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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Apr 03. 2021

4.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은 누구에게 기대고 싶나요?

우울증과 나의 병, 그리고 돌봄에 관한 이야기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원인을 알 수 없이 조금씩 아팠다. 시름시름? 이라기보다 음... 갑자기 하루, 이틀 아프고는 갑자기 그다음 날에는 안 아팠던 것처럼 완전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그리고 기억이 있을 때부터는 악몽을 자주 꿨는데, 자각몽이라는 단어는 나중에 알았지만 꿈이 너무 생생해서 피곤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악몽이라 울거나 숨이 가쁘거나 화가 나거나 식은땀이 나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종종 나에게 '기'가 약하다고 하기도 했고 잔병치레가 많아서.. 병원신세를 지는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배우자를 고르는 1순위는 "나를 잘 돌봐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야마토마치의 노인들'이란 책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부부간 노노케어를 하는 경우,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것이 사실 육체적으로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상하게 남편이 아픈 부인을 케어하게 되는 경우 n 년을 기점으로 부인이 죽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수사를 해보면 역시나 타살로 밝혀지는데.. "아내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죽여달라고 했어요."라며 남편이 범행을 자백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는 -심지어, 가정폭력을 일삼고 바람을 몇 번이나 피우고 등등의 전력이 있더라도-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가끔... '아들(범인)이 있는 경우'에 한정하여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나는 "나를 잘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고르고 또 골랐다. 밝고 귀엽고 나를 웃겨주고 귀여워해 주고... 또 병과의 싸움에 지친 나에게 웃음과 힘을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머감각도 있고 나름 건강한 지도 봤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만, 남들은 뭐 학력이나 연봉 같은 것들을 볼 때, 나는 그런 부분들을 세심하게 봤던 것 같다. 아무튼 근데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고르고 고르고 고른 남편에게 결국 나는 기대지 못했다. 기댈 수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은데, 또 그렇게 말하면 남편의 탓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니까, 이게 나의 상상 속에서부터 잘 못 된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렇다. 처음 말을 꺼냈던, 그 상상. 먼 훗날로 상정되어있는 그 '상상' 속에서, 나는 병과의 싸움에 지쳐있고 그런 나에게 웃음과 힘을 주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 장면'에서 나는 아직도.. 지금도.. 상상뿐인데도, 남편 앞에서 울지 않고 꼿꼿하고 정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상상은 현실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결혼 이후 나의 우울증은 계속해서 심해졌고 그 과정 속에서 남편은 조금 힘들어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닌가 보다 싶게, 남편은 계속 자거나 울기만 하는 나에게....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진지하게 뱉었고, 나는 그 뒤로 절대로 남편 앞에서 울지 않았던 것 같다. 무조건 웃는 얘기만, 무조건 웃긴 이야기만 하고 웃는 이야기만 했던 것 같다. 각자의 방에서 잠들기 전에 혹은 남편이 없을 때, 빈 집에 혼자 있을 때만 소리 내어 울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러다 보니, 더욱 병증이 심해졌던 것 같고 학교에서 회사에서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치고 나니 연기가 힘들어질 정도로 병이 더 깊어졌던 것 같다. 더 이상의 연기가 힘들어졌지만 나는 남편이 죄책감을 느낄까 봐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고, 남편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증인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간들 속에서.............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은데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저번 달 쯔음인가, 언제쯤인가.. 이혼신고를 한 뒤에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다. 여성들은 선천적으로 정말 무언가를 타고난 것일까? 싶을 만큼.. 