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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효녀지만 불안한 유튜브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게 취미다. 그래서 직업도 사람을 관찰해도 조금은 이해받을 만한 기자를 선택했다. 특히 나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관찰하는 게 취미다. 그건 딸인 나의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내가 뭐 하려고 했더라’ 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사는 정신없는 나와 달리 엄마는 항상 예상대로, 계획대로 생활하기를 원한다. 관찰 결과, 요즘 밤 9시 30분 이후 엄마는 항상 이 녀석과 함께 한다. 

 “아이고, 배꼽이야. 하하하하.”

 엄마의 웃음소리가 저렇게 큰 적이 있었을까 깜짝 놀란 어느 날이었다. 밤 9시30분이 훌쩍 넘었다. 그 시간이면 엄마는 항상 방에서 저녁기도를 마치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걸 알고 있다. 손 안의 세상, 휴대폰을 보며 까르르, 낄낄낄, 호호호, 하하하. 엄마는 하루의 스트레스를 유튜브로 푼다. 

 “그대 기억이~ 지난 사랑이~ 내 안을 파고드는 가시가 되어~ 제발 가라고~ 아주 가라고~ 애써도 나를 괴롭히는데~” 

 20세기 초반이던가 노래방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면 5번 중 1번 이상은 이 노래였다. 정말 잘 생겼던 민경훈이 살랑살랑 가볍게 마이크를 쥐고 부르던 우리 세대 ‘가시’라는 곡을 엄마가 따라 부를 줄은 몰랐다. 엄마가 7080노래를 넘어서서 이제 2000년대 노래까지 섭렵하는 젊은 언니가 된 것도 유튜브 덕분이다. 

 엄마는 꿈나라로 갈 때도 유튜브와 동행한다. 잠들기 전 집안 정비에 나선 나는 요즘 엄마 방도 살피고 잔다. 불켜진 엄마 방문을 열어보면 엄마는 항상 이어폰을 꽂은 채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다. 엄마는 잠들었지만 유튜브 화면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이쯤되면 유튜브가 엄마에게 최고의 친구이자 가족이다. 불효를 일삼는 나보다 훨씬 더 효녀같다. 

내 손안에 세상 유튜브에 들어 온 엄마, 중독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하면서도 엄마도 젊은이들처럼 기계문명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유튜브가 최고의 효녀구만. 그치?

 “노래도 듣고 신부님 강연도 듣고... 근데 그거 사실이야? 문재인이 뭘 잘못했다는데?”

 엄마의 주장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엄마의 말의 요지는 남북-북미회담이 이어지는 평화국면에서 협상의 진전이 더뎌지자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가 제 빛을 잃었고 그래서 한반도의 전쟁 위험이 높아졌다는 요지의 유튜브 영상 뉴스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난 그제야 뉴스를 전하는 플랫홈으로 유튜브가 효과적이고, 특히 어르신 세대에게도 잘 먹힐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가짜뉴스도 많이 떠다닐텐데 엄마와 엄마 친구분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염려도 됐다. 나는 심드렁하게 엄마에게 가짜뉴스가 많으니 기존 미디어로 '크로스체크'하면서 판단하라고 아는 척을 했다.

 그날 엄마가 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엄마는 밥 잘 안 먹는 손녀에게 콩순이 영상을 보여주며 밥을 먹이는 오빠 부부를 보고 유튜브의 존재를 알았다고 한다. 밤마다 유튜브를 보는 건 텔레비전이 한 대라 딸 눈치보느라 맘대로 채널을 돌릴 수 없어서일 것 같다. 자기 전에 방에서 노래 한 곡씩 듣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따져보니 내가 방에서 하는 행동과 하나 다르지 않다. 하긴 엄마도 기계 문명의 수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걸, 젊은이인 나와 생활의 편리함을 나눠야 한다는 걸 자주 잊고 살았다. 

 최고의 효녀이기도 하지만 가짜뉴스도 노출도 잦은 유튜브와 엄마의 관계를 나는 주의깊게 지켜보는 중이다. 눈 나빠지지 않게 적당히 보시고, 잠들기 전에는 영상을 끄고 편하게 주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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