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음 Jun 17. 2024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상] 잠자는 남편의 얼굴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삐죽거리는 입이 먼저 보인다. 자는 동안에도 뭐 그리 불만이 많은지 입은 툭 튀어나와 있고, 시옷자 모양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꾹 누르게 된다. 그러다 발가락을 보면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까딱까딱, 그 박자를 보자면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신기하게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잠을 자는데, 가끔 이 사람이 죽은 건 아닌가 싶어 심장에 손을 대보기도 쿡쿡 찔러보기도 한다. 그러면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돌아누워 내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한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머리카락을 계속 만졌다고 한다. 외동이라 엄마 곁에서 자던 날이 많았는지 아직도 그 잠버릇을 고치지 못했나 보다. 연애 초기에는 머리카락을 만지고 쓸어넘기는 소리에 잠을 청하지 못해 손길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이제는 사랑의 표현으로 들린다. 자는 와중에도 “나 여기에 있어. 잘 자.”라는 말을 건네는 것처럼.  

    

이불은 걷어차고 잠옷은 배 위로 올라가 있다. 중간에 잠을 잘 깨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보이면 바로 이불을 덮어주지만, 이불을 덮고 있는 건 잠깐이다. 조금이라도 거추장스럽거나 더운 느낌이 들면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남편이 아직도 참 아이 같다.     


자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데 “유튜브 타임~!”하고 즐겁게 영상을 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기 직전까지 보다 자는 통에, 가끔은 충전하는 것도 잊고 그대로 휴대폰이 방전되기도 한다. 자기 전 대화하자는 나의 말에도 낮에 대화를 충분히 했으니 유튜브를 보고 싶다며 휙 돌아눕는다. 얼마나 그 시간이 가지고 싶었으면 저럴까 싶어 그만의 시간을 즐기도록 허락해준다. 야속하게도 눈꺼풀이 무거운 탓에 금방 잠이 들곤 한다. 이전에 불면증이 있던 사람이 맞나? 누우면 채 30분도 되지 않아 꿈나라로 가버 리는 남편의 배를 쓰다듬으며, 나도 잠을 청한다.     


잠이 온다는 건 편안하다는 뜻이다. 어떤 동물은 평생을 쭈그려 앉아서 잠이 든다고 한다. 포식자가 어디서든 달려들 수 있으므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자는 것이다. 남편은 나랑 만나고 생활하는 게 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엇보다 가장 큰 사랑이라는 걸 안다. 내 친구들은 “설렘이 아니라 편안하다고? 그런 이유로 결혼을 해도 되는 거야?” 했지만, 남편의 가장 큰 표현방식이라는 걸 나는 안다. 언제든, 무얼 하다가든, 서로 잠들 수 있는 편안한 관계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낮잠을 자는 남편을 관찰한다. 누워 자기는 싫었는지 베개를 껴안고 이상한 자세로 앉아 자고 있다. 밤에 잘 자기 위해 푹 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안경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든다. 그렇게 편안하게 자는 얼굴을 보면 나도 참 편안해진다. 오늘도 우리 함께 잠들자. 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