극 중에서 우울증에 걸려본 적도 없는 아내가 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너무너무도 잘 돌봐주고 (거의) 완치 판정을 받아내고, 또 그동안의 병환에 대한 수기를 책으로 써서 출판을 하고 강연을 하는 등의 영화 같은 결말을 보여주는데, 결말 보다도 그 과정이 그 아내가 우울증 환자인 남편을 돌봐주는 과정이 정말 너무도 섬세하고 세심하고 부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영화 속에서 남편이 도시락을 싸다 말고 칼을 들고 와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놀라지만 덤덤하게 치즈 칼로는 죽을 수 없다고 대응하면서도 병원에 같이 가줄까?라고 묻는다든지 일단 회사는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는 단호함 같은 것들이 한없이 부러웠던 것 같다. 뭐 우울증이나, 세로토닌에 대해서 알아보는 과정이랄까 우울증에 좋은 음식들을 찾아보는 것들이나.. 치료법을 알아보는 부분이나... 그런 부분들도 약간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런 돌봄을 받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겉으로는 다카사키와 비슷한 반응을 했었지만 주변에서 가족들이 하루코처럼 대해줬다면 또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맞다.. 그리고 그 부분도 부러웠던 것 같다. 지하철!!  출근길 지하철을 힘들어했던 다카사키와 함께 하루코가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동안 힘들었겠다고 대단하다고.. 내일부터는 안 해도 된다고 해주는 장면에서 나는 정말 엉엉하고 울어버렸다. 나는 솔직히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나도 그게 공황인 줄 몰랐다. ktx를 타고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자기 부상 열차(!?)가 비행기 이륙할 때만큼이나 심장에 무리를 준다고 생각하면서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이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그렇기에 내 나름대로 ktx에는 화장실이 있고, 고속버스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불안한가 보다 했는데, 나 역시 우울증과 공황이 있어서 그랬던 거였다... 그 이후로도 많은 눈물 포인트들이 많았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들어서 이혼을 결심하게 된 쪼잔한 사람....입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본 날에는 당연하게(!) 하루코만큼 돌봐주지 않은 전남편을 원망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추하고 더럽고... 눈물 콧물... 침.... 까지 범벅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고, 또 제정신이 아닌 그런 말들도 하고 싶지 않았고.. 잠꼬대 같은 말들도 너무 창피하고 무섭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의 추한 모습들을 보지 않았으면 했고, 또 옆에서 더 이상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내가 해달라는 것은 그게 이혼이라도, 해주고 싶어 했다. "내가 이혼해주면, 니니는 앞으로 무조건 행복한 일만 하기야. 행복하게만 살기로 약속하는 거야!"라고 했던 그의 말속에서 충분히 그의 사랑이 담겨있는데, 굳이 과거를 흑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니, 이 말을 하려고 시작한 글은 아닌데.... 이 영화를 보고 또 우연히 일본 영화 <행복목욕탕>을 본 뒤로 자꾸자꾸... 이상하게.......... 뻗을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된다는 말이 계속 맴돈다.. 특히 나처럼 소심하고 소심한 찌질한 우울증 환자는.... 전화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런 소심한 사람은 다리를 뻗을 수 있는지 여부를 한참이나 보고 또 보게 된다. 내가 다리를 뻗어도 괜찮은지, 상대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지, 내 다리가 무겁지는 않을지.. 계속 확인하게 된다... 자꾸만 생각하게 되고 미안해지고 그냥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편이 제일 나을 것 같았는데, 남편에게 나는 돌봄을 받고 싶기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힘든 순간들을 함께 버티는 다카사키 부부 같은 그런 부부가 아니라 더 힘들기 전에 보내주고 싶었던 것 같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결혼 조건 1순위였던 성격? 건강? 유머? 는 틀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다리를 뻗을 수 있는지.. 내가 편하게 다리 뻗어지는지... 그리고 그 사람도 나에게, 편하게 다리를 뻗어 주는지 그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평범한데 감사한 일상이 되는지.. 그걸 봤어야 하는 것 같다....



그래 어쩌면 이게 잘된 건지 몰라
서로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할 테니
나이가 들어 주름살이 하나둘씩 늘어갈 내 모습을
넌 볼 수 없겠지

삶이 너무 힘들어 지치고 세상에 찌들어가는 

그런 모습 감추고 싶은 모든 걸 서로 보이지 않아도 돼,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015B  


참고문헌 및 자료

김동선. (2004).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궁리:서울

일본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2011)

일본 영화 <행복목욕탕>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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