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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엄마의 다이어트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여자 둘이서만 살다보니 편한 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집 안에서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옷을 입어도 신경쓰일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아버지랑 오빠랑 같이 살 때는 느껴볼 수 없는 자유로움이다. 20대 때에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엄마랑 목욕탕에 가는 것도 조금 어색했는데 30대가 되니 아무렇지도 않다. 일 년에 한두번이기는 해도 같이 목욕하는 사이에 감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요즘 우리 모녀의 대화 중 상당 부분은 ‘엄마의 다이어트’이다. 엄마는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살이 쪘는데 최근에는 그 속도가 부쩍 빨라지고 있다. 의사는 아니지만, 내가 추정하기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대사량은 줄어드는데 식사량은 전과 비슷하니 에너지가 쌓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60대 중반의 엄마는 운동을 싫어하신다. 나는 조금 살이 쪘다 싶으면 퇴근 후에 집 앞 한강으로 산책을 가고는 하는데 엄마는 이제 다리랑 허리가 아파서 오래 걷기는 힘들다고 하신다. 다리에 무리가 안 가는 수영은 물이 무서워서 싫고, 실내 자전거타기는 엉덩이가 배겨서 또 싫다고 하시니... 먹는 양을 줄이는 것뿐이라는 것이 엄마의 논리이다. 

 “O4.4kg이네. 어버이날 연휴동안 실컷 먹었더니 2kg가 늘었네. 아이고.”

 매일 아침 엄마는 체중계에 올라가면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살이 좀 빠진 날에는 기뻐하시고 찐 날에는 조급해하신다. 아침상 앞에서 "이걸 먹으면 또 살이 찔텐데..."라며 고민에 빠지시고는 한다. 

 엄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무게는 지금의 몸무게와 앞자리 수가 다르다. 그 몸무게가 되려면 대략 4~5kg은 빼야 하는데, 누구에게나 그렇듯 엄마도 1~2kg 만 찌고 빠지고를 반복하는 중이다. (더 안 찌는 게 어딘가!) 운동을 안 하는 엄마는 저녁을 안 먹겠다는 선언을 했지만, 내가 봤을 때 엄마도 (나도) 끈기 있는 편은 아니다. 더욱이 엄마는 ‘밥순이’이다. 

 엄마는 흰 쌀밥, 찹쌀 밥, 잡곡밥, 콩밥, 팥밥 모든 밥은 다 좋아한다. 반찬보다 밥을 많이 드시는 편이기에 나는 가끔 엄마가 뜬 엄마의 밥 양을 보면서 장난을 치고 싶다.

 “엄마, 그거 다 먹으면 위가 놀랄 것 같은데?”

 엄마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밥을 응시한 채 귀찮다는 듯 툭하고 말씀하신다. 

 “얘, 우리 나이에는 이 정도는 먹어야 해. 이 나이에도 밥을 콩알만큼씩 먹는 사람들 보면 성격이 아주 예민해서 소화를 잘 못 시키거나 체질적으로 위가 작은 사람들 뿐이야.”

 이렇게라도 합리화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나는 귀엽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큰 밥 공기를 사용하면 많이 먹게 되니 종지 마냥 작은 밥 그릇에 밥을 담아 드시고 있지만, 2~3번은 기본으로 또 먹으니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조기, 고등어, 갈치같은 생선이다. 어느 날은 엄마가 같이 저녁먹자며 나에게 빨리 집에 들어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한 마리에 500원밖에 안 하는 조기 한 두름을 샀는데 그 중 5마리를 구워두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날 나는 조기 1마리를 먹고 엄마는 4마리를 드셨다. 조깃살의 짭쪼름한 맛 덕분에 엄마는 밥을 두 공기를 더 드셨다. 엄마의 다이어트는 밥이 관건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엄마가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게 편하지 만은 않다.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가가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그 연세에 다이어트라니 몸이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서다. 세상은 여성에게 과도한 다이어트 짐을 지웠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기본 몸매로 인식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길을 세상 모든 여성이 괴로워하며, 때론 분노하면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물론 엄마가 자꾸 나온 배를 가리기 위한 넉넉한 옷만 찾으며, 요즘 유행하는 나의 루즈핏 블라우스나 코트 등을 탐내할 때보면 엄마가 아니라 귀여운 여동생같다.  

 그래서 엄마가 뭐든지 잘 드시는 모습을 보면 안심이 된다. 하지만 또 내 몸통의 2배는 되어가는 엄마의 D라인을 볼 때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생각난다”며 놀리고 싶고 진심으로 엄마의 내장지방량이 너무 많아 걱정된다. 무조건 굶지 말고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시면 좋을 텐데 엄마는 굶거나 폭식을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제 안 먹었더니 1kg 빠졌네. 신문에서 봤는데, 매일 몸무게를 재는 사람은 살을 뺄 확률이 높대. 나는 빠질 확률이 높은 거지. 너만 없으면 내가 밥 안차려도 되니 살을 확 뺄 수 있는데. 너 이번에 미국 출장가면 또 확 빠질 거야.”

 엄마는 나와 달리 긍정적이다. ‘밥순이’인 엄마는 내가 없는 열흘 동안 과일만 먹겠다고 선언하셨다. 과연 몇 키로가 빠질 것인가. 지난해에도 미국으로 2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왔을 때 엄마는 3kg쯤 빠졌다며 자랑을 하셨다. 하지만 1년 만에 그 몸무게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계속 안 빼도 된다고 하지만 엄마는 빼야지만 행복해하는 것같다. 엄마의 '자존감을 찾기 위한' 다이어트를 응원한다. 하지만 살을 빼지 않고도 엄마가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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