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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Jan 19. 2022

쥐 1

1.

초침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리 높지 않은 천정을 응시했다.  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정신은 맑았다.‘득득 득득벽시계가 계속해서 소리를 냈다.  심장 박동 역시 소리를 따라가는 듯했다. 체면을 걸고 있는 것처럼 소리가 정신의 깊은 곳으로 나를 몰아갔다.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였던 , 어김없이 상념에 젖게 했던 시계 소리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게 느껴졌다.


거실로 나오니 또 다른 시계 소리가 들렸다. 늘 그랬듯, 오롯이 혼자일 때만 들려오는 게 새삼 신기했다. 날이 밝고 모두가 깨어나야지만 귓가에서 사라질 소리였다. 벌어진 커튼 사이로 옅은 푸른빛이 들어왔다. 마음 한구석 허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인가 보았던 빛, 새벽임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던 빛, 나를 일으키고 내 몸을 재촉하던 빛이었다. 커튼을 젖혀볼 자신은 없었다. 이대로 어둠이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곧 문밖을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방 안 가득 채워진 텁텁한 공기가 따뜻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한 아이의 깊은 숨소리가 묵직한 공기를 갈랐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아이가 들숨과 날숨을 주고받았다. 옆에 잠들어 있는 집사람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두웠지만 고단함을 엿볼 수 있었다. 순간 미안함이 올라왔다. 내 양쪽 어깨에서 손목 바로 위까지 찌릿한 전율이 일었다 사라졌다.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내 생각이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진 것이었다. 갑자기 드는 생각,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차량들이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지나갔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막혀 있던 길이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목적지를 정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도로가 얄궂게 보였다. 어쩔 수없이 나는 앞만 바라보며 차를 몰았다. 다들 급해 보였지만 유독 내 차만 빈둥거리는 듯했다. 좁은 2차선 도로를 쉼 없이 달려가는 차들이 부러웠다. 고가도로를 내려갈 때 즈음 차량 속도가 줄기 시작했다.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 앞으로 얄밉게 껴들기 하는 차량이 보였지만 안 껴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하이마트 사거리에서 유턴 신호를 기다렸다. 더 이상 직진할 명분이 없었다. 마침 횡단보도 신호가 점등되어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다. 내가 달려온 차선과 마찬가지로 차들이 거의 없었다. 나는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았다. 내 몸은 그대로였지만 발끝에서부터 시원함이 몰려왔다. 그 짧음이 아쉬웠지만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차창을 열었음에도 한강변은 막힌 도로와 달리 무척 조용했다. 같은 아침이었지만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안개가 낀 듯, 지면에 내려앉은 희뿌연 공기가 한몫 거들었다. 늦가을 차가움이 느껴졌지만 싫지 않았다. 평일이라 고수부지 주차장 곳곳이 비어있었다. 쉬는 날 한강에 오면 늘 대고 싶었던 자리에 차를 세웠다. 바로 앞에 강물과 멀리 서울 타워가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있었고, 근처에 깨끗한 이동식 화장실도 있었다.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회색 빛 하늘 위로 이름 모를 새가 날아갔다. 어디를 향해 날아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새는 한남대교 쪽으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새가 점점 내 눈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뗄 수가 없었다.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괜찮아’하며 위로했다. 마음은 애써 나를 속이고 있었다. 내 안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과 또 다르게 움직이는 마음이었다. 두 가지 생각, 선택의 순간마다 불현듯 튀어나오는 어떤 마음이 나와 나를 부딪히게 했다.


내가 들어선 편의점은 깨끗했다. 나는 육개장 사발면을 집었다. 다른 라면과 달리 유독 얇은 면발과 시원한 국물은 언제나 나를 만족시켰다. 적은 양이 불만이기는 했지만 두 개를 먹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사발면 두 개를 동시에 먹어 본 적이 있었다. 그 양은 배부름을 떠나서 상상을 초월했다. 국그릇 안에 합쳐진 사발면은 그 양이 너무 많아 민망할 정도였다. 나는 그 이후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한 개 이상은 먹지 않는다. 삼각 김밥을 하나 추가하면 모를까.


편의점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혔다. 순간 내 손에 들려있는 사발면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얇은 면은 그새 딱딱함을 잃어버리고 갈색 국물 품 안에 부풀어 있었다. 푹신푹신해 보이는 면발이 침샘을 자극해 왔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용기에 나무젓가락을 갔다 댔다.


