미롭게 해 주는 주변 인물들이 위에 언급한 주요 등장인물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작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은 코스타르드라는 광대의 농간과 마지막 5막에서 펼쳐지는 ‘극중극’이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극중극’에는 9명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프랑스 공주와 그 여인들을 향해 마치 재미있는 놀이로 가장한 구애의 유희를 선보인다. 이 희극은 첫 막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을 향한 맹세’의 이야기가 계속 진행된다. 이것이 예감하는 것은 과연 ‘사랑을 향한 맹세를 하는 판’이 청혼 성공으로 이어질까 하는 의심이다. 물론 대답은 아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고로움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탄식이 독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올 터. 우리는 이것을 사랑의 헛수고라고 조용히 읊조릴 수 있게 된다.      

 사랑의 맹세가 헛수고에 지나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 희극이 쓰인 지 대략 429년이 지났어도 이 작품이 읽히는 것은 여전히 우리는 사랑의 맹세를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하면서도 어느 순간 이것이 과연 할 만한 수고로운 일인가에 관한 의구심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을 흘려보내고 있다. 의구심은 이제 어느 정도 ‘그것은 어쨌든 헛수고였다’는 쪽으로 확신이 기울어지고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의 순간이 오면 다시 냅다 맹세하는 이상한 흐름에 현혹되고 있다. 아주 기묘하고 현란한 헛수고이다.      


 이 극의 주요 등장인물은 이러하다. (큰 이야기 틀을 지지하지 않는 인물은 제외)      


-페르디난드: 나바라의 왕

-베로네, 롱가비예, 두마인: 페르디난드의 신하      

-프랑스 공주

-로잘린, 마리아, 카타린: 프랑스 공주의 시녀      

-코스타르드: 광대 

사진 출처: Royal Shakespeare Company

 페르디난드와 그의 신하 3명이 1막에서 금욕 맹세를 하는 장면으로 연극이 시작된다. 여자도 만나지 마라, 학문만 해라, 모든 것에 금욕하고 잠도 자지 말라는 등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페르디난드는 신하에게 강요한다. 하지만 베로네는 다른 두 명의 신하와 달리 페르디난드가 요구하는 금욕 맹세에 반대를 내비친다.     


<P9 베로네의 대사 중 일부>  

    

이 기간 동안 여자를 만나지 마라, 
이건 조항에 넣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다,
게다가 매일 한 끼만 먹는다,
이것도 조항에 넣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세 시간만 잔다, 
낮 시간에는 조는 모습을 보이지 말 것, 
밤새 자건, 반나절을 밤처럼 지내건 
해가 될 게 없다고 전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조항에 넣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 이런 것들은 소득도 없는데 지키기는 무척 힘든 일들입니다. 
여자도 만나지 마라, 학문만 해라, 금욕하고도 잠도 자지 마라.      


  왕과 베로네의 설전이 오고 가는 가운데 ‘덜’ 경관이 ‘아르마도’의 소식을 가지고 온다. 그 편지의 내용은 하케네타라는 여인이 척박한 광대 코스타르드와 북북동쪽에 있는 정원에서 어울려 나뒹굴었다는 것이었다. 그건 왕이 추구하는 금욕을 위반하는 행위로써 페르디난드 왕은 코스타르드에게 일주일간 쌀겨와 물만 먹어야 하는 금식 형벌을 내린다. 이에 코스타르드는 의미 있는 말을 한다.      

사진 출처: Royal Shakespeare Company


<P26 코스타르드 대사 중 일부>      


저는 진실 때문에 욕을 보고 있습니다. 진실인즉, 하케네타 하고 있다가 체포되긴 했지만 하케네타는 진짜 처녀거든요. 그러니 고난의 쓴잔을 기꺼이 마시겠습니다. 고난을 겪으면 언젠가는 미소 지을 날이 있겠지요. 그때까지 슬픔이여, 진정하라.      


 코스타르드가 말한 ‘진실’은 사실 하케네타와 사랑에 빠진 대상이 그 자신이 아니고 편지를 왕에게 보낸 ‘아르마도’였다. 그러나 아르마도는 군인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아주 천박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광대 코스타르드를 이용해서 이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르마도는 하케네타에 빠진 자신의 상태를 낯간지러운 대사로 이야기하고 있다.        

