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은영 Apr 22. 2024

막강하네

'막강’한 내가 되고 싶은 요즘이다. 


‘막강’이란 수식어가 생긴 때는 1994년,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부에 여념이 없었던 고등학교 3학년 그 시절에 나는 청소년기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놀았다. 덕분에 성적은 제법 떨어졌지만 후회는 없다. 다녔던 작은 학원의 친구들과 밤샘 공부를 빙자한 놀이를 일삼기도 하고, 주말이면 함께 해운대나 서면 같은, 애들끼리 가본 적 없던 곳을 놀러 다녔다. 한 반의 크기가 작다 보니 서로 긴밀하게 시시콜콜 간섭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서로의 집을 왕래하기도 했는데 친구 ‘은이’의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당시 나는 씩씩하고 당찬 쇼트커트의 고등학생으로 한창 자존감이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다나까체’를 구사하며 어른께는 최대한 명랑하고 공손한 모습을 보여드렸다. 은이의 집에 방문했던 그때 은이 아버님이 계셨고, 아니나 다를까 그 어른께 변죽 좋게 이런저런 말을 다나까체로 건넸다. 그러다 아버님께서 내게 주셨던 말씀이 바로 “막강하네!”였다. 나는 그 말이 어찌나 딱 마음에 들던지 두고두고 잊히질 않아 ‘막강’ 또는 ‘makkang’을 닉네임이나 아이디로 사용해오고 있다. 


단순한 삶을 살던 그때는 막강 모드를 구현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모범생의 뼈대에 나의 명랑한 씩씩함 한 스푼 정도 넣으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막강함'의 정의부터 생각하기 시작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막강한 것인지, 거기에 나다운 막강함은 또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까지 논해야 하기에 고민만 하다가 막강해지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복잡해지기 그지없는데, 복잡해지는 것을 방치하여 밀린 숙제가 쌓여 있는 기분이다. 미루고 미루다 고민은 어느새 아득해져있고야 만다.  연륜에 따른 ‘지혜’, 이것이 살짝 생겨나는 기분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지혜란 뭥미?’ 


막강을 위한 HOW는 아직 모르겠지만, ‘막강’이란 수식어를 받았던 그때 내 마음에 몽실몽실 품긴 그 에너지 덩어리, 내 볼을 밀어 올려주어 미소를 만들어주었던 기운을 기억한다. 그 느낌을 곰곰 떠올리며 자연스레 올라오는 미소를 지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끄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