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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의 <컨택트(Arrival)>

Review

by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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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에서 경이의 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한 사람에게 경이로운 순간이란 인류적 관점에서는 보편적이고 지루한 과정의 반복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개인에게는 그것이 절대적인 특별함을 지닌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며, 우리가 겪는 생이란 결국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느끼는 경이로운 순간이란 지극히 사변적이면서도 불멸하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서로를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 받은 순간, 내 마음이라는 거대한 우주에서 갑자기 어느 하나의 진심을 발견한 순간이나, 자신의 아이라는, 세상에서 독보적으로 특별한 존재를 마주한 순간 같이.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Arrival)>는 한 명의 삶, 루이스의 인생에서 겪는 경이로운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딸, 한나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지금 겪고 있는, 도착한 이들과의 접촉에 대해서. 경이로움이란, 기본적으로 무지에서 출발한다. 무지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루이스가 마침내 그들의 언어로 된 한마디를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루이스가 느끼는 전율을 느낀다. 철저히 개인의 차원에서, 이 새로운 경이가 어떻게 무지에서 이해로 변화하는지를 본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루이스가 모든 시간을 공유하면서 마침내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이 자기 딸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그 순간은 경악스럽고 또 놀랍도록 깊다. 지금까지 의문스럽던 퍼즐이 모두 풀리고,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은 자기의 미래의 딸이며, 둘이 함께 보낸 아름다운 시간 끝에는 결국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렸음에도, 당장의 아름다운 현재를 보며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한나에게 그 이야기를 알 듯 모를 듯 들려주다 끌어안고는 먼 곳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순간 루이스라는 사람의 인생 전체를 가늠하게 만드는 무게를 갖는다.


인류 국가 간의 갈등은 그저 루이스라는 인물의 인생 자체에 무게추를 더 올리기 위한 괜찮은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당장의 사건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하지만 전체 코스의 맛을 해치지 않는 그런 메뉴다. 비록 저 가장 중요한 순간은 2시간 남짓의 영화 중에서 1시간 35분이 흘러야 시작되지만 본래 코스 요리에서의 앙트레란 그런 것이 아닌가. 그 전까지의 과정은 우리에게 루이스라는 사람의 삶, 러닝 타임 밖에서, 영화가 끝나고나서 지속될 그의 삶에 대한 단서를 주는 과정이며, 저 순간에 우리는 루이스의 삶을 꿰뚫어보는 단서를 완성하게 된다.


루이스가 아름다(웠던/울)운 순간들을 기억하며, 이안에게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 미래를 바꿀 것인지”를 묻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너무나 아름답다. 루이스는 그 인생을 현재로 가져와 다시 과거로 보내기 위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처음) 같은(새로운) 선택을 한다. “당신의 품이 이렇게 따뜻한 줄 잊고 있었어” 라고 하는 루이스의 말은 너무나 깊고 광대해서, 그가 단 한순간에 느꼈을 수십년의 고독을 우리 앞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 고독은 루이스가 왜 같은 결론의 삶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답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 인생의 아름다웠던 경이가 결국 슬픔으로 끝나게 된다면, 그 경이를 포기하는게 옳은걸까? 이미 그 결과를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그런 ‘불완전한’ 경이의 순간들을 없었던 것으로 만든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완전해질까? 오히려 아무런 굴곡도 없이 그저 다른 이와 같은 빛깔과 파동으로 흘러갈 뿐인, 그런 경이로움 하나 없는 무채색의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의문, 의문 뿐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렇게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단 하나의 점으로 압축했을 때, 결국 특별해지는 것은 어떤 순간들임을 말한다. 루이스는 인생의 그 어떤 순간들보다도 이안과, 그리고 한나와 함께한 순간들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했고, 그게 없어진다면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자신의 삶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니까.


사람은 어쩌면 몇 번의 멋지고,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무엇이든, 무엇도 그걸 대체할 수 없으며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나에게나 특별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래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단 한 순간이라도 우리의 삶이 특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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