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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Jul 06. 2020

나를 감동시켰던 팀원

기억에 남는 팀원과의 일화

변리사 6년 차이던 때 인하우스에서 특허사무소로 이직하면서 화학바이오팀의 팀장으로 가게 되었다. 다른 팀에 비해서 규모가 작았지만 팀원이 5명 정도 있었고, 나는 팀을 꾸려가기에 버거운 초짜 팀장이었다. 업무 분배, 기획, 리뷰 등을 해야 했는데, 그중 팀원들의 업무 결과물을 리뷰하는 것은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였다.


당시 팀원 중에 변리사는 아니지만 그 해 2차 시험을 마치고 들어온 팀원이 있었는데 서글서글한 인상에 공부만 해와서 그런지 유난히 순수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이든 무척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첫 명세서를 리뷰해보니

그 팀원이 처음으로 특허 명세서를 써서 리뷰해달라고 가지고 왔는데 읽다 보니 전체적으로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발명자 초안을 읽어보니 발명자 초안은 오히려 발명의 핵심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었다. 팀원이 작성한 명세서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전체적인 구성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파악을 해보니 솔직히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그 팀원을 불러다 앉혀 놓고 하나하나 지적을 하였다. 그리고 발명자 초안은 오히려 발명의 핵심이 드러나 있는데, 작성된 명세서는 오히려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고 산만하게 기술이 되어 있으며 어떤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도 않다고 냉정하게 얘기를 했다.


소심한 초짜 팀장은

그 팀원은 웃으면서 알았다고 하며 돌아갔는데, 소심한 초짜 팀장인 나는 그때부터 계속 신경이 쓰여서 편안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한 건 아닐까, 상처 받았으면 어떡하지 등등 혼자서 신경 쓰고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명세서는 내가 지적을 한 대로 잘 고쳐져서 의뢰인에서 검토 요청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 이후 한동안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고 신경이 쓰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 팀원은 전혀 싫은 티를 안 냈는데, 그게 더 불안하기도 했었다.


나를 감동시킨 반전 사건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내가 팀장으로 들어간 후 처음으로 팀 회식을 하게 되었다. 팀원들과 나이도 비슷한 편이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1차로 저녁을 먹고 2차로 맥주를 하기로 해서 이동하는 도중, 명세서 때문에 싫은 소리를 해서 신경이 쓰였던 팀원과 나란히 걷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팀원이 가방에서 책 하나를 꺼내는 것이었다.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글을 잘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이었다. 그때 나에게 지적을 받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상처 받지 않았을까, 내가 싫은 소리를 했다고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등등 신경 쓰고 걱정하던 나와는 다르게 그 팀원은 진지하게 충고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발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다.


그 팀원은 이후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변리사 시험 합격자 명단에 본인의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습 연수를 받고 나서 다른 사무소로 이직하게 되어서 오랜 시간 같이 근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열심히 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10여 년이 지난 때쯤, 바이오 기술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는데, 유난히 반가워하며 내 명함을 가져가고 자신의 명함은 사진으로 명함을 보내주었다.



팀장 역할을 처음 하게 된 이후로는 계속해서 팀장 역할을 맡게 되면서 꽤 여러 명의 팀원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팀원같이 나를 감동시켰던 이는 없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짜 티를 벗고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인 말을 하면서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조절하면서 말하는 법도 어느 정도 익히게 되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도 싫은 소리를 하면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상사에게 내 업무 결과물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들으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만큼, 팀장의 비판을 자기 발전의 기회로 적극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팀원이 가끔 생각나면, 그가 틀림없이 훌륭한 변리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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