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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Jun 05. 2024

뒷모습은 가식이 없습니다

뒷모습은 ‘솔직함’이며 ‘허용과 포용’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지도사는 유족들이 원하는 경우 염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장례지도사는 엄숙한 얼굴로 묵념을 하고, 그런 다음 정성을 기울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버지의 몸을 닦아 나갔는데, 장례지도사의 손길이 지나갈 때마다 늙은 나무 같던 아버지 몸은 생기가 불어져 다시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장례지도사의 엄숙한 손놀림에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장례지도사는 아버지를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수의를 입혔는데, 그때 그는 아버지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신성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정성스러운 의식에 유족으로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자식도 못하는 일이니까요. 아버지가 남기고 떠난 것, 그러니까 유품이라고 해봐야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지만 서랍장에서 아버지의 꾸불꾸불한 글씨의 메모들은 지난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부모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어떤 말이 떠오를까요? 저는 ‘후회’라는 단어가 떠 오릅니다.  부모가 자식의 곁을 떠날 즈음 자식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후회라고 하더군요. 후회(後悔)는 마음 ‘심’과 어미 ‘모’라는 글자가 합해져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즉, 뒤늦게 어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뉘우친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부모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부모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간 늦은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모녀가 병원비 때문에 다투는 것을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습니다. 형제들 중에서 누가 더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를 딸에게 듣고 있는 어미의 모습이 몹시 불편해 보였습니다. 형편이 나은 자식 중 하나가 부모의 병원비를 내면 문제 될 것도 없지만 사는 형편이 고만고만하다 보니… 어미는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반려동물이 병이 나면 동물병원 달려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늙은 부모가 병이 나면, “나는 괜찮다”라는 어미의 말에 그러려니 하고 태연한 것이 자식이지요. 제 자식 위해 쓰는 돈은 아낌없이 쓰지만, 부모 위해 쓰는 돈은 하나 둘 따져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는 열 자식을 하나처럼 키웠는데,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귀찮게 여깁니다.
자식은 어미의 뒷모습을 보며 자랍니다. 지난했던 세월은 굽이굽이 비포장도로처럼 어미의 얼굴을 밟고 지나갔는데, 자식은 그 어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솔직히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시나요? 굽은 허리와 걸음걸이, 희미해지는 기억들, 여러분이 상상했던 그 모습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어미의 뒷모습은 ‘내어 줌’입니다. 독거미의 일종인 ‘염낭거미’는 새끼가 먹을 것이 없으면 제 살을 먹이로 주는 습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어미’입니다.
어미의 뒷모습은 꾸밈과 속임수가 없고 가식이 없습니다. 딱딱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따스합니다.  


가족여행 중 큰 딸아이가 계속해서 사진을 찍더군요. 그중 가장 많은 장면이 저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게 진짜 아빠 모습이냐”라고 했습니다.  사진에 찍힌 저의 뒷모습을 보고 솔직히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딸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보이고 있을지 궁금했고 부끄러웠습니다.  


먼 훗날, 저의 장례식 때 제 딸들은 저를 어떤 모습의 아빠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저는 제 아이들에게 글 읽는 뒷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아빠가 읽은 책, 읽을 책, 읽다 만 책들을 정리하면서 ‘아빠는 이 작은 공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책들을 읽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생을 보냈을까?’ 하면서요.
“서재는 한 사람의 십자가와 같다”라는 얘기를 어떤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 사람의 책장을 보면 일생동안 그 사람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목표는 무엇이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수많은 생각과 믿음들이 고스란히 책장에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상상이지만, 바라 건데 저의 장례식에 찾아오신 조문객에게 제가 살면서 저를 위로하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 책들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저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나를 깨웠던 숨 쉬는 글과 문장을 장례식장 한 곁에 적어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뒷모습은 내 모습인데 솔직히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어쩌면 뒷모습은 내가 모르는 진짜 내 모습일지 모릅니다.
직장에서 좋은 리더는 뒷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뒷모습은 ‘가식’이 없습니다. 뒷모습은 ‘솔직함’이고 ‘포용과 허용’입니다. 앞모습만 보여주는 리더는 말만 앞서는 사람입니다. ‘꾸밈’이고 ‘속임수’ ‘기만’입니다. 뒷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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