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노운아
혼자 보는 연극보다는 여럿이서 같이 관람하는 연극이 훨씬 재미있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단체 관람을 줄여서 부르는 ‘단관’은 설령 마음 맞지 않는 사람이 거기에 껴 있다고 해도 상관 말고 일단 신청해 보는 것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틀림없다. 단관 후에 삼삼오오 모여 하는 뒤풀이도 꽤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운 좋으면 할인까지 받을 수 있으니 연극 단관의 매력은 한번 맛 들이면 계속 신청하여 중독돼 버리곤 한다. 슬프게도 이런 중독성이 강한 단관의 매력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법이다. 언제부턴가 주변 사람들에게 연극 보러 가자고 말하기가 껄끄러워졌다. 심지어 내 돈으로 표 한 장 더 발권해서 초청해 드려도 결국 연극이 끝난 후 들리는 이야기는 괜히 같이 보러 왔나 하는 후회의 심정이 들 정도로 평이 좋지 않았다.
연극적인 연기가 너무 과장되어서 보기 부담스럽다는 평, 영화에 비해서 현실감 없는 무대, 배우들끼리만 감정 과잉된 상태, 무대 위에서 보이는 다소 연극적인 연기에 별 감동하지 못하겠다는 등 왜 연극 보기가 재미없고 괴상한 일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거 보려고 왔는데 애먼 짓 했나 싶기도 하고 점점 연극 관람은 마니아가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 함께 보러 가자고 말해서는 안 될 혼자만의 이해받지 못하는 씁쓸한 취미가 돼 버렸다.
연극이 왜 외면당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면 대체로 ‘다소 연극적인 부담스러움’이라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무언가 장엄, 무언가 비장, 무언가 고독, 무언가 울음, 무언가 광기, 무언가 과장이라는 것이 무대를 뒤덮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언가 무거운 코드로 대변되는 비극이 실제 공연되는 횟수가 생각보다 적고 오히려 희극이 더 많이 공연되고 있는 사실을 안다면 저러한 관객의 평가가 무리는 아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소재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 또한 ‘극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표현적, 현실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니 소설 중에서도 한때 풍미했던 사소설 또는 영화에서도 평범한 생활을 옮긴 ‘ooo감독 표 영화’와는 연극이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극적인 이야기 전개를 위한 설교, 과장보다는 일상을 스케치하는 식의 극작을 추구한 기시다 구니오의 두 작품, 종이풍선과 옥상정원을 만난다면 위에서 언급한 지적이 모든 연극이 다 그런 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읽는 연극’에서는 종이풍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종이풍선]
결혼한 지 1년이 된 부부가 일요일을 지내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 극의 주요 사건이다.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라서 이런 것이 과연 연극의 소재로 쓰일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든다.
본문 7쪽 남편과 아내의 대화 (출판사 지만지)
남편: 아아아아, 이게 황금 같은 일요일인가.
아내: 당연하지.
남편: (다시 신문을 집어 들지만 꼭 읽으려는 건 아닌 듯이)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신문에 글이라도 모집해 본다면 재미있겠는데, 상금을 걸고.
아내: 내가 글을 쓰지.
남편: (신문을 보면서 관심 없다는 듯이) 뭐라고 쓸 건데?
아내: 제목을 뭐라고 할 건데?
남편: 제목이라….
제목은 말이지, 결혼 후 1년 동안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 것인가…?
아내: 그렇게 하면, 모르지.
남편: 모를 것도 없지. 그럼, 당신이 얘기해 봐.
아내: 일요일에 아내를 심심하게 하지 않는 방법.
남편: 그리고 남편도 귀찮지 않을 방법.
아내: 됐어.
