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이야기가 갖는 힘에 대해 배웠다. 김만수 교수님의 '상처 입은 화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교수님은-오태석 연극에서 '상처 입은 화자의'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논문을 읽어 오라고 했다. 오태석의 연극에서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상처를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치유해 나가는지에 대한 논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논문의 내용보다는 교수님이 강의시간에 해준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서머셋 몸의 비탄이었던가?
어떤 마부가 있었다. 그 마부는 어린 아들을 잃은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생계를 위해 마차를 끌러 나간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마부는 손님에게 자신의 슬픔을 얘기하지만 비웃거나 책망하는 등 아무도 마부의 상처에 공감해주지 않는다. 마부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말에게 말한다.
"말아. 너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있어. 그런데 그 아들이 느닷없이 죽어버렸어. 그럼 넌 마음이 슬프지 않겠니?"
그랬더니 말이 눈을 껌뻑 거리며 마부의 말을 들어주더란다.
마부는 그렇게 말에게라도 이야기 함으로써 조금의 위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그 이야기가 너무 아프거나 슬픈 이야기들은 더욱 그렇다. 나도 남편이 술을 마시고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일으킬 때 솟구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분한 마음을 얘기해봤지만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이지 내 이야기를 제대로 공감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엘리자라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의 힘든 얘길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가 각종 자살예방 상담 전화이다.
<대표 자살 예방 상담전화 및 상담센터>
한국 생명의 전화 : 1588-9191
보건복지부 자살예방 상담전화: 국번 없이 1393
청소년 전화: 1388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탐센터 : 129
나도 두 번 정도 한국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한밤중 도저히 잠이 안 오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자다 깨서 시큰둥하게 성의 없는 목소리로 들어서 전화를 끊었다. 보다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다음날에라도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할 텐데 그 순간 전화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시스템이어서 좀 더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 치료는 자신의 삶에 건설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더 비중을 두는 치료방법이다.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경험의 진실이란 발견되거나 드러나는 것이 창조되는 것이다. 치료의 목표는 사실대로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서부터 긍정적인 이야기로 창조될 수 있는 것으로 전환된다.
임철우 교수님이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브런치 북에 참가하려고 급하게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였다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북을 만들었지만 뽑히지 못했다. 주변에 글 쓰는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한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글은 너무 감동적이고 가슴 아파요. 그런데 so What?"
그리고 심리 상담하는 교수님께도 보여드렸다.
"선생님 이야기와 심리치료 이야기가 곁들여지면 좋겠네요. 그 부분은 제가 도움을 드릴게요."
이렇게 해서 심료 치료 에세이로 바꾸었다.
그렇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내가 겪은 일을 일방적으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어려운 과정을 이겨낸 사람이다. 알코올 중독자 아내로서 예상치 못하게 겪어야 하는 일을 어떻게 주변 사람, 사회적 시스템을 이용하여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팁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