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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Jan 20. 2022

쥐 2

2.

내가 앉아 있는 홀에서 멀리 떨어진 좌식 테이블에 젊은 남녀  쌍이 불그스레한 얼굴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인근 나이트클럽에서 나왔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밤새워 술과 춤에 취해 놀다가 같이  다른 친구와 달리  좋게 눈이 맞아 배도 채울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을 것이다. 흥건히 취한 듯한 남녀는 계속해서 웃음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남자는 호남형은 아니었고, 그와 달리 여자는 갸름하고 세련된 얼굴이었다. 여자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그들을  순간부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자유로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서글픈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눈에 국한된 현상만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해서 느끼게 될 포괄적인 거다. 두 남녀의 젊음도 아니었고, 이른 시각 예쁜 여자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부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거였다. 어른이었기에, 이제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에 부러운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엿들을 수 있는 건, 웃음소리 밖에 없었지만 내 눈과 귀는 쉽사리 그들을 떨쳐내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을 뿐,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달리, 지금 같은 상황을 그냥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도 온전히 나에게 몰두할 수 있는 사람, 떠오르는 어떤 생각도 없이 밥만 먹고 식당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그와 그녀의 웃음소리가 또 한 번 홀 안을 떠돌았다. 이른 아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지만 착각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부러움이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몰려들었지만 청국장이 담긴 뚝배기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자 내 눈과 생각이 잠시 음식으로 옮겨갔다. 따라 나온 넓은 대접에 공기 밥을 통째로 털어 넣고 청국장을 몇 술 떠 밥을 비볐다. 계란 프라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을 접었다. 나는 비벼진 밥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내가 밥을 몇 숟갈 뜨는 사이, 어느새 여자가 일어나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조금 더 돌려 여자를 보았다. 발그레한 두 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아래 빨간색 립스틱이 입혀진 입술이 보였다. 분명 섹시하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새 생각은 잦아들고, 나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 여자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다행히 내 눈과 그녀의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내 시선이 조금 길다고 느껴졌을 때쯤, 들고 있던 숟가락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숟가락의 어색한 움직임이 몸과 마음에 전해졌다. 여자가 내 옆을 지나쳐 갈 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혼자가 된 남자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후물거렸다. 여자가 아깝다는 생각이 또다시 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거리는 온 통 숨을 죽이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휘황찬란했던 불들은 다 꺼졌고, 술 냄새 짙었던 거리가 여느 아침 거리처럼 똑같았다. 잠원동 굴다리 쪽으로 내려가는 내 등 뒤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겨울을 앞둔 바람은 싸늘했다. 비단 겨울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속이 든든하면 어떤 바람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방금 뱃속을 채웠는데도 찬기가 느껴지는 것은 채워지지 않은 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새벽이라 차를 세워둔 유료 주차장 관리인이 안 보여 도둑 주차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기본 주차 30분, 삼천 원 아꼈다는 사실에 고수부지로 가는 내내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작은 것에 욕심부리는 내가 가벼워 보였지만 그게 나였다. 어제 내가 머물렀던 자리 바로 옆에 차를 세웠다. 나는 운전석 의자를 뒤로 최대한 밀고 등받이를 젖혔다. 내 눈앞으로 더 넓은 하늘과 한강이 또다시 들어왔다. 어제와 달리 자리가 낯설지 않았다.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내 뇌가 벌써 정보를 저장하고 있었다. 졸리지 않았지만 시간을 때우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잠에 들면 시간을 훌쩍 뛰어 너머 열한 시, 아니면 열두 시까지 내가 인지 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은 잠들었다는 기억과 잠에서 깨어난 순간에서 다시 시작할 뿐, 중간은 없을 것이다.


문득 왜 생명체는 필히 자야만 하는지가 궁금했다. 왜 잠을 통해 기운을 채워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이나 동물을 그렇게 창조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사뭇 의아했다. 자연스러운 잠의 모습과 또 다르게 가끔은 매일 잠드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 우주에 우리와 다른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잠들어 있는 인간의 모습이 괴기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수면상태는 죽음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다. 어쩌면 죽음과 수면은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잠이 모이면 죽음이 된다. 잠이 곧 죽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해왔었다. 죽음이란 잠들어 있는 것처럼 영원히 잠을 자는 것이라고. 움직일 수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깊은 잠의 상태,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의 기억이 없듯이 죽음에 이르면 잠을 자듯 내 모든 기억과 내가 분리되는 상태, 그게 죽음이 아닐까? 나는 그게 죽음다워 보였다. 내 육신과 영혼이 아무런 의미 없이 흙이 되어 사라지고 마는 것, 죽음을 맞이하기까진 절대로 알 수 없겠지만 때가 오면 그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죽음 다음의 세상이 또 있다면 환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적잖이 놀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많이 당황할 것은 분명하다.


온몸이 노곤하게 좁은 자동차 시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원했던 대로 곧 시간 여행을 할 것이다. 내가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유일한 시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몸이 잠들고 내 영혼이 잠드는 시간이었다. 잠들고 싶은 마음만큼 서서히 발 밑에서부터 싫지 않은 기분이 올라왔다. 나는 어떤 몽롱함 속에 아무런 저항 없이 내 몸을 맡겼다. 그 몽롱함은 아쉬울 만큼 짧은 시간 몸 전체에 퍼져 나갔지만 편안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런 기분은 내 몸과 정신의 상태에 따라 그 길고 짧음이 확연히 구별되곤 했다.


