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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Oct 31. 2023

우울증의 원인은 엄마? 응, 엄마!

바꿀 수 없는 현실, 바뀌지 않는 현실을 (다시) 마주하는 것.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일단 아침을 먹다가 엄마랑 한바탕 싸웠다. 이제는 참지 않고 울고 소리 지르고 싸우는 편인데, 그렇게 하니까 마음이 후련한 것도 같고 여전한 현실에 착잡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을 때, 상담사분이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다은씨 어머니와 같은 양육방식을 경험한 경우 자녀들이 이런 병증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잠을 못 자는 이유가 '긴장을 자주 하고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지면, 이어 상담사분들이 내게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그래서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을 하면, "역시 그렇군요."라면서 엄마의 양육방식이 나에게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왜 아빠는? 아빠의 영향은? 난 아빠에게 맞고 자란 시간이 많아서 아직도 적대감이 큰데 물리적 폭력은 멍이 없어지면 사라지는 문제인가. 우리 엄마가 얼마나 날 힘들게 키웠는데, 왜 심리학은 엄마에게 죄책감을 돌리는 거야? 엄마들도 힘들 텐데 왜 내가 우울하고 이러저러한 정신병적인 행동들을 죄다 싸잡아서 엄마 때문이라고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그럼 이 병을 낫기 위해 엄마와 연을 끊고 지내야 한다는 건가? 속상하고 억울하고 힘든 감정들로 상담을 취소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예정된 상담 회기가 끝나고, 정신과에서 전문의와 상담을 할 때도 이런 식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은 사춘기 때 치기 어린 마음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엄마 탓"으로 회귀되는 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른 병원으로 또 다른 병원으로 옮겨도 자꾸 내 병의 원인으로 늘 "엄마"가 소환되었다. 울컥하는 감정들이 쌓이고 싸여서 언제는 되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엄마가 뭘 했든, 솔직히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란 제 동생은 우울증 없이 잘 지냅니다. 무조건 엄마의 양육방식을 운운하는 것이 제 치료에 무슨 의미가 있죠? 무의미한 말을 되풀이하거나 한 사람을 악마화해서 비난하고 끝나는 상담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걸 원했다면 전문가를 찾을 이유가 없죠. 안 그런가요?" 너무 화가 났다. 한 시간에 6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 이상의 상담비를 내면서 사춘기 고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얘기나 하자니 본전 생각도 났다.


여러 상담사들은 비슷한 대답을 해줬던 것 같다. 엄마를 비난하고 손절하고 살라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거리를 둘 필요는 있다고, 그만큼 다은씨가 엄마에게 의지하는 것이 크고 또 엄마는 그 부분에 대해 나의 행동을 강하게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엄마가 날 힘들게 키웠다.'는 말도 스스로 엄마를 존경해서 하는 말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엄마가 "다은이 널 키우느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러니까 엄마한테 좀 잘하라고."라는 말을 수 없이 듣고 자라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속상하지만 또 돌이켜보면 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 내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늘 평가대상이었다. 어릴 때 제일 자주 들은 말은 "못생겼다."였다. 처음 나를 낳고 엄마는 울었다고 했다. "여자애가 이렇게 너무 못생겨서 앞으로 어떻게 살겠나"라며 울었다고 했다. 통통했던 어린 시절부터 "너 때문에 TV가 안 보인다."라는 말이나 "또 배고파? 그러니까 살찌지."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때는 속상해서 울기만 했지, 그게 모욕적인 언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뭔가 학교에서 속상했던 일이 있어서 엄마에게 얘기를 했는데 엄마는 "역시 네가 뚱뚱한 탓"이라고 하면서 다이어트를 시켰고, 그때부터 나는 아침마다 체중을 재고 100g 남짓의 밥을 저울에 재서 주면 딱 그만큼만 먹어야 했다. 그렇게 절식을 하고 하루에 3시간씩 강제로 걷다 보니 살이 많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총 8킬로를 감량했을 때, 엄마는 정말 너무 좋아했다. 아직도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뒤로도 통제는 멈추지 않았고 더욱 심해졌다. 가방에서 찬구들이 준 간식이 나오면 "내가 널 위해 어떻게 했는데, 네가 밖에서 이런 것을 먹고 다니냐"며 화를 내거나 분해서 울거나 가방 안의 책을 다 던졌다. 매일매일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니고 갑자기, 불시에 가방 검사 혹은 서랍 검사 등을 하면서 폭언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긴장한 상태였다. 솔직히 학창 시절에 다이어트만큼 학업에 대한 통제도 심했는데 학업은 내가 머리로 하는 일이라 성취가 별로 엄마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고 다이어트는 먹는 것을 통제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성과가 눈에 잘 보여서 더욱 심했던 것 같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그렇다.


대학에 가서도, 취업을 해서도, 심지어 이 집을 떠나 자취를 해도 엄마는 불시에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고 모든 것을 확인했다. 구석구석 청소는 제대로 했는지 이상한 것을 먹고살지는 않는지 등을 불시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검사를 하고 무언가를 찾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이 너무 싫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화를 내지 않고 보통 참아버린다. 화나는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래도 너무 화가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최대한 신경 써서 절대로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화가 나있는 모습이지만 최대한 냉정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간혹 타인의 감정이나 표정변화에 세심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화를 냈다고 생각한다. 근데 상담사분들은 이런 내 모습도 '엄마의 영향'이라며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야 한다고 했다. 언성을 높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화가 날 때는 화를 내고 또 그러다가 실수를 하면 정정하고 사과를 하면 된다고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유연성이라고 했다. 또 어떤 상담사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언성을 높여서 같이 싸워주기를 바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어떤 특정 감정에 휩싸여 있는 나 자신을 참기가 힘들다. 


엄마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추측하기로는 엄마의 불안한 감정이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욕구로 이어지고 그 통제에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안정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보통 볼펜과 책의 배열을 맞추면서 불안을 낮추는 편인데, 엄마는 '나(박다은)'를 통제하면서 불안을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상담사들은 이제 겨우 나아진 상황에서 본가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고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같이 살기로 결정한 것은 또, '엄마의 불안'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불쑥불쑥 불안한 엄마는, 나의 병을 알게 된 다음부터 불안이 더 심해졌다. 엄마의 불안은 늘 짜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매우 힘들어했다. 나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이유 없는 짜증에 솔직히 지쳤다고 했다. 다시 본가에 들어와서 통제를 당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거처를 정하기 애매한 상황이라면 들어와서 건강해진 모습을 좀 보여주고 불안을 낮춰주면 안 되냐는 동생의 권유에 나 역시 '마지막 동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다. 어느 정도 나에 대한 통제가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엄마의 나쁜 영향을 나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서 지금까지 잘 견디고 있고 오늘 아침에도 이런 일이 있을 때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전달하고 사과도 받았기 때문에 분명 이 동거가 잘 끝맺음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마지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터널을 나온 뒤, 마주한 일상이 꽤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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