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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외출이라는 선물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회사에서 멍 때리고 있을 때 가끔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는 집에서 뭐하고 있을까. 거실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며 유투브를 보고 있을 것 같다. 평화방송을 보며 재밌는 신부님 강연에 크게 웃는 모습도 상상이 된다. 3분 거리에 있는 성당과 5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성당을 다니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여기서 할 일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외출하고 구경하고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떤 행위를 말한다. 그렇게 설렁설렁 동네 마실 다니는 게 엄마의 소확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심심하지 않을까. 만약 나보고 그렇게 살라고 한다면? 당장 몇달은 좋겠지만 답답할 것 같다. 나의 행동반경은 대학교 입학 이후 늘 왕복 2시간이었으니 어디론가 이동하고 이동 중에 할 소일거리를 생각하는 삶이 당연한 인생이었다. 외출하는 걸 피곤해하는 집순이가 된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아니라 외출하는 걸 참 좋아한다.  

 광화문이나 시청 등 도심을 걸을 때 종종 엄마 생각을 한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장소이지만 엄마에게는 특별한 날 찾는 곳이다. 그래서 바로 그 순간 그 곳으로 엄마를 모시고 나오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는 나때문에, 또는 나와 함께 시내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걸 느낀 뒤부터 더 그렇다.

 엄마는 종종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싶다고 했다. 운전을 못 하는 딸 때문에 제대로 된 서울 구경 한번 못 했다. 여행을 가려고 해도 교통편이 늘 고민이다. 외국인 또는 지역주민들이 서울로 여행왔을 때 이용하라고 만들어둔 관광버스가 서울생활 40년째인 엄마에게도 매력적이라니, 상품으로서 매력적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지만, 엄마가 서울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살짝 말랑말랑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랑 함께 외출하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중이다. 기자라서 바쁘긴 하지만 또 기자라서 자유롭기도 하다. 더욱이 연애도 안 하니 주말이면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주는 엄마랑 뭐하고 놀지를 생각한다. 보통 저녁을 사 먹고 한강변을 산책하거나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엄마는 나같은 딸이 있어 좋겠어"라고 내가 장난치듯 말하는 데에는 나 나름의 자신감이 있어서다.  

 지옥불에 들어와있는 듯한 요즘 나는 회사에서 멍 때릴 때 에어컨 없는 집에 혼자 있을 엄마 생각을 자주 한다. 카페라도 가서 더위 좀 식히라고, 젊은이들이 피서를 보내는 방법을 소개해봤지만 엄마는 혼자서는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게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더위로 지쳤을 엄마를 달래려 퇴근길마다 발길이 바빠진다.

 초열대야로 밤에도 무더운 요즘 퇴근 후 영화 관람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피서이다. 1일에는 신과함께 2편을 봤다.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 팬은 아니지만 개봉일에 봤다. 내가 사준 새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며 웃고 있는 엄마 얼굴을 보니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랬다. 딸이랑 먹으려고 간식거리를 조금씩 챙겨온 엄마덕분에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스르륵 풀렸다. 나는 누군가에게 귀한 딸이었다는 걸 깨달았달까. 엄마랑 나는 1편을 보고 오열했고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에 2편을 보고 나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1편 보다는 재미없네. 그래도 재밌는 편."

 "그랬구나. 나는 뒷 부분이 이해가 안 됐어."

 엄마가 영화를 볼 때 중간중간을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나도 철이 드는건지 이제야 효녀가 되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고 장을 보고 쇼핑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엄마랑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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