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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긍 Oct 16. 2023

그 날, 응급실에 의사는 없었다.

 A병원 응급실, 입원 1일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복기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멈추게 되는 지점이 있다.


A병원 응급실. 그곳에서  엄마는 증세가 심해졌고, 보호자였던 나의 멘탈은 급히 붕괴되었다.


9월 22일. 금요일, 인지 이상을 보이는 엄마를 동네 2차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mri를 찍자 하셨다. 집에 오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밤에 어지럼증이나 구토증세를 보이면 응급실로 바로가고,  다음날 진료받으러 오라고. 뭔가 큰 일이 생겼나 싶었다.


다음 날 의사를 만났더니, 뇌출혈이 있었고.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이 종양같다고 상급병원을 가라고 했다.

'뇌..양'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근처 상급병원은 k대 구로병원과 b병원. 일단 병원을 정해야 한다.


모든 일의 결정엔 개인의 역사가 작동한다. 지난 여름 뇌경색이었던 아버지는 근처 2차 병원에서 과잉진료를 받았던 일.진짜 존경했던 분위기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갔다가 그곳에서 수술을 하게 됐고. 우린 그 이후 한 달만에 그분을 잃게 되었던 일. 친구의 친구가 최고의 병원이라 기되는 A병원에서 난소암 4기에서 시작했는데 경과가 좋던 일..'


게다가 엄마는 2014년 정도에 A병원에서 뇌수두증 치료를 받았고 외래도 꾸준히 다니셨었다. 3년 전에도  뇌mri를 찍은 기록도 있고.   시간 정도가 더 걸렸지만 송파구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했다.


토요일 두 시 정도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자료를 넘겼고 다행히 응급실 베드가 있어서 2구역에 배정받았다. 엄마는 장소에 대한 인지가 부정확한 거, 손을 계속 비비는 것  빼고는 대화가 잘 되는 안정적인 상황이었다. 제일 좋다는 병원, 엄마가 좋아하는 병원에 왔으니 염려말라 속삭였다.


5시쯤  CT찍었고다. 아무 설명도 못 들었다. 다시 8시쯤 조영mri를 찍자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촬영실 앞에 앉아 있는데 레지던트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받지 못했다. 영상을 찍고 오니 레지던트가 응급실로 전화를 했다.

"뇌종양은 아닌 것같다. 뇌출혈이다. 크게 위험하지 않다. 수술을 할 수 있는 부위는 아니다. 지금 우리병원에 중환자실이 없다. 전원해야한다. "


뇌종양이 아니니 다행. 그런데 의사는 다짜고짜 전원하라고 했다. 자기가 전원할 병원을알아봐 준다고. 난 당황했지만 그렇다면 엄마 집근처 (금천구)  대학병원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신경외과 있는 중환자실이 많지 않다. 저번 주엔 대전에 보냈다."며 면목동에 있는 P병원으로 가라 했다. 면목동의 P병원이라니! 내 선택으로는 절대 가지 않을 처음 듣는 병원에 뇌출혈 중이라는 엄마를 데려가라니. 게다가  옆 베드의 뇌출혈 환자에게도 그곳으로 전원하라고 한 걸 들었기 때문에 순간,  '다른 곳을 알아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인 어머니를 그곳에 모실 생각을 하니 너무 심난했다, 병원 전원은 의사가 알아보는 것이고.. 더는 알아봐 주지 않으니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8시 30분쯤, 조영 mri를 찍은 엄마의 증세가 갑자기 심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눈을 크게  뜬 각성상태를 유지하며 링거를 뽑으려 하고 집에 간다고 하시며 나선다. 의사가 엄마 증상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안정감을 갖기 위해서 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듣고 싶었고, 갑자기 심해진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의사 상담을 요청했더니 또 통화로연결해준다. 담당 교수와 영상 보고 확인 한 것이 맞냐고 했더니. 담당교수 성함을 대며 맞다고 했다. 그러더니 대기하다가 p병원에서 보내는 앰블런스를 타고 전원하라고. 


10시부터 12시까지 엄마는 증상은 심해지셨다. 나는 내내 안절부절.  간호 데스크에 호소해도 아무도 엄마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지도, 나에게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불안이 커졌다. 이렇게 환자가 응급실에서 방치되도 되는가. 진짜 힘든 시간이었다,


11시 50분쯤. 단 한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두개의 영상을 찍고도 자세한 설영을 듣지 못했던 나는 다시 한 번 레지던트에게 통화를 요청했다. 엄마가 왜 심해지시는지. 영상을 보며 듣고 싶었다.


간호사가 전해준 대답은.'같은 이야기 반복하기 싫으시다고 통화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2시 10분쯤 앰블런스가 도착했다.


엄마를 p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안 좋았다. 내가 찾아간 곳은 분명히 전국 최고라 말해지는 병원이었는데. 생전 처음 가는 동네에 있는 척추관절센터에 엄마를 맡기게 된 게 믿기지 않았다. 그 때는 앞으로의 일을 전혀 몰랐는데도, 불안함이 가지지 않았다.


차를 가지러 A병원을 갔다. 새벽 한 시 쯤 .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나는 엄마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을 듣고싶었다. 응급실에 들어가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연결해달라고 부탁. 읍소했다. 간호사가가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의사와 통화를 했다. 꽤 길게 통화를 끝낸 간호사는 그가 말한 말을 전달했다.

'퇴원한 환자 보호자와는 통화하지 않겠다. 그런데 그 보호자는 어떻게 응급실 들어온거냐? 당장 쫒아내라!'


A병원의 모든 의사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날 그 시간에 그 병원에 있던 그 레지던트는 환자와 보호자가 자기 질병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았다. 두 번의 영상 촬영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설명없이 집으로 차마 돌아가지 못하는 보호자에게 모멸감을 주었다.


집에 오다 근처 강동 k대 병원을 들렀다.혹시 해서 응급실로 가서 중환자실 자리가 있냐고 물었다.  A병원의 지척에 있는 병원이다. 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 의사는 예상대로 아무데도 알아보지 않았던 것같았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지금이라도 전원해도 되냐 했더니 그건 의사의 의뢰나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P병원에 전원한지 두 시간. 거기엔 의사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A병원에 전화해서 콜센터 직원에게 사정을 얘기하며 의사에게 전화라도 넣어줄 수 있나 물었다. 퇴원환자의 전원은 알아서 하라는 답변만 있었다.


의사가 있는 곳이 그렇게 먼 곳인 지 몰랐다.

의사에게 닿기가 이렇게 힘든 건지도 몰랐다.  

그 날 의사에게 존중받는 게 얼마나 무리한 기대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사의 결정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일주일 후,엄마는 의식불명에 이르렀다.


생전 처음 간 응급실.

적어도 나에건

그 날, A병원 응급실엔 의사가 없었다.

의무 기록엔 '증세 호전'이라고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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