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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Apr 09. 2021

5.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에 대해서

한참을 돌고 돌아서 이 매거진의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오롯이 혼자이고 싶던 여행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했고, 연애를 하다가 서른이라는 데드라인에 맞추어 결혼이란 것을 했다. 점점 아파가는 나의 몸과 정신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가쁜 숨을 내쉬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 더 해져서는 갑자기 이혼을 해버렸다. 이 마음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상처가 될 줄도 알았고 또 가족들까지도 뭔가 상처를 받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의 고집이 또 일을 냈다는 친구도 있었고 역시 극단적인 성격이라는 친구도 있었고, 또 갑자기 하나님의 순리를 찾는 친구도 있었고... 친구들까지 각자 조금씩은 상처를 나눠 가졌구나...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더 들고는 했다. 정서적인 지지를 받는 것 또한, 돌봄을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부담스럽지만 잘 받아내고 있다.


몇 년 전....이라고 하기엔 이제는 아주 옛날 영화가 되어버린 "I am Sam"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이라는 영화가 있다. 혹시 둘 중에 하나라도 보신 독자분이 있기를, 바라지만 조금 설명하자면 지능발달 상의 장애가 있는 성인 남성에게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I am Sam"의 영화에서는 미국 정부에서 아동 보호법을 이유로 생물학적 아버지인 Sam의 돌봄에서 딸을 분리해서 위탁가정에 위탁할 것을 권고한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변호사를 만나고 그 변호사가 딸의 의사를 확인 한 뒤, 후견인으로서 Sam이 직접 딸을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이러한 상황에 약간의 K-패치가 더해졌다. 똑같이 남자 주인공은 지능발달상의 장애가 있고, 딸이 있는데 그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범죄에 연루된다... 너무나 한국스러운 전개.. 그리고 더욱더 한국스러운 전개는 딸의 유일한 보호자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그 딸을 보호하는 이는 특별히 언급되지 않고 적당히 적당히 어딘가에 있다가 적당히 잘(!) 아빠가 있는 교도소로(?) 들어오게 된다. (짝짝짝!)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돌봄을 전공하고 있다고 밝혔기에 나는 돌봄 노동자 들을 주변에서 관찰할 일들이 참 많았다. 지금까지 대략... 15년쯤 관찰만 하고 있으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이렇게 브런치를 운영하는 것도 아마 순서이긴 할 것이다. 처음에 학부시절에 유행하던(?) 돌봄은 '스스럼없는 돌봄'이었는데 '격 없는 돌봄'이었다. 극단적인 예로, 신체장애인의 식사 돌봄을 할 때 자신이 먹던 숟가락으로 장애인의 식사를 같이 급여하는 식의 돌봄이 엄청난 극찬을 받았었다. 나는 솔직히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싫을 것 같았다. 교수님도 다른 학생들도, "가족 같고 매일 보다 보니까 형제 같아서 무의식 중에 그렇게 했는데 다행히 싫어하지 않아서 그냥 다음부터도 그렇게 먹었다."라고 하며 분위기가 고조되었는데.. 나는 너무 불편했다. 상당히 불쾌하고 비위생적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 2021년이라면 아마도 내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고 코로나 이전의 분위기가 정말 기억이 가물가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말 그랬고, 코로나 이전까지 -심지어 클라이언트(남자 장애인)의 자위를 대신해주는 (자칭) 친절한 사회복지사-가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나는 역시 현장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3학년 때, 장애인 복지관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실습을 나가서 목욕봉사팀의 사업을 참관하게 되었는데, 담당자분께서 실습생은 목욕봉사를 참여할 수 없고 봉사가 끝난 뒤 목욕탕 청소를 하면 되겠다고 하셔서 알겠다고 했다. 그냥 실습생에게 시키는 일이려니 하고 넘겼는데, 슈퍼바이저가 나를 불렀다. "왜 청소했는지 알아요?" / "뭐 실습생이 청소하는 게 뭐, 괜찮죠!"/라고 해맑게 대답했는데 나는 보기 좋게 오답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서 불렀어요.".... 당황스러워서... 쳐다보니 슈퍼바이저가 말을 이어나갔다. "다은씨는, 다은씨가 목욕하는 거 누가 들어와서 보면 어떨 거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 다은씨 몸 닦아주고 머리 말려주면 좋을 거 같으세요?" 순간.. 고개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꽂혀버리는 느낌이었다. 현장이 맞지 않네 어쩌네 떠들던 과거의 나를 다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눈물이 핑 돌만큼 화가 났다.. "그런 분도 계세요. 실제로. 100킬로가 넘는 남자분이신데, 본인 어머님이랑 정말 오래된 자원봉사자분 1분 외에는 못 들어오게 하세요. 2분 이서만 목욕하세요. 거동도 불편하시고.... 두 분이서 이제는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시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하세요... 그 마음.... 아시겠어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솔직히 모르는 채로 살다가 작년 여름 막바지쯔음에 무릎 골절을 당해 열흘 정도 입원을 하게 되었다. 무릎이다 보니까 다리 전체를 깁스를 해야 했고 정말 누워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정형외과 병동이다 보니 다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간병인들의 열악한 노동처우에 대해서 수 없이 많은 논문들을 읽어왔지만, 간이침대 없이 잠드는 그들의 모습과 퇴근이 없는 24시간 대기 노동.. 열악한 식사 환경 등 많은 것들이 눈에 밟혔다. 그러다가 어떤 분이 들어왔다 소위, 이른바 "인싸"같은 분이었는데 그분이 어떤 할머니께 이것저것 물으시다 이내 할머니가 답을 하셨다. "딸보다 간병인이 더 좋아. 나랑 합이 맞잖아. 그동안 맞춰온 시간이 있잖아. 그리고 전문가잖아." 그 말속에 당신의 딸이 고생할까 걱정스러운 그런 마음이 정말로 없어 보여서 신기했고, 그다음 날 그분의 간병인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실제로 그러하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누군가를 돌봐준다는 것도 히든 일이거니와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다는 것도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이것이 쌍방이 합의, 아니 합이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휠체어에 타는 것도 미는 것도 목욕을 할 때 어딘가에 디디고, 기대고 하는 것들의 합(!!)이 정말 어떤 일들의 손발이 맞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을 볼 때에 정말 속궁합? 별 궁합? 사주궁합? 돌봄 궁합? 이런 것들이 정말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한국은, 또는 국가는 사회는 더 디테일하게 복지제도는 "누가 누구를 돌보아야 하는지"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동의 경우 "엄마"가 돌봐야 함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음은 너무 많은 이들이 말해서 입과 귀가 피곤할 지경이다. 그런데, "장애인"의 경우는 예외가 된다. "엄마" 혹은 "자녀"가 돌 볼 수 없다. 왜? 왜인지는 국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부정수급이란다. 나도 모르겠다. 왜 이런 이중잣대가 생긴 것인지.... 굳이 개입을 하자면,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나의 상식과는 달리 정 반대로 가고 있는 한국의 복지, 돌봄 제도... 에 대한 사회적 고민들... 장애인들은 무조건 시설로 보내고, 아이들은 무조건 엄마품으로 보내고 엄마들은 무조건 집으로 보내고 직장에서 사회에서 내쫓아 보내는 이 나라,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또 저만 그런가요?? 뭔가......... 친밀함이라는 인간의 감정과 정책의 영역들이... 조금 다시 설정되었으면 해요....
근데... 가족이라고, 또 다 잘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남이라고 다 전문가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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