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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루 Dec 29. 2021

조이럭 클럽 – 동양과 서양, 그 두 가지 삶의 방식

1.     두 종류(Two kinds)



영화 조이럭 클럽의 원작 소설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 준의 어머니는 다가오는 준의 생일날 피아노를 선물하기로 되어 있었다. 피아노는 준이 어렸을 때 직접 연주하던 것으로, 그때 이후 부모님 집에 남아있던 물건이었다. 어머니는 준이 생일날 그 피아노를 자기 집으로 옮겨가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런데 생일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딸이 어렸을 때, 천재로 이름을 떨치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준을 피아니스트로 키우려고 무척 노력했었다. 하지만 준은 교회 장기자랑 대회에 나갔다가 엉망진창으로 연주를 끝낸 뒤, 자신은 천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머니의 허영심 때문에 계속해서 피아노를 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모녀는 심하게 다투었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는 피아노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뒤로도 준은 살아가면서 어머니의 바람을 다 채워주지는 못했다. 프린스턴 대학 진학에도 실패했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가 작은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집세도 제대로 못 내는 형편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준은 부모님집에서 어머니를 추억하다가, 우연히 피아노 의자 안에 놓여있는 슈만의 소품집을 보고 따라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집은 잘 알려져 있는 트로이메라이가 들어있는, 바로 그 ‘어린이 정경(참으로 의미심장한 제목이 아닐 수 없는)’이었다. 준이 피아노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을 때, 어릴 때는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졌던 곡들이 저절로 술술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왼쪽 페이지에 있는 ‘만족’이라는 곡을 연주하다가, 다음에는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조르는 어린이’라는 곡으로 옮겨갔다. 놀랍게도 두 곡은 같은 곡을 반으로 나눈 변주였다. 멜로디와 전개가 똑같았기 때문에 초보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족’은 조금 더 긴 곡이지만 그만큼 박자가 빨랐고 ‘조르는 어린이’는 악보는 짧았지만 좀 더 느린 곡이었다. 준은 이 두 곡을 전부 연주하는 데는 거의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과 준의 어머니 쑤얀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어머니는 이민 1세대라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고 딸은 몸만 중국인일 뿐, 미국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더 이상 피아노 같은 건 치지 않겠다고 대들었을 때 어머니는 역정을 내며 ‘세상에는 두 종류의 딸이 있다. 첫 번째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중국인 딸, 두 번째는 순종하지 않는 미국인 딸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어린이 정경’의 ‘만족’은 부모 말에 순종하는 딸, ‘조르는 어린이’는 반항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딸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후자를 택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손이 다 굳었는데도 피아노가 쉽게 쳐지는 걸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바로 며칠 전까지도 ‘너에게는 재능이 있었어. 그런데 시도조차 안 해봤던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삶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 동양적인 방식과 서양적인 방식에 대한 우아한 메타포가 아닐까 싶다. ‘만족’과 ‘조르는 어린이’가 같은 곡을 둘로 나눈 변주라는 사실은 양극단의 두 가지 방식이 각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동양 사상이 주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전체나 집단에 개인을 맞추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대립과 투쟁이 지배적인 흐름으로 이어져왔다고. 이어령의 수필에서도 동양은 폭포를 즐겨 그리는 나라들이며 폭포란 중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인 반면 서양인들은 분수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물을 솟구쳐 오르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운명과 맞서 싸우고 문명을 발전시키며 계급 혁명을 이루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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