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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Dec 01. 2023

변리사는 직장에서 울면 안 되나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어떤 상황을 접하고 억울해서 또는 화가 나서 울기도 했었다. 다 큰 어른인데, 직장인데 하면서 참고 싶었지만 그냥 터져 나오는 울음 때문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있다가 진정이 된 후에 자리로 돌아왔던 경험이 있다. 비교적 여러 곳의 직장을 다녔는데, 모든 직장에서 그런 일이 한 번 이상 있었던 것 같다. 


첫 사회경험에서

나의 첫 사회경험은 작은 특허사무소였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던 해였는데, 합격자 발표 나오기 전까지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특허사무소는 나같이 시험 치르고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아서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지면 공부 다시 해야 한다고 나갈 것이고, 시험에 합격하면 더 좋은 수습처 구한다고 나갈 것 같은 사람을 부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심히 구인공고를 뒤지면서 신입 직원 구한다고 하는 곳이 있으면 부지런히 지원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한 작은 특허사무소에서 연락이 와서 영어 시험을 치렀는데 그 시험을 잘 치렀는지 채용이 되었다. 물론 연봉은 변리사도 아닌 신입직원이라서 아주 적었다. 그래도 첫 사회경험이라고 좋아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의 소장님이 나를 불러 갑자기 일본어 번역을 하라고 종이 한 장을 주는 것이었다. 영어라면 몰라도 일본어는 한 번도 번역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종이를 받아 들고 나와서 드는 생각이 그렇게 적은 돈을 주면서 어떻게 나한테 일본어 번역까지 하라는 거지, 나 있는 동안 아주 나한테서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 먹겠다는 건가? 아무리 내가 일본어 공부를 조금 해서 일본어 능력시험 2급을 땄다고 이력서에 적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적은 월급을 주면서 일본어 번역까지 하라는 거야 너무 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나는 일본어 번역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화가 나고 설움이 북받쳐 올라와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밖에서 한참을 울다가 진정을 하고 나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소장님에게 가서 "이거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소장님은 아무 말 없이 그런데 내 느낌으로는 무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래."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직원을 불러 시키는 것이었다. 


수습 변리사로 일했던 곳에서

시험에 합격하고 일하던 작은 사무소는 그만두었다. 변리사가 되어서는 더 있기가 곤란한 상황이어서 그곳은 그만두고 몇 달 후에 새로운 수습처를 구하게 되었다. 새로 오픈하는 사무소였는데 우리 팀 쪽으로 일이 점점 많이 들어왔다. 배우면서 일하고 성취감도 느끼면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너무 일을 많이 시키는 것이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일을 많이 시켰다. 매일 야근하고 퇴근하는 길에도 전철에서 일거리를 읽으면서 돌아가고 집에 가서 잠자기 전에도 또 읽고 그런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다가 화가 나서 소장님에게 가서 처음에 애매하게 언제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월급을 올려준다고 했으니 올려달라고 했다. 사실 그렇게 되바라지게 가서 따지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안 올려주면 그곳을 그만두겠다는 결심도 했었기 때문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렇게 해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월급을 조금 올릴 수 있었고, 결국 나는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처음 일해본 큰 조직에서

수습 변리사로 일한 특허사무소를 벗어나 대기업의 인하우스 변리사로 일하게 되었다. 특허사무소에서는 변리사님 소리를 들으면서 어느 정도 대접을 받고 일했지만, 대기업 조직에서는 그냥 어느 팀의 팀원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내 경력에 맞는 위치로 들어가 팀장도 있고, 상사도 있는 그런 자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 자리의 상사 위치에 있던 사람이 당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이기는 했지만 내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자기가 하던 일을 나에게 넘겨주더니 아예 거의 전부다 나한테 시키는 것이었다. 당시에 개인적인 사정이 있기는 했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주는 대로 다 받아서 열심히 하니 자기가 하겠다고 했던 일마저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의 일을 나에게 시키는 것이었다. 일에 관해서는 무슨 일이든 주어진 대로 하려고 했던 나였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 상사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너무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혼자 숨어서 울었다. 그러면서 한참을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화가 난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감정이 추스러진 후에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몇 마디쯤은 그 상사에게 했던 것 같다. 한참이 지난 후 그 상사는 회식 자리에서 자기가 미안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견디고 나니 그것조차 나에게 발전의 계기가 되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 굉장히 많은 일을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도 생겼으니까.