눈을 감으면 멀지 않은 곳에 우주가 있었고 그 가까이에 죽음이 있었다. 차량 스피커를 통해 이니그마의 ‘dolphin of dreams’가 흘렀다. 구슬픈 멜로디에 눈물이 나려 했다. 차 안 가득 채운 멜로디와 내 정신이 맞물려 술에 취한 듯 기억의 스위치를 내렸다.


아무도 없는 집, 내 작은 몸뚱이를 숨기기에는 꽤 넓은 집, 사방이 막혀 어두운 집, 햇볕을 보기가 어려웠던 집, 나는 그 집 한가운데 강아지처럼 누워 있었다. 한 여름이었지만 차가운 마루 바닥은 썰렁한 기운을 내 온몸에 전했다. 내 눈앞, 수돗가에 빨간색 함지 대아가 놓여 있었고 그 바로 위로 수도꼭지가 보였다.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늘 봐왔던 익숙한 풍경, 나는 멍하니 눈을 떼지 못했다. 저 함지 대아 밑에 아직도 지렁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키색을 띤 커다란 지렁이, 그 지렁이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물놀이가 하고 싶어 함지 대아를 양지바른 곳으로 옮기려는 순간, 뱀 같은 지렁이가 내 발아래서 발버둥 쳤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몸에 전기가 올라왔었다. 더운 여름 우리가 등목을 하고 가끔씩 수박 한 덩이가 떠있었던 함지 대아 밑에서 지렁이가 미끌미끌하게 몸서리쳤었다. 벌어진 입을 닫을 수 없을 만큼 뱀 같았던 지렁이, 그 흉측함에 나는 수돗가를 멀리 할 수밖에 없었다. 습하게 젖어 윤기마저 흘렀던 시커먼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커다란 지렁이가 그 무엇보다 무서웠다.


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왔나 싶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나무로 된 현관문이 열리고 뜻밖의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 시간에는 절대 올 수 없는 사람, 늦은 밤에나 볼 수 있는 얼굴,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버지가 마루로 올라오고 있었다. 어떤 말도 없이 아버지가 나를 지나쳐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도 할 말이 없었나 보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아까보다 더한 썰렁함이 내 몸과 마음에 퍼져나갔다. 열린 문틈으로 높은 베개를 비고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보리차 한 잔 머리맡에 놓아두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어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조용히 닫았다. 올려다본 하늘은 해가 서쪽으로 반쯤 기울어 있었다. 아직도 내가 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둑길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숨이 막혀 올 때까지 달렸다.


시계를 보지 않고서는 잠들었던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와 함께 잠들어있던 휴대전화를 깨운 주인공은 저금리로 신용대출을 해준다는 은행 상담사였다. 저금리 신용대출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 10% 이하의 신용 대출을 받을 수 있은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다. 돈이 필요했지만 나는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전화를 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회사를 나왔으니 저금리를 떠나 신용대출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서글픔 비슷한 것이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집에서 두 아이와 씨름하고 있을 집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기지개를 켰다. 내 두 팔을 뒤창 문을 향해 비스듬히 길게 쭉 폈다. 뻐근하고 저릿저릿한 느낌이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느껴졌다. 내 머리 뒤로 두 개의 카시트가 보였다. 한쪽에는 빨간색 카시트가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체크무늬 카시트가 있었다. 하나와 두 개는 달랐다. 하나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뿌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차에 타면 좋은 아빠가 된 것처럼 착각에 빠져 카시트를 자랑하곤 했다. 잠자리가 조금 불편해 지기는 했지만 그 불편함은 흐뭇한 미소로 돌아왔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깊은숨과 함께 연기를 들이마셨다. 두껍고 진한 연기가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곧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온 연기는 윤기를 잃어버리고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서서 몇 번을 들이마셨다. 어느새 담뱃불이 필터 가까이 와 있었다. 나는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모여있는 화단 모서리에 던졌다. 고만고만한 길이로 모여 있는 꽁초들 사이로 내가 던진 꽁초가 원래부터 있었던 냥 자연스럽게 섞였다.


경기가 좋지 않아 권리금 없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는 얘기를 뉴스나 신문에서 접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알아본 곳 중에 권리금 없는 가게는 없었다. 권리금이 없거나 저렴한 가게를 찾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권리금이 싸다 싶으면 보증금과 월세가 턱없이 비쌌다. 권리금은 물론 모두 비싸서 발 품을 팔고 다니는 내내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나는 비좁은 차 안에서 두툼하게 올라 있는 햄버거를 위아래로 눌러 베어 먹기 쉽게 납작하게 만들었다. 금세 햄버거가 반으로 줄었다. 풍성함이 사라진 모습이 생각과 달리 실해 보였다. 또한 납작해진 햄버거는 좀 전과 그 무게 감이 달랐다. 같은 햄버거였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무게에 대한 변화는 없었겠지만 분명히 손에 들여 있는 햄버거는 더 무거워져 있었다. 머리가 햄버거의 부피를 따라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작아진 햄버거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거품 빠진 햄버거는 먹기에도 맛도 좋았다.


내가 간절히 원하지만 나에게 절제를 요구하는 것들, 나는 늘 그것들과 싸워왔다. 해도 되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들, 하고 싶지만 한 편으로는 하기 싫은 것,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상황에 따라 절제를 요구하고 내 안에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이를 떠나 같았다. 옳은 선택과 그릇된 선택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선택에 앞서 무수히 고민했던 시간은 현재의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주기 위함이었는지를 묻고 싶다. 내 이기와 내 욕심이 항상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하나의 결과물 그리고 초라함과 비겁함 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저 바라보며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차창을 조금 열자, 언제인가 맡아보았던 비릿한 냄새가 내 코 끝에 전해졌다. 바람과 함께 흘러온 그 냄새는 강물과 같이 움직였다. 저 멀리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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