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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Jan 21. 2022

쥐 3

사직서를 내고 사무실을 빠져나온 날, 유독 거리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늘 다니던 길이었지만 다른 때와 달리 차이가 있었다. 오랜 시간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불편한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애써 홀가분하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내 발걸음은 마음을 따라가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잘한 선택인지, 잘못된 선택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옳은 선택이었기를 바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생각을 만드는 일뿐이었다.


내 앞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공기를 헤치며 분주히 움직였다. 나와 달리 다들 갈 곳이 있었고 시간에 좇기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속에 포함된 한 명이었지만 뭔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다고 할까? 외로움도 쓸쓸함도 아닌, 소외감 같은 거였다. 도태, 낙오와 같은 기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전과 다른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나를 초조하게 몰아갔다. 오로지 음식점을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막연함은 소외감과 맞물려 나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내색할 수 없었지만 나는 회사를 나온 순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초라해서인지 부동산 사무실 사람들은 나를 달갑게 보지 않는 듯했다. 점포를 구하고자 하는 나에게 귀찮은 듯 단답형으로 말하곤 했다. 또한 억 단위를 거론하며 나를 위축시켰다. 내가 얻고 싶은 점포는 10평 남짓이었으나 60평 70평을 얘기하며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나는 위축돼 바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발 품을 팔며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작은 희망 같은 것도 보이질 않았다.


점포는 공인중개업소를 통해서만 매물을 확인할  있었다. 구할  있는 점포는 곳곳에 많았지만 드러나 있지 않았다. 간판이 빼곡한 거리, 태연히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 태반이 매물이었다. 권리금을 제대로 받기 위해선 가게를 내놓더라도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불과 며칠 전에 내놓은 점포도 있을 있고, 임자가 나타나면 판다는 식으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점포도 었다. 고작 이삼 일이었지만 드러내지 않고 매각하려는 점포와 껌처럼 붙여 있는 권리금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이쪽 세계의 생리를 알았다. 어떤 낌새도 없이 태연하게 영업했던 음식점이  며칠 만에 다른 간판으로 올라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겨울의 문턱에 있었지만 낮 시간 거리 곳곳에 뿌려진 햇살은 겨울이 오고 있음을 잊게 했다. 햇살은 노란빛을 띠고 있었고, 내가 걷고 있는 길 양 옆으로 양지와 음지를 구별해 주었다. 양지바른 쪽은 환하게 웃으며 길을 터주었고, 밝음이 모자란 음지는 수줍게 길을 내주었다. 나는 일부러 햇살이 드는 쪽으로 걸었지만 내 옆으로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진 음지를 의식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밝음과 어두움, 기쁨과 슬픔이라고만 느끼고 표현하기에는 음지가 갖고 있는 것이 많아 보였다. 밝음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꽤 중요하지만 어둠과 슬픔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어두움 없이 밝음이 존재할 할 수 있을까? 기쁨이라는 것도 슬픔이 있어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슬픔을 알기에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의 슬픔은 삶을 조금 더 숭고하게 만든다. 슬프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나는 지금 슬프다. 그렇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나를 위로해야 한다. 힘없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봐야 한다. 내가 슬픈 것은, 어쩌면 나를 사랑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햇살은 계속해서 길게 이어진 길을 두 갈래로 양분하며 나를 따라왔다. 높지 않은 건물이 양 옆으로 즐비하게 이어진 일방통행 길을 노란빛과 회색 빛으로 나누었다. 곳곳에 부동산 간판이 보였지만 나를 위해 열어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어제처럼 신사시장을 향해 걸었다. 늦은 오후 거리와 식당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모네 백반집을 지나쳤을 때쯤 허기진 배 채울까도 생각했지만 내 발걸음은 이미 멀리 와있었다.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보다 빨리 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내 양쪽으로 즐비한 음식점과 점포를 지나치면서 점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분명해 보이는 내일 때문에 그리고 진전 없는 발 품 때문에 불안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 채 나는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술 생각이 간절했다. 오가는 대화 없이 혼자 술이 마시고 싶었다. 나는 점포가 아니라 혼자 마실만한 술집을 찾기 시작했다. 혼자 마셔도 덜 창피한 술집을 찾아야 했다. 늦은 오후라 혼자 먹기에 거리낌 없는 음식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중국집이 조금 더 편안하지 않을까 했다. 늦은 점심시간, 눈치 안 보고 술과 음식을 먹기에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어지러운 간판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고 있을 때, 신사역 사거리 직전에 있었던 허름한 중국음식점이 생각났다. 나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라면 내가 생각한 대로 초저녁까지 편하게 소주 한 잔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검은색으로 ‘동보성’이라 쓰여있는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잡고 탕수육과 소주를 주문했다. 단무지와 양파 그리고 춘장이 먼저 나왔다. 손때 묻은 하얀색 플라스틱 컵에 담겨있는 엽차를 마셨다. 색깔은 갈색이었으나 맛은 맹물이었다. 기대도 없었지만 유쾌하지 않았다. 슬슬 음식 맛은 어떨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정면으로 주방이 보였지만 움직이는 하얀색 토르소 조각상을 보듯, 얼굴은 보이지 않고 러닝셔츠를 입은 주방장만 보였다. 얼굴을 보면 대략 음식 맛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뚜껑을 비틀고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그리고 빈 속에 소주를 부었다. 소주가 달게 느껴졌다. 나는 질퍽한 소스가 얹어진 탕수육을 연거푸 집어 먹었다. 유리문이 힘차게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와 짜장면을 시켰다. 보험 영업을 하는 듯 외국계 보험사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늦은 점심을 먹는 듯했다. 나와 두 눈이 마주쳤지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시선을 피했다. 가끔 이렇게 마주치는 시선에는 늘 어색함이 담겨 있다. 애써 피하지만 기분이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다. 그저 지나쳐 가는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특별한 게 있다면 그저 눈이 마주쳤다는 거다.


탕수육이 바삭함을 잃고 퍼지기 시작했다. 내 몸도 질퍽거렸다. 천정에 여기저기 박혀 있는 등이 길게 번져 보였다. 여러 개의 노란 불빛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했다. 취기가 올라와 몽롱해지면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채워진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드는 생각들. 내 머리 안을 가득 메운 이런저런 생각, 그것들은 술 취한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몰아간다. 내 몸이 더 흔들거렸다. 뒷머리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계속해서 취해가고 있었다. 남아 있는 소주병을 살폈다. 혼자 마시는 소주는 쉽사리 줄지 않았다. 술병이 비워질수록 술이  쓰게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내 그림자가 길어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림자는 두 개가 되었다가 하나가 되고,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곤 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림자를 쫓았다. 앞서가는 검은 그림자처럼 내 마음에도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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