        

<P35 아르마도 대사 중 일부>      


노래를 불러라, 얘야. 내 정신은 사랑의 무게로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하지만 아르마도는 사랑에 빠진 사실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을 여성 비하와 옛 영웅들의 로맨스에 빗대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졌다는 식으로 회피하려 든다.      

     

<P39 아르마도 대사 중 일부>      


여자는 마귀다. 여자는 악마다. 여자야말로 악령이다. 그래도 삼손조차 유혹당한 걸 어떡해. 천하장사도 말이다. 그래, 솔로몬도 농락당했어. 대지혜를 지닌 사람도 말이야. 큐피드의 무딘 화살촉에 헤라클레스의 몽둥이가 망가졌어. 그러니 스페인식 가느다란 칼은 오죽하겠어.      

 

 이 대사를 읽고 난 후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사랑의 셈법’이라는 꽤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머리가 다 큰 후에 찾아오는 사랑 앞에 누군들 사랑 하나만 붙잡고 거기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으랴. 몰두하기는커녕 사랑이 빠진 후에 다가올 파국이나 번거로움을 회피하고자 미리부터 사랑에 빠진 것은 상대방 때문이라는 책임 회피를 간구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작업이라는 것이 잃을 것이 많은 아르마도에게나 잃을 것이 별로 없는 현재의 우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잃은 것이 별로 없는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군가 금욕을 종용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 유혹의 시절에 살면서 잃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사랑’은 수고롭고 그 여정의 끝은 항상 ‘헛수고’였다는 것을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본질은 동일하다.      


  프랑스의 공주는 편찮은 아버지(국왕)를 대신하여 시공, 시녀와 함께 나바라를 방문한다. 공주는 나바라를 방문하기 전에 시종인 부아예를 통해서 페르디난드와 그의 신하 3명이 한 금욕 맹세에 대해 듣는다. 그 후 나바라를 방문한 프랑스 공주는 페르디난드를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방문으로 페르디난드가 한 금욕 맹세가 깨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왕은 결코 자신들은 금욕 맹세를 깨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에 넘쳐 말한다. 그리고 페르디난드는 그가 공주의 아버지인 프랑스 국왕에게 빌려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아직 갚지 않은 대금에 대해 예를 갖추고 불만족스러움을 표했고 공주는 이미 잔금을 지불했는데도 페르디난드가 받지 않았다고 한 것에 실망을 내비친다. 이에 공주는 잔금 지불을 증명하는 확인증서를 프랑스에서 부친 짐이 도착하면 그에게 전달하겠다고 한다. 페르디난드는 기꺼이 공주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돈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가 끝나면서 으레 방문객을 대접해야 마땅했지만, 페르디난드는 금욕 맹세로 인해서 그가 공주를 포함한 방문객을 궁정이 아니라 야외에서 어쩔 수 없이 환대한다는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청한다. 이렇게 예를 갖추고 프랑스 공주와 나바라의 왕 페르디난드가 협상을 하는 사이 이와는 별개로 그들의 시녀와 신하는 벌써부터 사랑의 큐피드 화살에 맞아 낯간지러운 사랑의 대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고작 2막 1장인데 금욕 맹세를 선언한 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아서 신하들은 금욕 맹세가 무엇이었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희극은 유쾌하다. 이 극은 사랑의 수고로움이 연희처럼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고 갈등이 두드러지지 않기에 갈등에 이르는 정교한 술수나 인물의 결함도 거의 없다. 따라서 ‘사랑이 헛수고’는 구성이 복잡하지 않은 작품이며 구성을 분석하듯이 캐내는 것보다는 ‘운문’과 ‘산문’이 어우러진 대사를 읽고 인생에 대입하여 작가의 비유가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알아가는 결국 인생을 따라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아주 쉽다.      

 야외에서 페르디난드와 만난 후 며칠이 지나자 볼일을 마친 프랑스 공주와 그 일행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때 코스타르드가 신하 베로네의 편지를 그들에게 가지고 오는데 프랑스 공주의 시녀 로잘린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코스타르드가 일부러 잘못 전한 것이었는데 사실 그 편지는 아르마도가 하케네타에게 쓴 부끄럽지만 솔직한 사랑 고백 편지였다.      