처음 팀장이 되고 나서

대기업 인하우스 변리사로 일하다가 개인적인 문제도 좀 생기고 해서 잠시 쉬게 되었다. 몇 개월을 쉬고 나서 구한 자리가 중견 규모 특허사무소 팀장자리였다. 대략 5년 차 정도되었을 때 전에 해보지 않았던 팀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당시 사무소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몇 명의 팀원을 내보내야 했다. 그리고 남은 팀원과 함께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한 팀원이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고 하였다. 그것까지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다른 팀원마저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혼자 남을 것을 알면서도 남은 팀원들이 다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너무 야속하고 속상했다. 그래서 계속 울었다. 이 때는 사람들이 보든지 말든지 내 자리에서 계속 울었다.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무소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몇 명을 내보내야 했고, 그런 불안정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남은 팀원들은 다른 곳으로 이직해 버리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팀에서 진행되던 일들은 다 나 혼자의 몫이었고, 나는 혼자 남아 그것을 해내야 했다. 


연구소 조직에서 일하면서

공부도 하고 아이도 낳고 몇 년의 공백을 거친 후에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그래도 전문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라서 재취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그렇게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는 전보다 더 책임감 있게 그리고 더 능동적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 벤처 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기회가 되어 대규모 병원의 연구소 조직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은 전에 내가 다니던 조직과는 사뭇 다른 유형의 조직이었다. 내 직속 상사가 누구인지 불명확하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의사결정을 위해 상의를 해야 하는 사람이 일의 속성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사람들도 다양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자기 일 아니면 신경 안 쓰려고 하는 분위기여서 업무 협조나 정보 공유가 아주 어려웠다.

그러다가 연구소 전체의 행정과 관리를 총괄하는 상사가 어떤 일을 나에게 지시하면서 부장급의 상사와 같이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그 부장 상사에게 그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부장이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신경질을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하면서 대꾸를 하는데 갑자기 서러운 생각이 들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밖에서 헤매다가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비슷한 다른 경험도 있었다. 내가 하던 일 중 병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특허를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한데 쓰던 것에 문제가 많아 새로운 것으로 교체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요청하는 보고를 하고 허가를 받기는 했는데 도움을 받아야 하는 담당자가 별로 협조적이지 않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시스템을 교체해야 하는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는 태도로 내가 기존에 있던 것 잘 활용해보지도 않고 교체를 요청한다는 식으로 대꾸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위의 상사분이 그 담당자와 미팅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계속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상대방을 보니 울컥한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너무 창피한 생각에 회의실을 나가버려야 했다. 내 딴에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일을 하기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쪽에서 내 의도를 왜곡하여 나를 비난하는 구실로 삼고 그것을 근거로 나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는 반응을 접하게 되어서였는지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려던 내 마음이 왜곡되고 비난을 받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에서 울거나 하는 짓은 너무 어린아이 같고 창피한 짓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울고 싶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올 만큼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도 아무런 감정의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도 드라마나 영화의 멋진 비즈니스맨이나 커리어우먼처럼 부당한 상황을 접했을 때 멋있는 말로 받아쳐서 내 상황과 의도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런 재주는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억울하면 저럴까, 얼마나 화가 나면 저럴까 하는 정도라도 좀 멋있지는 않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꾹 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막기 위해서 아니야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게 아니야, 아니야 나는 억울하지 않아 하면서 자신을 세뇌하는 것은 너무 힘들기도 하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너무 억울해서 너무 화가 나서 감정이 폭발했다는 것을 밖으로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그 사람이 나에게 한 행동이 얼마나 나에게 부당하게 느껴졌는지 정도는 전달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표현을 했기 때문에 이후에라도 조금은 나은 대접을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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