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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Nov 13. 2023

드디어 체중이 줄고 있어! -1

항우울제 부작용과 이별하는 중: 내가 1년 이상 운동을 했네?

22년 2월 17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등록했다. 당시에 대략 한 달 정도 무기력하게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우연히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1'을 정주행 하게 되었는데 인생에 처음으로 '운동을 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차올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등록했다. 애매하게 날짜가 2월인 탓에 연말연초에 진행하는 초특가 할인 이벤트는 끝난 상황이었고, 또 이런 운동 욕구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3개월에 27만 원을 주고 등록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1년 회원권을 끊고 후에 양도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지만, 당시에는 3개월만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근데 한 달에 9만 원이면 진짜 비싼 가격이었네) 처음 등록한 날의 메모를 보니, 첫 달 동안 월수금 3일을 출석하고 그다음 달부터 식이조절을 시작해서 살을 15kg를 감량하겠다는 엄청난 포부가 적혀있다. 웃음만 나오는 귀여운 메모다. 


어떤 행동이든지 '습관'이 되게 만들려면 진짜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혹자는 6주 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목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 섣불리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나는 살짝 내 장점이자 단점인 '시간 강박'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무리 운동하고 싶은 의욕이 넘친다고 해도 안 하던 일을 하는 것에는 약간의 장치가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시간 강박이 있는 나는 '수업'이나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날의 G.X(그룹운동: 스피닝, 요가 등이 있음) 시간을 미리 예약한 뒤 그 시간에 늦지 않게 가서 수업을 듣고 후에 유산소 운동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운동 계획을 짰다. G.X 수업의 취소는 수업 1시간 전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나에게 강력한 채찍이 되었던 것 같다. 당시 적혀있는 메모들을 보니, 작심삼일이 아니라 계속 다녔던 것 같다. 심지어 운동한 다음날 '근육통에 아프지만 이상하게 재밌고 몸이 개운하다.' 혹은 '운동이 너무 재밌어서 내일도 또 가고 싶은데 무리하지 않고 월수금을 가기로 한다.'는 내용이 남아있어서 꽤 기특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2주 정도 행복하게 운동을 하던 중, 갑자기 의욕이 꺾여버리는 상황이 생겼다. 3월 4일. 코로나에 확진이 된 것이다. 며칠 뒤, 자가격리는 해제되었으나 당시의 나는 걷는 것도 숨이 차서 운동을 시작할 수 없었고, 3월 28일에 겨우 운동을 다시 시작했지만 스피닝(자전거)을 한 곡(약 2분)도 완주하지 못했으며 경사도와 속도를 조절해도 너무 힘들다는 메모가 남아있다. 그날 하루뿐만이 아니라, '오늘은 15분 겨우 걸었다.' 혹은 '오늘은 20분 성공.' 이런 글들과 함께 무기력하다는 메모가 많았다. 호기롭게 시작한 운동인데 갑자기 걸린 코로나 후유증에 성취는커녕 의욕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기력감이 온몸을 삼켰던 것 같다. 월수금 주 3일을 목표로 하던 운동 목표를 주 2회로 낮췄고, 강력한 채찍이 되었던 G.X는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걷기 운동만 하게 되었다. 그래도 운동량이 늘어서인지 5월 말에 2kg가 감량되었다며 조금 희망을 갖는 메모가 남겨있어 웃음이 났다. 더 많은 체중을 감량하기 위하여, 하루 소비칼로리와 섭취 칼로리 등을 적어두고 단백질 섭취를 고민했던 메모들이 몇 개 연달아 있어서 더 웃음이 났다. 그 당시에는 2kg 감량이 시작인 줄 알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움직이면 계속 감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운동 2-3개월 차에 무슨 단백질 섭취를 고민했던 건지 웃겨서 자꾸 웃음이 난다. 그래도 감량 욕심이 있던 나는 '여름맞이 PT이벤트'를 통해 6월 10일 첫 피티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운동이 재밌어졌기 때문에 러닝머신 말고 다른 운동기구에 호기심도 생겼던 것 같고, 이제는 숨차지 않을 정도로 운동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PT를 하면서 5kg 정도는 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PT선생님에게 배운 등운동, 복근 운동을 거의 매일 하면서 운동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는 중에 갑자기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렇게 두 번째 의욕상실 구간을 만나게 된다.


