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취학 아이 셋을 키우고
직장에서는 10대 후반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무실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동료가 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보니 때론 나에게 상식인 일이 상대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고 내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슈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슈가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동시대에 살지만 동시에 같은 것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대화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나도 인제 나이를 적지 않게 먹은 만큼 눈치랄 게 좀 생겨서 어느 정도 대화가 안 통한다 싶으면 알아서 피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왜 이 사람은 이렇게밖에 대화를 못할까 싶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계속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계속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 남의 험담만 하고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현명해지거나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진다.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와 달리 자기 주관이 또렷하고 생각이 깊은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10대에 이렇게 자기 삶을 오롯이 꾸려가는지 대견하면서도 궁금해지기도 한다.
요즘은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내 나름대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또렷한 사람들.
주변의 말이나 상황에 휘둘리기보다는 자기만의 줏대를 가지고 꿋꿋이 나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뭔가 공통점이 있지 않나.
일단 나이는 아니다.
그러니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만큼 현명해지거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덜 지혜로운 건 아닌 거 같다.
그렇다면 경험인가? 경험이 다양할수록 삶이 풍요로워지는가? 그것도 아닌 게 어릴 때부터 여행도 많이 다니고 부모님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 부유한 지역의 학생들임에도 삶을 고통스럽게 여기고 주변 사람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학생들의 수가 많아졌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물론 지금도 현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해 덜 불안해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부화뇌동을 덜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자기 자신과 잘 지낸다. 스스로에게도 만족하고 타인에게도 관대해졌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나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람은 자기 철학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으면 남들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삶이 타인에 의해 휘둘리지 않게 된다.
어느 순간 나도 나만의 철학이 생겨나고 있었다.
철학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판단기준이 되는 가치관'이다.
그렇다면 철학과 똥고집의 차이는 뭘까?
유연성!
주변을 잘 관찰하다 보면 유독 생각이 유연한 분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에 맞으면 망설임 없이 나아가고 철학에 맞지 않으면 휘둘리지 않고 피한다.
자기만의 경험과 판단만 맞다고 생각하여 남들에게 강요하거나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람에게 배울 점을 찾고, 그럼에도 내게 맞지 않은 것이라면 가볍게 내려놓을 수도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꼿꼿하면서도 유연하다.
나이가 들수록 좀 더 단단해지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부드럽게 잘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싶다. 유연하면서도 꼿꼿한 삶. 함께 살면서도 나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내고 싶다.
아무 돈이 되지도 않지만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사람은 영글어진다.
읽고 쓰고 만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철학이 피어나고 그 철학 덕에 삶을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이래서 옛 어른들은 철학을 공부했던 거구나 싶다. 철학이 없으면 한 번뿐인 삶을 나만의 것으로 살 수가 없다.
집중력을 흩트리는 수많은 유혹들과 게으름과 권태들 속에서 나만의 철학을 세우고 그러한 철학에 맞게 내 삶을 구성해 나가는 것. 그게 앞으로의 내 삶의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