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나의 삶은 소중하다'이다. 나를 컨트롤하는 '주문'을 이것으로 정했다.
여러 일로 감정이 폭발되고 지랄을 한다. 내 아이에게 바람직한 엄마로 살기를 몹시 원하지만, 요즘은 '나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네'라 생각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아이에게 감정 폭발의 고함을 지르고 나서는 당연히 자괴감이 따라온다. 그런데 매우 중대한 감정의 단계를 겪는다. 고함을 질렀던 짜증이 났건 한숨이 났건 어쨌건 감정적으로 내동댕이 치듯 나를 다룬다. 아이의 어떤 말과 행동이 나의 힘을 쫙 빠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태도면에서 안내하느라 하는데, 정성을 기울여 하지만, 아이 자신의 주장을 세게 내세우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고 나에게 쏘아댈 때면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면서 내 온 에너지가 하수구로 남김없이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일종의 그로기 상태가 되면서, 만사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방점은 아이가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런 경우 내가 자주 나 자신을 내동댕이 치듯 하는 상황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에 있다. 이 타성이 언젠가부터 자리 잡았다. 처한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다는 작은 좌절들을 겪고 또 겪으면서, 또 그런 상황에서 돌파하기보다는 무력하게 주저 않기를 반복하면서 자리 잡은 듯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그리고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 내 생각엔 일정 정도의 성숙도를 기대할 수 있는 연령이라 생각한다 -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나의 일에 대한 이해이다. 일을 해가는 과정을 존중하고, 나의 상황을 살펴서 자신의 욕구를 조절할 줄 알기를 바라게 되었다. 결코 과한 기대라고 생각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날 위해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러나 대체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때마다 나의 일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원망의 감정이 들었다. '아이는 아이인데, 원망의 감정을 이렇게 품는 것은 옳은가?' 여러 이유로 듣고 싶은 수업을 발견했더랬다. 그 수업일정을 확인하다 보니 아이와 함께 하려 했던 것과 일정이 겹쳤다. 아이가 학수고대하고 있는 유명 댄스팀 '베베'의 팬미팅 공연인데, 내가 보호자로 따라가는 것이라 대신 아빠가 보호자로 갈 것이라 말했다. "엄마 그 교육 꼭 들어야 해?"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아빠는 자신의 취향을 충분히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선입견으로 공연 가서도 초를 칠 것이라 아빠를 매도하고, 출근해야 하는 이모에게 부탁하겠다는 고집을 부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이는 아쉬운 마음에, 완벽한 ENJOY를 위하는 마음에 내게 그저 확인 질문을 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질문부터 일단 공격받는다고 느꼈다. '어쩜 이렇게 내 작업을 존중해주지 않을까?' 아이가 억지 부리고 짜증 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성질을 내는 모습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도 바락바락 열을 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역시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사고의 흐름이, 감정의 휘몰아침이 이런 식일 때가 많았다.
가뜩이나 무기력보다 더 '무'인 상태에서 질질 기어가며 살고 있는 기분인데, 다 때려치워서 어쩌겠다는 건가? 핑계도 참 스펙터클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