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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Jul 19. 2015

습작 #7 - 좋은 일요일

socializing

무릎이 아팠지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기 모임에 달리기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새롭게 알게 된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남산으로 가기 전 사당에서 새롭게 알게 된 친구1을 만났고, 함께 이동했다. 그 곳에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이제 막 두 번째 본 사람들이었지만 낯선 느낌은 없었다. 먼저 말을 걸어온 외국인 친구의 영어 질문에 더듬거렸지만 두렵지 않게 대답했다.


걷는 동안 최근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친구2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통해 나는 한 번 더 내가 나아지고 있음을 파악했다. 숨기려 하지 않았고,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그 일을 당했을 때 느꼈던 기분, 그리고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친구2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들 신나게 뛰는 모습을 보니 시큰거리는 내 무릎이 원망스러웠다. 달리기라는 행위의 즐거움이 이렇게 큰 것인줄 알았다면, 진작에 뛰는 삶을 살았을텐데.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친구1에게 감사했고, 친구1의 페이스에 맞출 수 있도록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친구1은 집에 돌아가며 '달리는 동안 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 한 마디로 친구1의 고민과 그 무게가 느껴졌다. 그녀가 달리는 이유를 알게 됐다.


외국인인 친구3, 친구4가 합류했고, 이태원으로 이동했다. 런닝화, 운동복 차림으로 찾아간 이태원, 복장 때문인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팔과 얼굴이었지만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았다. 짧은 영어로 친구3과 '해외에 나가면 그 지역의 전통 음식을 꼭 먹어야 한다', '혐오 식품도 잘 먹는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외국 서적을 파는 서점으로 향했다. 다들 영어가 모국어처럼 익숙한 사람들이라 편안해보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3에게 읽기 편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원래 읽던 책은 말에 대한 책이었는데, 잘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친구3은 나에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영어 버전을 추천해줬고, 별 고민 없이 그 책을 구매했다.


친구3, 친구4와 작별 인사를 하고 친구1, 친구2와 함께 펍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 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맥주를 천천히 마시며 사랑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각자의 생각이 있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공감을 시키기 위해 꺼낸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냥 듣는 것에 의미를 뒀다. 종교 이야기도 잠시 나왔지만, 평행선이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삶을 살아간다. 비슷한 일을 겪어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모두 다르고, 그 이후의 행동도 다르다. 굳이 공감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굳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친구1, 친구2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떤지 생각하게 됐다. 잘 보이기 위해서 꾸며서 이야기 할 필요도 없었다. 이들에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이야기를.  


socializing

지난 금요일도 그러했다. 기분이 좋았다. 왠지 든든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 자리에 내가 참여할 수 있고, 나 역시 내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금요일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끊임 없이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겪은 모든 일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당분간은 이렇게 나만 아는 이야기여야 하니까. 좋은 일요일의 마지막에 감성이 튀어 나왔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9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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