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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Nov 19. 2020

#006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곳의 가을

2020년은 모두가 특별하게 기억하겠지만 나는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 친구와 본격적으로 만남을 시작했고, 코로나로 어지러운 시기, 재택근무가 확대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함께 오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리고 그 이후의 약혼까지. 약 열 달 간의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에 인생에 전환점이 될만한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정말 변화가 눈 앞으로 다가온 것 같다.


2010년 4월부터 이 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으니 올해 4월이 꼭 10년째였다. 이 곳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할 때 딱히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떠나고 싶기보다는 어떻게든 단단히 자리 잡아 뿌리내리고 살아보자는 다짐이 더 컸었다. 사람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맘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10년 동안 많은 사람을 겪고, 다른 세계를 보면서 그 다짐도 흔들렸다. 코로나로 거의 모든 세계가 멈췄던 그 시기, 남자 친구와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더 많은 시간을 깊게 이야기하게 되었고 (어쩌면 코로나가 계기가 되어) 물리적으로 가깝게 있을 방법을 찾아보고, 그게 약혼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기에 내가 있는 곳은 적합할까? 이 곳에서의 10년의 생활은 나에게 "그렇다"라는 대답을 주지 않았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내가 남자 친구가 있는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4월 이후, 반년 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이 곳으로 돌아왔다. 공항 문을 나섰을 때, 돌아왔다는 느낌보다는 이제는 차곡차곡 정리해야 한다는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반년만에 다시 돌아온 내 방에서도 무엇을 채울까 보다는 무엇을 빼야 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아직 또 반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그 시간 동안 나의 10년의 생활을 정리하려면 짧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건은 팔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시간과 관계는 그러할 수 없으니 공들여 하나씩 차곡차곡 정리해야 하니까.



지금, 내가 맞고 있는 아름다운 가을이 나에게는 이 곳에서의 마지막 가을이 될 것이다. 벚꽃도, 여름만 되면 쨀 듯이 파란 하늘도 다시 볼 수 있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샛노랗고 새빨간 가을 나무의 풍경은 내년엔 보지 못할 것이다. 조금만 언덕을 올라가면 볼 수 있었던 넓은 바다가 펼쳐진 풍경도 내년엔 보지 못할 것이다. 곧 추억에만 남게 될 풍경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떠나기 전까지 그저 깨끗하고 예쁘다고 생각했던 동네 곳곳의 풍경이 이제는 아련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으면 매일 동네에 나가 산책을 한다. 가을 색을 잃어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더 보려고...


사실 이렇게 말하기엔 10년의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즐겁다기보다는 울고 넘어지고 깊이 잠겼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좋은 시간은 있어서, 막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더 예쁘고 더 아름답게 보이나 보다. 아름다워 보일 때, 예뻐 보일 때, 더 많이 담아두자. 그럼 몇 년 뒤에 조금은 덜 아련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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