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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an Dec 28. 2018

당신에게 하지 못한 말

'어려운 시대'에 연애에 대해

오늘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하철에 몸을 옮겨 담았다. 아니 구겨넣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처럼 나도 오늘의 권태와 내일의 불안감을 안고 그들과 똑같이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환승역에서 잠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옆을 스치는 사람들이 새삼스레 느껴졌고 파리의 지하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바라봤다.


나는 원래 지하철을 좋아했다. 덜컹거리는 철제의 네모난 상자들의 연결을 좋아했다. 파리의 지하철처럼 낡고 오래된 것이든, 서울의 지하철처럼 세련된 것이든 상관없이 그 움직임, 소음과 가득한 사람들 또는 텅 빈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지하철의 느낌을 좋아했다.


다시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가 말했던 우리 사이의 '어색해진 분위기'의 실체에 대해서 나는 계속 생각했음에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만남의 끝을 우아하게 표현한 것은 아닌지 생각했을 뿐이다. 택시를 돌려 그의 집 앞으로 찾아갔던, 분주히 서로의 입술을 찾던 그 날밤 이후로 3주 만에 만난 나는 그에게 섭섭함을 서툴게 이야기했고, 그는 뒤늦게 그런 나를 원망함으로써 우리는 부재의 관계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그가 여전히 내 생각을 한다면, 아직은 내 두 눈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있다면, 혹시 어젯밤에도 어제의 전날 밤에도 나를 안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그가 말한 '나중에' '기회'가 와서 우리가 다시 대화한다면 나는 지하철을 좋아한다는 말로 시작해야할까.


그 덜컹거리는 물체처럼 내 마음은 늘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데 마구 달렸다가 멈추고 또 그것을 반복하며 흔들리고 있다고. 더구나 그가 말했던 이 '어려운 시대'에 '먹고 사는 것도 힘든 이 시대'에 대해서 나는 설명해야 할까. 나는 낭만적인 가난한 빠리에서 그 실체를 마주했었고, 돌아온 낯선 서울에서 영원할 것 같던 아버지의 그늘이 한순간 사라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고, 완벽하게 계획한 미래가 내 것이 되는 듯한 경험 직후에 찾아온 실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시대'에 마치 나 혼자 내팽겨쳐진 듯한 매일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리고 늘 모든 것에 대해 꿈꾸듯이 이야기하곤 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있다고.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 속에 담긴 불평, 동생의 울먹이는 소리와 아버지의 한숨, 언니의 무관심과 비관적 태도. 그것들을 시시각각 마주해야 하는 '나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그 순간, 우리의 잔이 부딪히고 눈빛이 마주치고 뜨거운 두 몸이 엉키던 그 순간들에 잠시나마 나의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을 당신은 알기나 하냐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이 핀잔을 줬던 나의 비툴어진 표현과 가끔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직선적인 언어는 사실 내가 부정할 수 없는, 포기할 수 없는 피의 역사에서 비롯됐음을 아냐고,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던 나의 시도는 벗어나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끌어안은 채 나아가야 함을 깨달음으로써 그 과정에서 아직도 발버둥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당신한테 말할 수가 없었다고,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당신은 꼭 우리의 사건에 대해 '어려운 시대'라는 단어로 마침표를 찍었어야 했냐고.


결국 나는 꿈에서 깨기위해서 그리고 어떤 반복적인 일상을 만들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고 저녁시간에 맞춰 퇴근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듣는다.


평생 다 알지도 못할 이 도시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고, 행복감, 고민, 절망, 시대의 어려움을 동시에 안고 살아내고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는 다 그렇게 거기에서 위로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 당신이 말한대로 우린 너무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수록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깨달음도 결코 달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고.


그런대도 나는 당신에게 그래도, 그런데 우리가 그런 애길하려고 만난 것은 아니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던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를 끝없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우연이 겹쳐 이어진 우리의 어떤 강력한 만남, 처음 당신과 눈을 마주쳤던 순간, 당신이 내가 앉은 테이블로 자꾸만 돌아왔던 그 순간들 그것을 기억하고 그 얘길 더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의 약속없이 이어진 만남, 음악, 당신의 음성과 손길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고, 아직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나는 이것이 어려운 시대에 삶을 더 지치게 하는 어긋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잠시나마 서로의 외로움에 기대고, 우리의 관계에 기대를 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바보같이 흘러가는 시간에도 나는 우리의 만남이 여기서 끝이라면 우린 왜 만났을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면 우린 왜 만났을까, 왜 그렇게 강력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또 그 이유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언제 또 다가올 지 모를 당신 이후의 안개*를 만날 때, 나는 다르게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는 것이고, 아니 다르게 하더라도 본질은 안개 일 수 밖에 없는 다가올 만남에 대해서 나는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아직도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안개*:  '사랑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찰스 부코스키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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