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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Mar 04. 2020

베이글에 대한 기억

변리사 수험생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것

나는 베이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표현하면, 뻣뻣하고 맛도 밋밋해서 잘 먹지 않는다. 베이글보다 더 맛있는 빵이 얼마든지 많은데 굳이 베이글을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베이글을 보면 특별한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바로 변리사 시험공부를 하던 수험생 시절에 대한 것이다.


베이글은 아무래도 뉴욕의 빵이다. 베이글의 도시 뉴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베이글에는 뉴요커들이 먹는 빵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아메리카노와 베이글을 들고 바쁘게 출근하는 멋진 뉴요커의 모습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도서관을 오가며 변리사 시험공부를 하던 수험생 시절에는 그냥 직장인들이 무턱대고 부러웠다. 직장인 동료들끼리 커피 마시러 나온 것을 봐도 부러웠고,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부러웠었다. 그런 나에게 베이글은 바쁘게 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아메리카노와 함께 잘 세팅된 베이글의 사진을 보게 되면, 반드시 시험에 합격하여 당당히 저것을 사 먹어보리라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시험에 합격한 내가 당당하게 아메리카노와 베이글을 사 먹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멋진 일이었다.


 기나긴 수험생활 동안 도서관과 고시원을 오가며 동료도 없이 견뎌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고, 그러다가 말을 하면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어서 그런지 턱이 뻐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가끔 의기소침해지고 내 미래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는 도서관 서재를 찾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서 자기 암시를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종로거리를 혼자서 걸어 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시험에 합격하여 그 수많은 직장인들 속의 한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해보곤 했었다.


혹독했던 수험생 시절을 지나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수습 연수도 받아야 했고, 마침 경기가 안 좋고 인기가 없는 전공이라 수습처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베이글에 대해 가졌던 열망을 어느새 잊고 있었다. 그러다 변리사는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도 당연히 해야 한다는 동기들의 붐에 이끌려 일본어 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우연히 일찍 도착해서 강의 시작까지 시간이 남는 날이 있었다. 마침 저녁을 먹지 않았었기도 해서 학원 커피숍에서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메뉴 중 베이글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수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설레는 마음에 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했다. 그때 베이글을 처음 먹어 보았다. 어쩌면 시험 합격 이후로 베이글을 처음 맛보는 경험을 일부러 미루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베이글을 처음 맛 본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빵이 그리도 질긴 건지 잘 씹히지도 않았다. '이게 뭐야'라는 느낌이었다.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씁쓸한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이후, 그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베이글은 잘 먹지 않는다. 크림치즈를 발라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하는 마니아들도 있지만, 베이글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빵은 정말 많다.


지금도 베이글을 보면 처음 맛보았을 때의 강렬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수험생 시절에 시험에 합격하면 누릴 수 있으리라고 환상을 가졌던 것들이 똑같이 배신감(?)을 줄 때마다 베이글의 이미지가 오버랩이 되는 것을 느끼곤 했다. 사회적인 대우, 고액 연봉, 멋진 전문직 이미지  등등.... 이러한 환상들은 자격증만 있으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막상 부딪혀 보니 환상 속의 그 모습이 아니라 실상은 아주 현실적이라는 것 등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모두 부단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사회적인 대우는 변리사 자격증 하나로 갑자기 상승하지는 않았고, 연봉은 몇 년차 이상이 되면 영업을 잘할 수 있어야 고액 연봉 변리사가 될 수 있으며, 멋진 전문직 이미지는 패션감각이 좀 받쳐주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베이글은 시험에 자꾸 떨어져서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나에게 시험을 합격하면 그 보상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 무엇을 상징했던 것 같다. 막상 합격한 후 당당하게 사 먹어본 그것의 맛이 "이게 뭐야" 였던 것처럼, 시험만 합격하면 저절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은 없었고, 환상 속의 모습 그대로 인 것은 아무것도 없이 모두 현실적인 것들 뿐이었지만, 그 환상 속의 이미지로 인해 쉽지 않았던 수험 기간을 견뎌낼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시험공부에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쉽지 않은 수험 생활을 견뎌냈기에 지금은 씁쓸하지만 미소도 지어지는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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