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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Aug 10. 2024

장화 홍련

아버지의 쓰임새 


엄마와 아빠는 싸움이 잦았다.

엄마가 돈을 너무 쓸데없는 곳에 많이 쓴다는 게 아빠의 주장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발끈해서 아빠에게 따졌다. 내가 허튼데 쓴 거 있으면 말해봐 이 종자야.


엄마의 허튼 짓은, 대개 '월부'와 관련이 있다.

세일즈맨은 한여름에도 고동색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007 가방을 든 채, 나타나곤 했다. 그 당시엔 가가호호 방문해 책을 파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아득한 내 나이..) 여하튼 그가 강매를 한 거 같지는 않다. 그는 매너가 있었고, 세일즈맨이 지녀야 할 호들갑스러움조차 없었으니까. 설핏 책에 관해 대단한 자부심과 학식을 지닌 듯보였는데 가만히 보면 헤세나 모파상의 생애 이야기만 늘어놓는 걸로 보아, 어쩌면 그는 이 책들을 읽기보다는 부록에 담긴 그들의 생애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었다. 

중요한 건, 엄마가 책 목록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007 맨이 말한 작가들의 생애에 꽂혀 바로바로 전집을 질렀다는 사실. 엄마는 어려서 책을 많이 읽지 못한 한풀이격으로, 007 맨은 내가 책이나 팔러 다니기엔 아까운 사람인데 지금 여기 있는 거예요, 나중엔 뭐 이런 식으로 얘기가 흘러 참 특이한 세일즈기법이구나 느꼈던 현장.


여하튼 그 둘의 애매한 인지부조화는 열매를 맺었다. 어떤 때는 매주 책박스가 배달되기도 했으니까. 그때마다 아빠와 엄마는 방문을 닫아걸고, 난투극 비슷한 걸 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난투극이었는지 단순한 멱살잡이였는지, 화려한 염장 지르기였는지는 다음날 아침 분위기를 보연 그럭저럭 짐작이 갈 뿐. 싸웠지만 금세 풀렸고, 아버지는 일단 책이 들어오면 뒷짐을 지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역할만 했다. 그 속을 알 수는 없었다.


계몽사와 금성사, 학원출판사, 동서문화사.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도 그럴싸한 회사의 책들. 

열 살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세로줄로 읽다가 눈알이 피로했던 기억. 황미나의 레전드 미스터블랙의 진짜이름 '에드워드다니엘노팅그래햄' 못지않게 작가의 이름이 그럴싸하다고 여겼던.


아동문학 시리즈에서 가장 내 구미를 당겼던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장화홍련과 라푼첼(후일 이야기할 것임)이었다. 우물에 누이를 처넣을 때, 돌쇠의 싸패 같던 표정과 장화를 따라 우물에 몸을 던지는 홍련의 비장한 얼굴 그위로 떠있는 까만 하늘의 휘영청한 달. 그리고 제일 믿을 수 없었던 건, 바로 배좌수의 살인 방조! 명예 살인보다 더 추악한. 아버지란 이름의 협잡꾼.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을 무척 좋아하는 팬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조용한 가족' 이후 '장화 홍련'에서 위트를 뺀 채  '슬프고, 아름답고, 무섭게'라는 의도를 백분 살렸다. 

다중인격이란 소재에 흥미를 가진 관객이라면 영화 속에서 수미가 은주와 동일인이라는 힌트를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다. 공포영화가 제대로 사느냐 마느냐는 이 숨은 그림 찾기를 얼마나 영리하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쉽게 숨긴 거 같아, 그저 음향과 등장인물들의 커진 동공, 괴성, 넘치는 핏물, 헐떡거림 이런 걸로 눙치는 사례는 너무 많아 말하기도 입이 아프다. 그래서 이런 퀄리티 높은 영화를 만나면, 설레고 도파민이 도는 게 당연한 것 같다. 


전래동화 속 장화가 죽어 마땅했던 이유가 '껍질 벗긴 쥐'로 드러난 혼전 성관계였다면, 이곳에선 새엄마 은주란 존재에 대한 수미의 도발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병든 친엄마의 자리를 꿰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은주에게 수미란 장애물은 어쩌면 반가운 일이다. 영리한 은주는 엄마와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수미가, 평생을 프로메테우스처럼 쇠사슬에 묶여 심장이 쪼이는 고통 속에서 살아갈 걸 알았으니까. (영화의 말미에 은주가 들른 자매의 집 안방에서 기어 나오는 귀신씬은 장화홍련의 권선징악을 일부 살리는 의도처럼 보여 좋았다. 여기 진짜 귀신의 집이었어! 당신 몰랐구먼!)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디 있는가. 그 모호한 표정으로 바로크풍 꽃무늬 집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있는가. 저수지에서 낚시라도 하며, 세월을 낚고 있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위해를 가한 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맘속으로 '껍질 벗긴 쥐' 한 마리를 찾느라 부산을 떠는지도.  


원한이 있는 귀신들은 등장할 때 온전할 수가 없다. 

사람은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기간 내에 생체에 이상신호가 생겨나고 암에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온갖 스트레스로 점철된 귀신들이 팔과 다리가 꺾이고, 눈에 핏발이 서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도 찢어지는 괴성이거나 낯선 웅얼거림을 속사포로 시전(예: 기담의 엄마귀신)한다는 건 아주 뻔하지만, 공감이 가는 일이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붉고 푸른 벽지의 꽃잎들이 흔들리거나, 삐거덕 열릴 때 나는 문소리와, 물의 파동, 어둡거나 환한 거실과 방의 풍경과 엔틱 한 가구들이 주는 따뜻함,  이런 섬세한 장치들 때문에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서정적인 멜로와도 결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 무섭지만, 참 아름답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은주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수미와 수연을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로 반기는 장면은, 싱크대 밑에 웅크리고 있는 뻘속에서 기어 나온 듯해 보이는 귀신과, 식탁의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초록 공단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귀신, 장롱에서 나와 공중부양돼 수미의 얼굴에 다리를 벌리고 피를 흘리며 섰는 귀신. 이 보다 더 소름 돋았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법. 장화를 죽이고 우물을 내려다본 돌쇠처럼.


다시 돌아가,

그 월부 책장수, 007 맨은 반년쯤 드나들며 책을 팔았고 때문에 우리 집은 동네의 명물 도서관으로 자리매김 됐다.(80년대는 서울에도 도서관이 드물었음) 놀라운 건, 책을 빌리러 오는 동네 아이들에게 내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한 권에 백 원.   

그리고 그 방대한 책은 아빠 하는 일이 고꾸라지며, 더 작은 집으로 이사 나가는 중에 이 집 저 집으로 주소를 옮기며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녀석은, 금성사 세계문학전집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란 멋진 이름의 작가를 나는 도무지 다른 집으로 보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 창밖으론 싸락싸락 눈발이 날리고, 벽면 가득 꽂힌 책들. 그리고  모두 잠든 밤. 

나는 이제부터 활동 개시다. 반드시 꼭 모두가 잠들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 혼자 세상에 깨어있는 기분이니까. 경건하게 책을 한 권 빼들고 앉으면,  그 책장 안에 마법의 옷장이 열리고, 환상의 나니아가 화라락 펼쳐졌다.    

그런데 그 판타지란 물건이, 아빠의 무심함에 감춰진, 당신이 세상에서 맛본 굴욕감과 바꾼 성배란 걸 그땐 몰랐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방관과 엄마의 허튼짓 사이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어른이 됐다. 


그러니까...... 그게......

아빠란 종자가, 내게 베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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