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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Feb 18. 2022

아이의 달리기, 어른의 기부가 되다

김양희의 스포츠읽기

아이들이 미국에서 다니던 초등학교는 기부와 관련한 행사를 많이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눔을 습관화하는 과정이었다. 운동과 연계한 기부활동도 있었다. 행사 이름은 ‘펀 런’(Fun Run). 학년별로 작은 운동장을 다 함께 달리는데 한 바퀴 돌 때마다 부모가 1달러씩 기부하는 식이었다.


하얀 셔츠를 입은 아이들은 한 바퀴씩 돌 때마다 등에 체크 표시를 받았고 정해진 바퀴 수를 채우면 기업에서 기부 받은 작은 선물을 받았다.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하호호 깔깔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밌게 달리기를 했다. 최대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운동장 35바퀴였으니까 부모의 기부액도 아이 한 명 당 35달러가 최고였다. 아이 건강을 위한 신체 활동이 부모의 기부로 이어진다는 것, 꽤 괜찮은 아이디어 아닌가. 가뜩이나 온라인 게임 등으로 학생들이 오프라인 운동을 멀리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말이다.

코로나19 팬더믹 시대 이전부터 국내 학생 운동 지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2020년 9월 교육부가 발표한 학생 체격·체력 검사(2004~2019년)를 보면 국내 청소년의 체력은 2016년을 기점으로 중, 고교생 전부 떨어지고 있다. 일례로 제자리 멀리 뛰기 종목에서 남자 중학생은 2016년 평균 203㎝를 뛰었지만 2019년에는 평균 200㎝밖에 뛰지 못했다. 2020년도에는 코로나19로 검사를 하지 못했는데 비대면 수업 등이 많았고 대면 수업을 하더라도 체육 수업은 지양됐던 터라 2019년보다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민체력측정통계(2000년 발표)만 봐도 신체활동 지표 중 ‘주 3일 이상 격렬한 신체활동 비율’이 중·고등학생의 경우 최근 5년간 감소 추세에 있었다.


국내 청소년들의 운동 부족은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로도 잘 드러난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가 전 세계 146개국 11~17살 학생들의 신체 활동량을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동 부족으로 분류된 학생 비율은 94.2%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운동이 부족한 여학생의 비율은 97.2%(남학생은 91.4%)에 이르렀다. 필리핀(93.4%), 캄보디아(91.6%)보다도 운동을 안 한다. 146개국 전체 평균은 81.1%.


국내 정서상 학교 교육에서 체육은 그저 ‘놀이’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 세대의 이런 인식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체력은 그저 학력의 부수적으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체육은 몸과 함께 마음을 단련시키는 교육이다. 하나의 규칙 아래 시행되는 공평한 경쟁 속에서 공정과 타협을 배우고 단합, 협동, 희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나홀로’만을 강조하는 시대에 ‘함께’의 가치도 깨우치게 한다. ‘운동할 권리’를 칭하는 운동권이 비단 학생선수에게만 필요한 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펀 런’ 행사가 있던 날, 아이들은 땀에 젖은 채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35바퀴 돌기 완수 티셔츠를 내보이며 임무 완수를 자랑스러워했다. 머리로 흡수하는 지식, 지혜도 있지만 몸으로 체득되는 것도 분명 있다. 아이 운동 부족은 어른의 책임이고, 기회의 장은 어른이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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