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해 카페에서 하는 큰 다짐
눈물이 많아서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잠깐 틈이 있는 시간에 보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안에서 잠시 뭉클하는 장면이 몇 초 지나갔을 뿐인데, 그 몇 초 만에 심장이 벌컹벌컹 해져서 눈물이 나올 때가 있다.
이건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미 깜깜한 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과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감동적인 장면에 눈물이 곧 나올 것 같았다.
눈물이 나는 걸 삼촌한테 들키면, "또 우네, 울보."라고 놀림받을 게 뻔하니까
옆 방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이모 방으로 도망을 갔다.
이미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이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조심조심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험공부 중이었던 이모는 방 전체는 어두웠지만, 책상 등만은 환했다. 오히려 그게 나에게는 안심이 되었다. 이모한테도 우는 걸 들키기 않기 위해 책상 뒤에 있는 이모의 침대 어두운 쪽으로 향했다.
이모는 내가 들어온 인기척을 느끼면서도 나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또 울겠지 싶어서 모르는 척해주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침대 속에서 눈물을 닦으려고 하던 때에 이모가 한마디 했다.
"왜 들어왔어. 나가.'
집중력을 깨 버려서 미안했어, 이모.
어릴 때 눈물이 많았던 건, 커서도 고쳐지지 않더라.
여러 번 눈물로 곤란할 때가 있었는데, 전철을 타고 가면서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도 나의 눈물은 빛을 발한다.
굳이 출퇴근하는 전철에서 울지 않으려면 드라마나 영화 보지 말고 웃긴 걸 보면 될 텐데, 흐름을 타고 얼른 보고 싶어서 결국에는 보게 돼버리는 것들이 있다.
어떤 때는 또르르로 끝나지 않는다. 오열을 하게 된다.
일부러 모른 척하는 일본인들은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남자친구랑 헤어진 걸까.
집에 무슨 일이 있을까.
어디가 아픈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해줄까?
언젠가 일본 친구와 함께 전철에서 우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의 화제로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물론 내가 울보인 만큼, 내가 영상을 보다가 눈물이 날 때가 있다는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그 친구는 당연히 눈물 흘리면 눈치는 채지만, 그 사람이 부끄러워할 까봐 모른 척을 해준다는 것과 함께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頑張って...(간밧떼)"
이렇게 잘 우는 나와 결혼하기 전의 남편은 나의 이 엄청난 감정의 파도에 결혼해도 되는 걸까 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에 살다 보면 지브리 영화가 주기적으로 티브이에서 방영되곤 한다.
특히나 '이웃집의 토토로'는 거의 매년 여름 즈음에 시청할 수 있다.
일본에 18년째 살면서 아마도 토토로는 2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시시해지거나 감동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츠키와 메이가 고양이 버스를 타고 같이 만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엔딩곡이 흘러나올 때
나의 눈물로 안심감, 안도감과 함께 감정이 폭발한다.
'둘이 다시 만나서 다행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감동이 쓰나미를 친다.
감동만 쓰나미면 좋을 텐데, 눈물과 콧물까지 함께 하기에 정말 곤란하다.
나는 애가 둘이나 있는 엄마인데 말이다.
방금 전에도 세차게 내리치는 비를 피해 카페로 들어와서 노트북을 켜고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켰던 인스타그램에서 영화 리뷰가 나왔는데
그게 하필 '아이 엠 샘'이었고,
그게 또 하필 아이가 아빠를 원망하면서 우는 장면이었고, 아빠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편지를 읽는 장면이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
상상하게 되니까.
오늘 들어온 카페는 대학 병원 근처에 있는 카페이기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유독 많다.
모두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겠지?
간밧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