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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Dec 06. 2022

아들의 적금통장

오늘 아들은 정기예금 통장과

1년 만기 적금통장을 개설했다


청소년기, 황토 바람을 일으키며 방황을 하던 아들에게 말했다.

-공부 안 한 거 회 안 한다고 엄마 원망 안 하겠다는  각서 써서 엄마 이메일로 보내.

공부는 안 해도 좋아. 그런데 뭐든 빈둥거리는 건 안돼. 뭐든 할걸 찾아봐.


그래서 시작한 것이 요리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인문고전 50권을 외울 만큼 읽고 군주론을 설파했던 녀석의 방황은 

엄마의 완력, 회유, 교육, 상담, 눈물...

뭘로도 통하지 못했다.


대학교 원서를 쓰는 조건으로 당시 나는  30만 원의 현금을 주며 사정했다. 피시방에서 다 써도 좋으니 원서만 쓰자고 했다.  그 녀석의 원서를 내가 접수했다.  접수하고 학교를 안 다니면 어쩔 거냐고 하는 놈의 이마에 총을 갈기고 싶었지만 그래도 좋다고 했다. 개새!!!!! 

학교를 안 다녀도 좋으니 일단 원서만 내보자고 했다. 그렇게 한라대학교 호텔조리학과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해 우연히 중문에서 전국 셰프 경연대회가 있었고 주니어 대표로 상을 받아 서울 코엑스에서 하는 전국 대회 진출했다. 거기서 대상은 아니지만 개인과 단체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그리고 학비를 위한 알바가 아니라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꾸준히 일을 했다.

오션스위츠, 롯데호텔...

사실 대학 때부터는 경제제 독립을 한 것이다.


자연스레  엄마인 나와  정서적으로 멀어졌다.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서 쓰니  아쉬운 소리 할 필요도 없었고,  나로서도 공부 안 하고 pc방이나 배회하는 놈을 아들로 쳐주지도 않았다.

한집에 살아도 며칠씩 얼굴을 못 보기도 했다.


군대에 가서야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던 아들.

그때 아 나는 어쩌자고 그리도 무식했던고. 처음으로 나는 엄마로서 참 무식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군대라는 절박한 환경에서 보내온 아들의 편지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명언이었다.


제대하고 돌아와 엄마에게 효도하는 셈 치고

대학을 졸업했다며 큰 인심 쓰듯 졸업장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독립을 했다.

물론 독립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인덕이 있는 놈이라 은인의 도움으로 낡은 아파트지만  집을 해결했고

 운도 좋은 놈인지  자기가 원하던 곳에 취업도 했다.


나는 이제 한놈을 독립시켰다는 홀가분함에 매우 만족했다.

그러던 지난 10월 어느 날 밤 아들은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엄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아는데요. 아무래도 일을 못하겠어요.

-왜?

-습진 때문에 손이 또 뒤집어졌어요.

-그건 늘 있던 일이었잖아. 지금 있는 직장에서 못하겠다는 거니? 요리를 못하겠다는 거니?


아들은 정곡을 찔렀는지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울음을 감추려 코를 훌쩍였다.

아~ 이놈은 겨우 스물셋....

이런 놈을 독립했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지.


는 화내지 않았다. 세상 인자하고 교양 있는 엄마의 자세로 얘길  들어주었다. 사실 그날 너무 고단해서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그냥 들어주었다.

론 나이가 들어 기운이 빠지는 것도 고마울 때가 있다.

나는 한 시간 넘게 그가 울 수 있게 해 주었다.

참 성질 많이 죽었지. 예전 같으면 온갖 비난과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온갖 욕으로  심장을 뚫어 주었을 텐데 말이다.

아들은 내가 화를 내지 않고 들어준 것에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사실 난 너무 졸려서 대답만 응. 응. 그랬구나를 반복했는데  위로가 되었던지

아들은 바로 다음날 전화해서 어젯밤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며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참 연인도 아니고 뭐 그 말 한마디에 또 그렇게 감동을 받았는지.

나는 아들에게 엄마가  돼지고기랑 고등어 사 갖고 주말에 당장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모자관계는 데면데면 모드에서 급선회해서 달달 모자지간으로 바뀌었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김치, 앞다리살, 오겹살, 고등어를 사들고 아들 집에 갔다. 쓰레기를 버리고 이불을 빨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빨래를 개고......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은 열두 시가 다된 시간에  어깨를 움츠리며 추위에 떨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유. 좋아. 엄마가 있는 집에 들어오니 너무 좋네.

아들은 나를 꼭 안아주었다.

 다음날 이침 7시부터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이 깬 그는 8시가 안 되어 집을 나섰다.


-아들 없는 집에 우두커니 있지 말고 친구 만나고 오셔.


 잠실에 사는 은희 언니랑 석촌호수를 걷고 있을 때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셰프님이 특별휴가를 줬다며 빨리 비행기표를 끊으라고 했다.

어찌나 기뻐하던지...

나도 기뻤다. 셰프님에게 인정을 받고 있구나 안심이 되었다.


공항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셰프님에 대한 존경심을 맘껏 드러내는 아들에게 말해주었다.

-너도 셰프님 나이 되면 그 정도 될 수 있을 거야.

-우리 셰프님처럼 되긴 힘들 거예요. 정말 근접할 수 없는 뭔가 있다니까요.

말씀도 잘하시고 카리스마 철철인데 유모와 위트까지... 셰프님은  또 명언 제조기예요.

-예를 들면?

-야! 노동을 하지 말고 요리를 해.

이런 말씀도 하시고 고객이 오늘 물 좋냐고 물으시니까 셰프님이

재료의 컨디션보다

셰프의 컨디션이 좋아야 하고

셰프의 컨디션보다 고객님의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정말 손뼉 치고 싶었어요.


 -너도 틈틈이 공부해. 그런 말씀도 적어 놔. 셰프님 분명  책 많이 읽으실걸. 너도   잘 읽잖아.  너도 그렇게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어. 넌 이제 스물세 살인데 벌써 존경하는 롤모델이 있잖아.

나도 유튜브에서 너희 셰프님을 검색해서 찾아보곤 해. 정말 탑 of탑이시더라.

네가 그분에게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해.

그리고 맨날  블로그에 올라온 네 사진을 다운로드해두지.

8월에 올라온 사진이랑 지금의 너만 해도 벌써 달라. 그런데 네 계획대로 앞으로 10년  셰프님 밑에서 수련하면 얼마나 달라지겠니.

너도 셰프님처럼 훌륭한 셰프님이 될 수 있어.


이 말은 아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정말 이진욱 셰프님을 존경하고 있다.

셰프님을 얘기할 때 표정과 태도부터 다르다. 그러면 되었다.






살면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좌표가 설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방황하는 젊은이에 비해  얼마나 바람직한 젊은 이인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야 초보지만 언제 또 코를 훌쩍이며 징징대는 전화를 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되고 싶은,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정기적금 통장 개설 기념으로 한우는 내가 쐈다.

과감히... 돈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돈이란 참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 한우를 먹었다.

일 년 뒤 적금이 만기 되면 목돈은 다시 정기예금을 시키고 이자는 한우를 사 먹기로 했다.

셰프님에게 혼나도 선배에게 쪼여도 손님에게 실수를 해도.....

적금통장에 돈이 쌓여가는 걸 느끼며 한 달 한 달 견뎌내며 성장해가길.

그래서 내년에 만기 적금을 찾는 기쁨을 느끼기를...





아토피 습진등 피부과 치료로 유명한 문창민 원장님께서 처방해주신 자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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