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쓰는 글 (2)
최근 다시 만나게 된 친구는 지난날의 나의 이기적이었던 행동에 책임을 묻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약 십년 전에 학교 캠퍼스에서 만났는데, 그 뒤로 이제는 끝나버린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던 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당시 여러종류의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던 중이었고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그녀와 거리를 두었던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때 나는 그녀의 이유없이 밝은 태도와 높은 목소리가 어려웠다. 어떤 종류의 우울감이 종종 인생의 동력이 되는 나로서는 침묵이 없는 그녀의 모습이 진실과는 거리가 있어보였고 그녀의 지나친 행복감의 표출은 사실 왜곡된 행동의 표출이라고 단정지어버렸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무조건적으로 어떻게해서든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하는 그녀가 진정한 인생의 고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들기만 좋아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를 먼저 만나고 싶어하던 그녀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나를 이어주던 다른 인연들과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얼마전 나를 찾아준 다른 지인을 통해서 그녀와 연결되었고, 다시 만난 그녀는 오직 나를 무척 반가워하기만 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녀는 더욱 성숙해져있었고 나를 불편하게 했었던 그녀의 자질들도 더 다정하게 발현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인생을 다 아는 듯이 오만하게도 그녀를 편견을 가지고 판단했던 것이고 그녀의 그러한 자질, 작은 것에서 행복감을 찾는 천성, 결국은 좋은 말을 먼저 건네고 그 누구의 말이나 행동을 결코 의도를 가진 그 무엇으로 해석하지 않는 그런 태도가 이기적이고 비겁한 나와는 달리 너무도 소중한 가치이자 자질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그런 그녀 자체를 어떤 거부감을 느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게됐다.
그녀가 비록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녀가 하루 하루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또 그게 그녀가 의도했는지 않았는지는 밝힐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글쎄, 알맞는 비교인지는 모르지만
복잡한 논리를 쉬운말로 풀어서 설명하지 못한다면 실제로 완벽하게 그 논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처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의 모든 다양한 모습과 고뇌, 사건들을 단순하게 보려고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생은 사실 가장 단순하게 살아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임을, 가장 고차원적인 것임을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깔끔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 아마 가장 고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