1925년에 쓰인 이 작품에 관한 해설에 따르면(63쪽) 이 당시 일본에서는 대부분 중매로 남녀가 부부의 합을 이루었고 남자는 보통 주 6일 근무를 했고 결혼 후 여자는 아이를 양육하느라 홀로 지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종이풍선에 등장하는 남편과 아내는 자유연애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지극히 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으니 아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홀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주 6일 근무로 밖에 나가 있다 보니 일요일은 어떻게든 여유롭게 쉬어야 하는 날이었고 아내에게는 남편과 보낼 수 있는 둘만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모르더라도 결혼한 부부에게서 또는 아주 오래된 연인 사이에서 주말이나 휴일을 앞두고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관한 눈치 싸움은 현재에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너무 티 나게 함께 즐겁게 보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에는 극 중 아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아내가 은연중에 내비치는 요구를 남편이 너무 정색해서 관계를 딱딱하게 해서는 안 된다. 유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요일을 보내야 하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찰나이다. 연극을 읽는 독자로서 이 부분에서 슬며시 미소가 피어오른다. ‘아, 되게 사소한 상황인데 여기에 이상스럽게 빨려 들어가는구나’라는 비로소 때가 왔다는 울림일 것이다. 본인이 기시다 구니오 작품 종이풍선이 한국에 정식 번역돼 출간되기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사실 맨 처음 이 작품을 만난 건 한국어가 아니라 일본어 원문이었고 심지어 국립중앙도서관 원문 복사 서비스를 통해서 만났으니 참 긴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소소한 마치 소꿉놀이하는 듯한 대사가 이어지다가 결국 여행을 떠나는데 진짜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마치 환상 속에서 어우러지는 듯한 상상 여행을 떠난다. 역, 기차, 기차 안 음식, 바다, 호텔. 일본 문학을 꽤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단어가 낯설지 않으리라. 포근한 정서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남편은 아내를 적당히 놀리는 재주를 타고났다. 그런데도 이런 상상 여행에서조차 여행의 설렘을 진짜인 것처럼 연기하고 여기에 사랑스러움을 더하는 아내의 대사도 꽤 매력적이다.
본문 16쪽 남편과 아내의 대화 (출판사 지만지)
남편: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내: 창문을 열어 주세요.
남편: 매연이 들어와. 저기 봐, 하마리큐의 옛 터다.
아내: 그닥.
남편: 시나가와, 시나가와, 야마노테선 환승.
아내: 빠르네. 나, 캐러멜 먹고 싶어.
남편, 좋아, 여기요, 캐러멜.
아내: 당신은 먹을 거야?
남편: 먹지. 오오모리 역은 통과, 이제 곧 사장님 집이 보일 거야.
아내: 저게 그 짠돌이네 집이군.
남편: 짠돌이네 집이지. 가마타, 기와사키는 건너뛰고 요코하마. 여기도 별 볼일 없고.
호도가야, 도츠카, 자, 오오후나에 도착!
아내: 나, 샌드위치.
남편: 좋아, 여기요, 샌드위치.
아내: 당신 먹을래?
중략
본문 18쪽 남편과 아내의 대화 (출판사 지만지)
아내: 그전에 행선지를 말하세요, 기사님한테.
남편: 바닷가로 가자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아내: 그럼 이상하지, 바닷가로 가 달라니. 기사님, 해변에 있는 우미하마 호텔요.
이렇게 잘 진행되던 두 사람의 상상 여행도 그만 깨지고 만다. 다시 일요일의 현실로 돌아와서는 문득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이 어색하면서도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애정이 식어 서로에 아무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일요일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본문 28쪽 남편과 아내의 대화 (출판사 지만지)
긴 침묵.
남편: 우리는 이대로 잘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아내: 조금만 더 잘 간다면.
남편: 돈이 문제인가?
아내: 그건 아니야.
긴 침묵.
남편: 강아지라도 키울까?
아내: 작은 새를 기르는 게 좋지 않을까?
긴 침묵.
남편, 하품한다.
아내, 하품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이 역시나 버거워 새어 나오는 하품밖에 없다. 상상 여행이 끝나자 이를 달래기 위해서 남편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떻게 끝날지 모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찰나 부부의 마당으로 종이풍선이 굴러 들어온다. 이야기하다 말고 아내보다 먼저 종이풍선에 달려들어 그걸 치기 시작한다. 옆집에 사는 어린이 치에코짱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종이풍선이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왔다 갔다 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종이풍선을 치려는 듯 안달하며 연극은 서서히 끝난다.
기시다 구니오 연극의 특징은 연극 무대에서 어떤 현실의 부조리함과 문제점을 꽉 꼬집어서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케치극’이라는 독특한 작법을 창안한 기시다 구니오의 연극이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는 어떤 정형화된 시선과 연출로 무대를 구현하기보다는 관객의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일상성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슬프게도 영화에 비해 현실감 떨어진다는 거센 공격을 받는 연극 무대에서 무엇보다도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상상을 현실과 맞닿아 수 놓고 있으니 그 상상의 범주가 너무 장황하지 않아서 더 현실적으로 빛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수록된 또 다른 작품 옥상정원을 읽으면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기시다 구니오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연극적인 것이 너무 낡고 지루하고 과장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기시다 구니오의 작품을 열렬히 추천하는 것은 ‘연극’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앨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며 어쨌든 일상을 빼놓고 우리 존재를 논할 수 없기에 타인의 일상성을 관람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아서이다. '연극은 그렇다'는 편협에서 구해줄 기시다 구니오의 작품이 더 많이 한국에서 공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