학력고사를 앞두고 늦은 밤까지 독서실에 있었던 우리는 배가 고팠다. 어김없이 밤 10시가 되면 휴게실에 둘러앉아 사발면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똑같은 나무젓가락이 올려져 있는 사발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숨 죽인 그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다. 고작 3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 기다림에 지쳐 뚜껑을 벗겨내면, 나 역시 설익어 어색하게 엉겨 붙은 면을 입에 넣었다. 간혹 다른 친구는 고독한 수행을 하기도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나는 볼품없는 나무젓가락 끝자락에 누에고치처럼 올라탄 면을 연거푸 입안에 넣었다. 약간 짠 듯했지만 적당히 불어있는 면이 제법 맛있었다. 라면은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훌륭한 음식이었다. 단 돈 천 원이면 근사하게 한 끼를 때울 수도 있었다. 작은 라면 용기는 젓가락질 몇 번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몇 가닥 남아 있는 면과 함께 국물을 삼켰다. 빈 스티로폼 용기 아래 스프 알갱이들이 듬성듬성 모여있었다. 텅 빈 스티로폼 용기가 갑자기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편의점 입구 옆에 마련된 분리 수거함에 라면 용기를 버렸다. 비로소 생명을 다한 용기는 다시 태어나거나 운이 없으면 오랜 시간 땅 속에 묻혀 백 년 이상을 갈 것이다. 고작 10분 정도 임무를 마치고 나서의 삶이 고단하게 느껴졌다. 수집되지 못한 스티로폼은 자연과 동화되지 못할 것은 뻔하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공터에서 흙을 파다 보면 가끔씩 젖은 스티로폼 쪼가리들이 나오곤 했었다. 라면 국물 같은 색을 띠고 물기를 먹어 축축했었다. 내가 써왔던 그 많은 스티로폼과 비닐봉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차가운 공기와 함께 담배 연기가 폐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아침에 피우는 담배는 독하다. 또한 그 연기는 속이 비었든 아니든 고독으로 몰아간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그 느낌이 같았다. 가게 자리를 알아봐야 할 텐데 하며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지잉’ 모터 소리와 함께 운전석 의자가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나는 다리를 뻗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없는 진한 어둠이 나를 덮었다. 다만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어떤 빛의 잔상들이 길게 또는 작은 원으로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알 수 없는 빛과 어둠은 흡사 우주공간을 연상케 했다. 어쩌면 이게 우주일까라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을 수 있는 것, 원치 않는 것을 안 볼 수 있는 것, 참 다행이었다. 어떤 도구도 없이 이 세상과 단절할 수 있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몸이 지치고 힘들 때도, 또 정신이 고단하고 아플 때도 누구나 먼저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으면 잠시일지라도 분명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때와 달리, 감긴 눈 속에 담긴 어둠이 더 깊고 짙어 보였다. 가끔씩 멀리서 경적소리만 들려올 뿐, 그 누구도 어둠에 끼어들지 못했다. 무기력한 편안함이 밀려왔다. 시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느낌이 들었다. 곧 어둠은 나를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갈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 힘든 세상에 나를 던져 놓을 게 뻔하다.


오전 일찍 도착한 학원은 언제나 내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했다. 며칠 째 등원하고 있었지만 항상 그 느낌 그대로였다. 썰렁함과 불편함이 내 마음의 전부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초라함도 있었다. 계단을 올라 햇살이 간간히 들어오는 복도를 지나 강의실 문을 열면 대여섯 명 정도의 수생들은 고개를 처박고 책을 보거나, 엎드려 있었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나도 그들도 서로를 몰랐다. 그런 사실이 편했지만 학원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강의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지정석은 없었지만 암묵적으로 정해진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는 보통 개강 첫날 정해진다. 수강 인원이 적을수록 지정석은 당연한 듯 만들어진다. 내 자리는 맨 뒷자리 하얀 벽에 가까이 붙어 있었다. 강의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강의실 공간을 떠돌다 사라지곤 했다. 어떤 사적인 말도 없이 선생님은 기계적으로 수학 공식을 풀어댔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가 잠잠하면 칠판과 백묵이 부딪히는 소리가 목소리를 대신했다. 경쾌한 느낌의 그 소리가 정 없어 보이는 선생님보다 편안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인내해야만 했다.


잠들었던 내 눈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스르르 떠졌다. 핸드폰이 울린 것도 아니고, 주위가 시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불편하게 누워있었음에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누구나 혼자가 된다. 잠시 내가 눈을 감아도 그 순간 혼자가 된다. 아내와 한 침대에 누워있어도 눈이 감기면 혼자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외로운 건,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양이 중천에 올라 있을 시간이었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 희뿌옇게 서울타워가 보였다. 회색 빛 하늘과 마찬가지로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도 같은 색이었다. 높은 빌딩과 만나 있는 하늘과 강물이 같은 색이라는 게 씁쓸했다. 내가 무심했던 사이 이렇듯 강물도 하늘도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어릴 적 보았던 색과는 달랐다. 어른이 된 지금, 세상은 온통 회색이다. 문득 직장이 그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겁이 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가면 힘들다는 누군가의 말이 어느새 마음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었다. 회색 빛 세상처럼 내 마음도 회색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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