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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May 25. 2019

번외.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마음

부모와의 애착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은 나를 두고 "쓸쓸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쓸쓸함의 기원에 대해 각기 다른 추측들을 하지만 그중 제일 확신에 찼던 사람은 나에게 '어머니가 맞벌이를 하셔서 빈집에 혼자 있던 경험들이 만들어낸 쓸쓸함'이라고 했다. 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혼자 있었던 시간들이 만들어낸 쓸쓸함이라는 말이 꽤나 그럴듯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흘린 눈물 탓일까? 그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엄마가 있어야 할 공간에 엄마가 없었고 그 공간을 어린 내가 스스로 채워야 했기 때문에 쓸쓸함이 자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쓸쓸함은 영원히 아무도 채워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쓸쓸함은 하나님도 신앙심도 채울 수 없는 무언가라고 했다. 꽤 맞는 말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빈집의 문을 내가 열고 들어왔을 때 내가 "다녀왔습니다!"라고 크게 외쳐도 대답이 없어서 신발장 앞에서 혼자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소소하게 기분이 나쁜 일들이나 마음이 애매할 때에도 나를 보듬어 줄 사람이 딱히 없었던 것도 맞다. 어제는 같이 웃던 친구가 오늘은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거나 오늘 지우개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아무도 빌려주지 않았다거나 하는 일들에 대해서 그 누구도 내 마음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그 시간에 부모님들은 그저 힘든 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에 돌아와서도 나는 그 마음들을 다 말하지 못했다. 3시 무렵부터 7시 무렵까지 나는 내 마음속 쓸쓸함을 키우면서 조금씩 입을 닫고 감정을 나누는 문들을 좁혀나갔던 것 같다.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말하고 거절받을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가방에 여분의 지우개를 챙기는 대안을 찾아나갔다. 어제는 같이 웃던 친구가 오늘은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면, 앞으로는 아무와도 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는 시간들 속에서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찾아갔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름의 사정거리 같은 것도 만들어갔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이며 우리의 관계는 언제든 깨어져도 나를 해치지 않게 하겠다는 그런 마음들이었다. 그렇게 나를 지키기 위해 학습된 거리감은 몇몇 사람들의 눈물로 좁혀지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 사람의 말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또 전부 맞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때의 감정을 집에 없었던 엄마의 탓이라기보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시대의 중산층들이 살던 동네에서 거의 모든 엄마들은 하교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 있거나, 고학년의 경우 집에서 간식을 준비해줬다. 그러다가 옆동네의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정말 몇몇의 엄마들만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상대적 빈곤'이나 '상대적 박탈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옆동네에서 일을 하지 않은 엄마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우리 엄마의 직장이나 소득 수준은 그 동네에서 높은 수준이었고, 학교 일에 관심이 없는 엄마에서 담임선생님들이 부러워하는 엄마가 되는 모양새를 보면서 참 어른들은 자기들 기분에 따라 말하고 사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엄마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지친 마음과 몸을 그 누구에게도 의탁하지 못했고,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한 채로 학원을 가야 했다. '빈 집에 아이들만 두는 것은 방임'이라고 생각한 엄마의 돌봄 의탁이었다. 내가 학교 준비물도 잘 챙겨가지 못하는데 학원 준비물이나 학원 숙제를 스스로 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사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이자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어제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친구들이 학원에 또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야 했다.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눈물이 나고 그러다 보면 엄마가 먹고 가라고 했던 간식을 못 먹고 학원 시간에 맞춰 겨우 뛰어가곤 했다. 속상한 마음들을 풀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그런 마음들은 계속 쌓여만 갔고, 사춘기를 만나 더욱더 크게 쌓이기만 했다. 그렇게 쌓인 분노는 엄마와 아빠를 향했고, 부모님은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습관처럼 하던 "다녀왔습니다."라는 말에 대답이 돌아오던 그 날을 한동안 잊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도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면서 이것저것 우리의 하교시간에 맞춰 간식을 해줬고, 그 음식들을 먹으면서 동생과 엄마와 나 셋이서 펑펑 울었던 날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울면서 이렇게 닫힌 마음들이 풀 수 있는 기한이 이미 지나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공부만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감정들이 풀어질 수 있는 때도 정해져 있구나 싶었다.


심리학과 아동학은 이런 감정들에 대해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존 보울비에 의해 정의된 애착 이론은 영아들이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한 명 이상과의 애착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그 관계를 '안전지대'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우개를 빌려주지 않는 마음을 안전지대에서 다시 풀어버리고 다시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0-3세의 아동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안전지대'의 역할을 하는 성인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것으로 훈육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그동안의 주장을 철회하게 되었다. 꼭 어머니일 필요는 없으며, 성인과의 건강한 애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산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진심을 다해 전한 나의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돌아오는 그런 따듯한 기억을 계속 품고 사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 특유의 거리감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담임선생님을 포함하여 학원 선생님, 과외선생님 등나의 어린 시절에 만난 성인들 중에 나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과연 그랬을까? 애착 이론대로 내 인생은 해석될 수 있을까? 그런데, 같은 부모와 같은 양육을 받았던 '인생의 대조군'으로서의 내 동생(여)은 과연 나와 같은 쓸쓸함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엄마에 대한 감정은 나와 같을까? 여전한 질문들 속에서 나는 기질이나 성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감정들에 대해서 사회 정책이 어디까지를 국가의 역할로 규정하고 복지제도를 설계할 것인지에 대하여 질문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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