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올해 내 사주에는 새 가족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혹시 내가 결혼하나?'라며 놀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정말 새 가족이 생겼다. 나의 둘째 조카. 엄마의 둘째 손주, 오빠의 둘째 아이가 8월에 태어났다.
남자아이였다. 내 눈에는 딸이었던 첫째 조카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았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입을 옴질옴질하며 눈도 못 뜨고 꼬물꼬물 다리를 움직이는 하얀 천 속의 아이. 제 얼굴이 나오기 까지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아있는 아주 작은 아이를 보니 나도 이제 정말 어른이라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오빠는 첫째랑 또 다르게 생겼다며 눈도 못 뜬 아이의 얼굴에 핸드폰 카메라를 대고 사진을 찍었다. 오빠는 남자아이의 증거를 엄마에게 보여주려 애를 썼지만 그건 이제 막 잠든 아이에게 못할 짓이었기에 나중에 보기로 했다.
첫째 손녀에 이어 둘째 손자를 얻게 된 엄마는 방금 든든하게 밥을 먹고 나온 사람처럼 자비로웠고 여유로워보였다. 그날 산부인과에서 새언니와 오빠, 아이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의 엄마가 보여줬던 미소는 내가 봤던 엄마의 표정 중에 행복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렸다.
"그렇게 좋아?"
"아침에 베란다에 새가 와서 울더라고. 그 소리가 얼마나 예쁘던지. 저 새 처럼 귀여운 아이가 세상에 오는 구나 싶어서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했지."
엄마는 손주 둘인 할머니가 보일 수 있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손자를 봐서, 내가 밥을 살게"라며, 좋은 일을 겪었으니 베풀어야 복이 다시 돌아온다며 신이 난 모습이었다.
"원이 봤을 때도 그렇게 좋았어?"
"좋았지. 첫 손녀는 또 다르지. 그리고 내가 3년을 키웠지 않니. 정을 얼마나 줬는데."
"근데 손자라 그런가 더 좋아보이네?"
"기왕이면 딸 하나 아들 하나 보면 좋지."
엄마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손자를 봐서 엄마가 더 기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언니한테 고마워해야겠다. 손녀 손자 하나씩 낳아줬잖아."
"지들 복이지."
"근데 엄마 나중에 손녀랑 손자 차별 하면 안돼. 그러면 정말 내가 엄마한테 뭐라 할 거야."
나는 엄마가 손자만 예뻐하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엄마 나이 정도 되면 아들아들거리는 시대를 사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여성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란 믿음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어릴 때 경험 때문이었다.
"엄마, 나 어렸을 때 할머니가 오빠만 예뻐해서 상처받았었어. 그거 몰랐지? 그리고 할머니가 나 고3때 대학간다고 하니까 돈 벌어오라고 한 말 기억 안 나? 아무리 내 할머니지만 너무 서운해서 얼마나 울었던지."
"그런 일이 있었어? 말을 하지."
15년 만에야 털어놓은 그 날의 기억은 내게 씁쓸한 기억이다. 어려워진 집안 사정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하자 할머니가 나를 생활전선에 내보내라는 말을 하는 걸 나는 내 귀로 직접 들었다. 내 할머니가 맞나 의심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딸로서 그런 대접을 받고 살아오셨을 할머니가 답답하고 싫으면서도 미웠고 슬펐다. 이후로도 난 왜 딸은 집안에서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지를 꽤 오랫동안 분노했다.
집안에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건 정말 복 받은 일이다. 투명하고 맑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다보면 그 눈에, 그 피부에 나라는 어른의 모든 것이 비치는 것 같다. 웃음과 기쁨을 잘 모르고 사는 나조차도 아이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듯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제 곧 세돌이 될 첫째 조카도, 이제 겨우 눈을 뜨고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둘째 조카도 상처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차분하고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많고 친절하고 성실한 고모를 보며 자랑스러워한다면 정말 좋을텐데. 그리고 딸과 아들 모두에게 공평한 세상이길.
클립아트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