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성격 탓일까. “착한기업”이라는 수식어, 마음에 안 든다. 싸움을 걸거나 누군가의 성과를 깎아내릴 의도는 아니다. 그냥, “착한기업”이라는 말을 곱씹을수록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다. “착한기업”의 그 막연함이 싫다.
“착하다”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평가다. “착한 아이” “착한 멍멍이” “착한 마음”으로 불리는 모든 것은 입장에 따라 “융통성 없는 아이” “답답한 멍멍이” “오지랖 넓은 마음”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착한 사람에게 상처 입는다. 대중을 상대로 착함을 선언할 수 있는 절대선이 있을까?
그럼에도 올해는 “착한기업”을 자처하는 곳들이 유독 많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출범되면서 ESG 경영이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어다. 기업을 평가하는 비 재무지표를 의미한다. 이 같은 흐름에 부합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도 앞 다퉈 “착한기업”이 되겠노라 공표했다. ESG 관리 전담 부서가 조직했거나 ESG 등급을 관리하겠다고 부연했다.
ESG와 착하고 착하지 못하고 사이의 연관성은 크지 않다. ESG 등급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톰슨로이터 등 투자정보 제공기관에서 평가한다. 국내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ESG 등급을 평가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내 기업들의 ESG 등급을 공개하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ESG 등급(2020년 기준)을 살펴보자.
한국지배구조원 평가에 따르면 2020년도 삼성전자의 ESG 등급은 A등급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에 반도체 직업병 인정을 11년간 요구해온 피해 근로자와 유가족도 삼성전자를 착한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11월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사과문을 공식 발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논란은 지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를 신청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ESG 등급의 표준성도 문제다.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소비자 사이에서 ‘갓뚜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식품기업 오뚜기. 오뚜기의 ESG 성적은 어떨까? 2019년 오뚜기는 ESG 중 사회(S) 부문에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과 톰슨로이터로부터 각각 A등급과 C-등급을 받았다. 이 두 곳은 세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ESG 평가기관으로 알려졌다. 한국지배구조원은 오뚜기의 사회 부문을 A등급으로 평가했다. 평가기관들은 ESG 등급에 대한 세부 평가기준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성적표를 받은 당사자(기업)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착한기업”은 없다. 탄소 감축에 적극적인 기업, 아동이나 이주여성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 합리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춘 기업 등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기업이 있을 뿐. 기업의 성과는 찢어서 살펴야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착한기업”이라는 말의 이면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혹은 그 오류를 유도하는 음흉한 속내 일 터. 어느 쪽이든 바로 잡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