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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Nov 28. 2023

드디어 체중이 줄고 있어! -2

대략 10년 만에 백화점 가기.

1년이 넘게 운동을 했지만 체중계 숫자는 변함이 없었는데, 최근에 쑥쑥- 숫자들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헬스장 등록일 기준으로는 7kg을, 오래오래 움직이지 않던 특정 숫자 기준으로는 4-5kg 정도를 감량한 셈이다. 한 달에 7kg 정도를 감량하는 다이어트 후기들이 많은 요즘에 이런 더디고 작은 숫자는 감흥이 덜하지만, 나와 부모님에게는 꽤 행복한 숫자였다. 드디어 앞자리도 바뀌었고, 또 감량되는 추세를 보면서 즐겁기만 했다. 약 부작용으로 찐 살이 영원히 빠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빠지는 것을 보니 진짜 병이 다 나은 것 같다며 우는 엄마를 보면서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또 나도 나만의 아픔이 아니었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 


약도 약이지만 우울증 환자는 아무래도 집 밖에 나가지 않으니까 강아지 산책용 운동복 몇 벌과 패딩 한 개로 겨울을 지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출근할 옷이 마땅치 않아 옷을 사러 부모님과 함께 근처 백화점에 갔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주일에 2일 정도만 출근을 했고, 날이 춥지 않아 적당히 지냈는데 이제 4-5일 정도를 출근하게 되면서 점잖아 보이는 패딩과 사무실에서 입을 경량 패딩, 패딩조끼 그리고 속에 입을 폴라티 등을 적당한 가격에 사야 했다. 아직은 사람 많은 곳이 부담스러워서 인터넷으로 적당히 사고 싶었는데 사이즈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고, 사이즈뿐 아니라 색상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분명 베이지색을 샀는데 금색이 와서 환불을 하고 나니 친구들이 11월에 유니클로에서 세일을 한다고 가보라고 했다. 일단 백화점에 도착하자마자 유니클로 매장에 경량패딩과 패딩조끼를 사려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여성복 코너가 있길래 L(라지) 사이즈를 찾았지만, 일단 그런 사이즈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XL(엑스라지) 사이즈를 입어보고 너무 크면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싶어서 입어봤는데 정말 딱 맞아서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같이 갔던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빠질 텐데 딱 맞게 사서 입으면 좋지 않냐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때부터 속상한 마음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 정도 빠졌으면 L(라지) 사이즈도 맞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조금 실망한 것 같다. 어떤 사이즈든지 나에게 맞는 사이즈를 입으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여성복 코너에서 나에게 어울리고, 또 괜찮은 사이즈를 찾기는 어려웠다. 약간의 불안증이 올라와서 그런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을 돌다가 남성복코너에 갔는데 (그동안 주로 남성복을 사서 입곤 했다.) 엄마가 갑자기 "남자 옷에 구스가 더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라면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나에게 남성복을 입어보라고 했고 M(미디움)사이즈를 입어보니 팔이 조금 긴 것을 빼면 여성복과 다르지 않아서 괜찮다고 답했다. 진짜 남자 옷에 구스가 더 많이 들었나? 의심스러웠지만 입어보니 확실히 여성복보다 구스도 더 많이 들어있는 것 같았고 여성복 특유의 비닐소리도 덜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의 숨은 뜻이 있겠지만, 나는 아직 패션보단 따뜻한 게 좋아서 남성복을 구입했다.


숏패딩도 사고 싶어서 여기저기 브랜드를 기웃거렸는데, H&M이나 8'second 같은 브랜드는 확실히 구스패딩을 찾기가 어려웠다. 젊을수록 추위를 덜 느껴서 그런가? 싶었다. 구스함량이 좀 높고 출근할 때 입어도 괜찮을 디자인을 고르면 가격대가 확실히 높아졌다. 30-40대 회사원을 겨냥한 브랜드들은 유니클로처럼 남성복 여성복 구분 없이 사이즈에 따라 골라 입을 수는 없었다. 포멀한 복장일수록 남성복과 여성복의 패션은 극명하게 다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여성용 매장을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여성용 숏패딩은 아무리 입어봐도 길이가 애매했다. 그리고 정말 모든 숏패딩에 허리를 졸라매는 끈이 달려 있는데, 한복 저고리도 아니고 씨름용 샅바도 아니고 뭘 이렇게 묶고 다녀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점원분이 "빼고 입으셔도 돼요~ "라고 다들 하시던데 막상 줄을 빼면 더욱 이상했다. 하나같이 길이가 짧고, 특이한 끈이 달린 것을 보면 내가 모르는 패션의 세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허벅지 중간쯤까지 오는 패딩을 찾았는데 그런 패딩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엔 패딩구매도 포기하고 무난한 폴라티를 찾아 나섰는데, 재질이나 사이즈는 적당히 타협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색깔이 문제였다. 검은색, 회색만 옷만 입던 나에게 여러 가지 다채로운 색깔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직은 패션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가 힘든 것 같았다. 


하루종일 백화점에서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66 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것은 꽤 고무적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사회적으로 '뚱뚱한 사람'에 속한다는 것도 여실히 느낀 하루였다. 나에게는 값진 성취이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성취는 아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사회적인 성취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듯이 나의 행복이 꼭 사회적인 성취는 아닌데 그 당연한 진리를 잠시 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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