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1분만 집중하는 삶.
1.
인터벌 러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순전히 앞자리가 바뀐 체중계 때문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앞자리가 바뀐 건 임신 때 이후론 처음이었기에 6으로 시작하는 체중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다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몇 번 거듭하고 나서야 살이 쪘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60킬로대라니.. 55 사이즈에서 66 사이즈로 변한 걸 받아들일 때도 이리 절망적이진 않았었다.
2.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긴 했다. 바지 단추가 잘 안 잠기고 지퍼가 자꾸만 까꿍하고 보였으며 원피스를 입으면 팔이 안 올라갔다. 허리와 무릎이 아프고 더위도 더 많이 타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책 작업이 더뎌지고 있었고 복직은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삶이 왜 이렇게 나한테만 가혹한가, 뭐 하나 쉽게 이루어지는 게 없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3.
헬스장 속 사람들은 쳇바퀴 속에 있는 다람쥐 같았다. 스무 살 때였나 딱 한번 헬스장을 갔다가 바로 끊었다. 이렇게 지루한 행위를 (그것도 돈을 내고) 반복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차라리 댄스수업이나 요가, 발레나 필라테스들이 생산적으로 느껴졌다. 최소한 내 의지대로 새로운 근육을 써보는 거니까.
4.
그런 내가, 삼십 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내가, 몸무게가 6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가, 스스로 멱살 잡아끌고 간 곳이 헬스장이었다. 동네에 새로 생긴 헬스장은 지하철 역사에 생긴 특이한 곳이었다. 집에서 3분 거리였고 비싸지 않았고 트레이너 없이 기구만 있는 가성비 있는 곳이었기에 그나마 마음속에 저항이 적어서 가입할 수 있었다. 아, 일 년을 끊어야만 할인이 되는 게 아니라, ott처럼 매달 결제가 되는 구조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5.
헬스장에서 처음으로 러닝머신을 올라간 날. '엄청나게 하기 싫겠지?'라는 나의 첫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요즘은 러닝머신을 트레드밀이라고 부르던데, 트레드밀에는 다양한 러닝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고 인터벌 러닝도 거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6.
인터벌 러닝. 그러니까 구간과 구간이 나눠져 있는 러닝이었다. 나는 처음이니까 '초급'으로 인터벌 러닝을 설정해 보았다. 첫 2분은 천천히 걷다가 다음 1분은 조금 빠르게 걷고 다시 2분은 천천히 걷고, 다음 1분은 좀 더 빠르게 뛰게끔 속도가 조절되었다. 쳇바퀴 속에 다람쥐는 끝없이 달려야 한다면 인터벌 러닝은 속도와 시간제한이 정해져 있었기에 시간을 봐가며 걷고 뛰고를 반복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을 달리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1분만 힘차게 달리라고 하면 할만했다. 그다음 2분, 그다음 1분만 보면서 달리면 되니까.
7.
이런 인터벌러닝을 하루에 20분씩 두 번씩 하기 시작했다. 매일. 그즈음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던 시기였기에 더 밀어붙였던 것 같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정신이 피로했기에 몸이라도 혹사를 시켜 정신을 좀 갈아엎고 싶기도 했다. 매일 운동을 하기로 하고 나서 정말 매일 헬스장에 가서 인터벌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되네? 스스로에게 조금씩 감탄해 가면서.
8.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집에 와서 집 좀 치우고 운동을 가야지, 하면 못 가게 될 이유가 꼭 생겼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집에 와보니 할 일이 많아서, 갑자기 책 편집을 할 일이 생겨서 등등. 그래서 아예 헬스장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생각만 하지 않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 등원 준비를 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아침 9시에 헬스장에 출석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을 덜하고 행동을 습관화해 두니 헬스장은 언젠가 해야 할 일이 아닌 아침에 눈뜨면 아이들 데려다주는 것과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복직이 코앞이던 날 까지도 그렇게 매일 헬스장에 출석했다.
9.
그게 한여름이던 7월과 8월이었고 매일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하자 살이 자연스럽게 빠지기 시작했다. 앞자리가 6에서 다시 5로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50대 중반으로까지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몸이 너무 가벼워지자 아침에도 더 잘 일어나지고 체력이 좋아졌고 짜증이 줄었고 심지어 더위도 좀 덜 타게 된 것 같았다. 아니 이렇게 금방 변한다고? 지금까지 속은 느낌이었다.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쾌적한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겠구나. 나도 이런 느낌으로 삶을 유지하고 싶다.
10.
단기간에 이렇게 살을 빼본 게 너무 오랜만인지라 몸의 변화가 하나씩 실감이 났다. 허리가 너무 커져버린 바지는 수선해야 했고, 새로 옷을 사러 가면 치수가 작아져서 입을 수 있는 옷이 많아졌다. 크롭으로 나온 옷들도 입게 되자 거울 속에 처음 본 옷태를 마주하고 쇼핑이 즐거워졌다. 그즈음, 몸무게를 6키로쯤 뺀 즈음에 내 책이 출판되었고 나는 휘몰아치는 이후 일정도 견뎌낼 체력이 되어 있었다. 복직하고 나서도 매일 아침 헬스장에 가는 삶을 이어갔다. 마치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장수처럼.
11.
인터벌러닝이 익숙해지면서부터는 헬스장의 기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궁금했지만 설명서가 딱히 없어서 매만지거나 남들이 하는 걸 구경만 하다가 오곤 했는데, 유튜브에서 한혜진이 만든 '초보들이 할 수 있는 헬스장 기구들 사용법'이 있대서 찾아봤다. 세상에. 내가 딱 원하던 수준이었다. 그걸 저장해 뒀다가 헬스장 기구들을 하나씩 따라 해 보았다. 근력운동도 한번 해보자 싶어 하나씩 따라 해보니 이거도 나름의 재미가 붙었다. 인바디에서 근육량이 항상 부족했는데, 이번 기회에 근육을 좀 붙여봐야지 다짐해 보았다. 운동의 선순환이었다.
12.
이제는 인터벌 러닝에서도 중급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린다. 심박수 150을 넘기도 하지만 20분짜리 인터벌 러닝이 힘겹지 않고 가뿐하다. 어떻게 20분이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지? 싶기도 하다가 문득, 나보고 20분을 계속 달리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1분만 달리고 2분은 걸으라고 해서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러한 1분과 2분들이 모여 20분이 된 거니까.
13.
일하는 엄마로서의 내 삶도 그러하다. 매일 출근도 하고 애들도 셋이나 케어하면서 집안일도 매일 하라고 하면? 너무나 일이 막중해서 못하겠다 싶지만, 오늘 하루만 일단 잘 보내자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하루가 가긴 간다. 그런 하루들이 모여 한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한 학기가 지난다. 나는 매일매일을 그렇게 눈앞에 놓인 일들만 해치워가며 일하는 엄마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덩어리로 보면 너무나 큰 일인 것은 많지만, 쪼개보면 하나하나는 먹을만한 덩어리인 거다.
가끔은 숨이 가빠져서 멈추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다시 천천히 숨을 고를 시간이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인터벌 러닝이나 일하는 엄마로서의 삶이나 그 순간순간은 버거울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점점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고 가벼워지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쳇바퀴와는 다르다.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고 내 일도 즐겁게 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고 하고 싶고 살고 싶은 나를 응원하는 과정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삶이라면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