<P86 아르마도 대사 중 일부>      


내 입술은 그대 발에다, 내 눈은 그대 모습에다, 내 심장은 당신 기관 전부에가 비벼 대어 더럽혀지기를 불사하는 바요. 그대를 위해 헌신적 열정을 다 바치는 당신의 돈 아드리아노 데 아르마도.      

 

 하지만 코스타르드가 편지를 잘못 전달했다는 것을 알게 된 프랑스 공주는 원래 목적인 프랑스로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베로네가 로잘린에게 쓴 편지는 하케네타 손에 의해 목사 나타니엘과 교장 올로페르네스에게 전달되었고 그걸 두 사람이 읽고 있었다. 이에 하케네타는 그 편지가 그녀 자신이 아니라 로잘린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편지라는 것을 전해 듣고는 그걸 페르디난드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페르디난드는 결국 베로네가 금욕 맹세를 어기고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이 지점에서 금욕 맹세를 어긴 자들에게 어떤 가혹한 형벌이 내릴 것이라고 독자 대부분은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형벌은 없었고 굉장히 엉성하고도 급작스럽게 신하를 비롯한 왕, 페르디난드까지 맹세를 선언한 맹세를 거짓 맹세라고 다시 맹세하면서 장황한 대사를 서로 읊조린다.   

        

<P122 페르디난드와 신하의 대사 중 일부>      


페르디난드: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이제 베로네 경, 증명해 보라. 우리가 사랑하는 일이 정당하고, 우리 맹세는 깨진 것이 아니라는 걸. 
두마인: 좋습니다. 이 잘못을 어떻게 미화시켜야 하지?
롱가비예: 아, 그리해 나가려면, 대단한 근거가 필요해. 악마를 속여야 하니까, 사기를 쳐도 구실을 대도 대단한 게 필요해. 
두마인: 거짓 맹세를 치료할 고약 같은 것이 필요해. 
베로네: … 금욕은 만병의 근원이니! … 오로지 쉼 없이 걸어가기만 하는 학문에의 정진이랑 동맥의 민활한 움직임을 오염시키리라. 여인의 얼굴을 보지 않으리란 맹세 역시, 눈을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맹세니!      

 

  결국 ‘금욕’을 만병의 근원이라고 외치는 베로네. 어처구니없게도 왕 페르디난드는 큐피드의 신 앞에서 무너졌고 급박하게 프랑스로 떠나려는 여인들에게 구혼하려 든다. 이를 위해 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극중극을 펼쳐서 프랑스 여인들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한다. 이 구혼의 향연이 5막의 대부분을 지배한다. 그러나 이때 프랑스 국왕(공주의 아버지)의 서거 소식으로 연극은 중단된다. 페르디난드와 신하 3명은 여인들에게 결국 청혼을 하지만 여인들은 그들의 청혼을 수락하지 않는다. 다만 조건을 내걸어 청혼의 수락 여지를 남겨 둔다. 그건 앞으로 1년 동안 남성들이 더 수련하고 그것을 지킨다면 여인들이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출처: Frankfurter Rundschaud에서 재인용 (원출처: Lotte und Werther, links: Weihnachtsbäumchen. © IMAGO/Herit)

  금욕 맹세의 덧없음, 사랑 고백이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는가에 하는 의구심, 사랑 후의 감정은 왜 사랑은 노동처럼 수고로울까 하는 탄식, 탄식이 사라지며 밀려오는 수고로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의 현실.  이것이 사랑을 관장하는 full-process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ERP가 구성된 탭이라고 볼 수 있다.      


  수고롭지 않게 사랑에 빠져도 될 텐데,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랑에 접근해야 하는지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도 자기만족과 안위를 위해 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라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왜냐하면, 유치 찬란한 시를 쓰고 구애를 하기 위해 온갖 현란한 말로 치장하는 것은 상대를 진정으로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자기만족과 안위를 대변하는 여러 장치 중 하나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사랑은 그냥 사랑인데 우리는 그것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수고의 종착역에서 이러한 수고는 결국 헛수고였다네 하는 우스꽝스러운 최후를 대면한다. 따라서 그 탄식을 없애려고 사랑에 빠진 건 큐피드의 화살 때문에, 피가 쏠리는 것 때문에 그리고 당신 때문이라는 좀 비겁한 인식으로 사랑을 무참히 분해하며 사랑 여정의 대단원의 막을 우리는 그렇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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