하필 다리를 다쳤다. 발등에 있는 뼈가 부러졌는데,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8월 20일 즈음에 교통사고가 나서 수술을 받고 집에 와서도 계속 누워있어야 했다. 답답한 마음도 상당했지만, 운동에 대한 의욕이 꺾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메모장을 보니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을 계속 찾아두고 운동을 했던 기록이 있다. 하늘 자전거를 하거나, 윗몸일으키기를 윗배만 자극하는 방식으로 하거나, 깁스를 한 채 레그레이즈를 하는 등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계속했던 것 같다. 부러진 뼈를 철심으로 잘 꼬아 두었고 예후가 좋아 운동을 해도 된다고 해서 나는 11월 16일부터 다시 운동을 하였고 몸의 균형을 다시 잡아갔다. 지금 돌이켜 보니 코로나와 교통사고로 의욕이 꺾이고 희석될 법도 한데 꽤 오래 운동을 한 것 같아서 신기한 것 같다. 다리가 좋지 않다 보니 균형에 문제가 많았고, 두 달여를 누워있으면서 몸의 균형이 많이 무너져 있어서 일단 자연스럽게 걷는 것과 누워서 하던 운동들의 개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운동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23년도를 맞이했다. 새해의 들뜬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캐나다로 가게 되었다. 외국에서도 운동을 하는 멋진 나의 모습만 상상했지 영하 45도의 날씨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캐나다가 3차 의욕 꺾임 모먼트일 것 같다. 일단 외국은 차 없이 생활하기가 많이 힘들기 때문에 헬스장에도 등록하지 못했다. 추위도 곧 지나갈 거라는 생각에 일단은 마트에서 요가매트를 하나 구입해 복근운동과 하체운동 플랭크 등만 계속했다. 별생각 없이 주 3-4회 하다 보니 캐나다에도 봄이 왔다. 지겹던 눈이 녹으면서 나는 근처 공원을 돌며 1만 보 이상 걷기 시작했다. 주변에 러닝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도 덩달아 러닝(런데이)도 시도하였고 근력운동이 아쉬워 근처 F45 스튜디오에 등록해서 다니기도 했다. 어떤 유튜버가 F45에 등록하고 2-3일을 누워있다고 했었는데, 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또 2주 뒤에는 두 시간을 연속으로 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면서 좋아진 체력을 즐겼다. 차는 계속 없었기 때문에, F45 스튜디오까지 왕복 15,000보 정도를 걸어 다녔으니까 좋아진 체력에 스스로 기뻤고 자랑스러웠고 또 즐거웠다. 한국에 들어가서 몸무게를 재보고 싶었다. 얼마나 빠졌을까? 


몇 개월 뒤 6월 23일. 한국에 들어와서 짐을 풀자마자 몸무게를 쟀다. 1g도 빠지지 않았다는 체중계를 보면서 정말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변한 나의 모습을 내가 아는데, 굳이 몸무게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다리에 박힌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7월 한 달 동안 누워있으면서 다리만 나아지면 또다시 운동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무슨 운동을 할까? 러닝을 해볼까? 헬스장을 다녀볼까? 이런 고민만 했다. 한국의 F45는 이미 외향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 같아 포기했고 이것저것 누워서 구경하곤 했다. 근손실이나 이런 걱정은 안 했다. 굳이 걱정할 근육도 아니었고, 체중이 1g도 빠지지 않아서 그런가 그냥 체력이 좋아진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만 했다. 약물 부작용으로 찐 살이 이렇게 안 빠지는구나... 싶으면서도 약을 먹지 말걸 그랬나?라는 생각하기엔 약 덕분에 지금 내가 살아있는 거니까. 약에 대한 생각이나 부작용이라는 생각 자체를 굳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우울증 약을 안 먹기 시작했다. (이미 약을 줄이고 있었음)


8월 11일 또다시 집 앞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딱 한 달 뒤, 9월부터 계속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열이 나고 춥고 무기력하고.. 나는 다리 수술이 잘못되었나? 아니면 뭔가 수술 후에 내가 섣불리 운동을 시작해서 그런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거의 매일을 무서워서 울었고 진통제를 먹으며 겨우 알바만 나갔던 것 같다. 도저히 운동을 나갈 수도 없는 컨디션이었기 때문에 결국 헬스장을 미루게 되었다. 두 달을 내내 아프다가 위염약을 먹고 조금 나아졌고 그 뒤로 나는 또 1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 날씨도 좋아서 그다음 주에는 주 3일, 그다음 주에는 주 4일, 그다음 주에는 주 5일로 늘려갔고 이제는 목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아침 식사 후에 1만 2 천보-7 천보 정도를 걷는다. 주말 중 하루는 쉬려고 했는데 습관이 되어 아침을 먹고 바로 걸으러 나가게 된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런데이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총 8주 차 프로그램에서 7주 차에서 멈췄었는데, 5주 차부터 시작할까? 하는 마음도 살짝 있긴 하지만 일단은 프로그램대로 무리하지 않고 1주 차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체력이 좀 남으면 더 걸으면 되는 거니까! 내년 2월 17일이면 운동 3년 차가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운동에 대한 의욕이 사라질 법도 한데, 지금까지 계속 운동을 해온 것도 나 자신이 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 약을 복용하고 20kg가 쪘고, 작년부터 계속 운동을 했지만 체중계의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체중계의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서론이 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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