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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Aug 21. 2022

이대호의 봄날이 간다

그의 타석이다.

“딱.”

방망이가 스위트스폿(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멀리 빠르게 날아가게 하는 최적 지점)에 잘 맞은 듯했다. 그 또한 한참이나 서서 타구를 쳐다봤다.‘넘어가는 것 아니야?’아니었다. 외야 깊숙한 곳에서 타구가 잡혔다. 그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면서 후배들에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며칠 뒤 그의 타석을 다시 보게 됐다. 역시나 큰 외야 타구가 나왔지만 공은 담장 안에서 잡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호가 2~3년만 젊었다면 가뿐히 홈런이 되는 타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공은 결국 땅에 떨어진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는 1982년생이다. 프로야구 원년에 태어난 그는 출범 40주년을 맞은 2022년 시즌 뒤 은퇴를 선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이승엽(전 삼성 라이온즈) 이후 5년 만에 공식 은퇴 투어도 하게 됐다. 한국시리즈 무대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게 한이라면 한이겠다. 일본시리즈(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우승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까.

 도루 제외 타격 전 부문 1위(2010년) 등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던 이대호지만, 그 또한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다. 타구 비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담장 밖으로 훌쩍 날아가 누구도 잡을 수 없던 타구는 이제 담장 안에서 손쉽게 잡힌다. 힘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씁쓸한 마음도 든다. 그의 노쇠함에서 깨닫는 세월의 흔적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아프고 잔인한 현실이지만 나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방망이에 튕겨 날아간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결국 땅에 떨어진다. 선수마다 비거리가 다를 뿐.이대호와 동갑내기로 앞서 은퇴한 김태균 KBS N 스포츠 야구해설위원에게 “언제 처음 은퇴를 머릿속에 그렸느냐”고 물었다. 김 해설위원이 답했다.“주변에서 이런저런 안 좋은 말들이 들려왔을 때 이젠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어요.”그는 이런 말도 했다.“팀에 걸림돌이 되는 게 싫었어요.”


‘내가 낸데’ 플레이는 실패한다

나이 든 베테랑에게 시간은 적이다. 같은 능력치를 보여주더라도 구단은 더 젊은 선수에게 관대하다. 시작점보다 끝점이 가까운 선수에 대한 구단의 투자는 인색하다. 때가 되면 한때 한껏 우대받았던 경험의 무게가 한없이 가볍게 취급된다. 그래서 베테랑의 은퇴는 늘 잡음이 인다.

 돌이켜보면 이종범(현 LG 트윈스 2군 감독)이 은퇴할 때도, 양준혁(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은퇴할 때도 야구계 안팎으로 시끄러웠다. 이대호는 그나마 은퇴 투어를 해서 나은 상황일 수도 있다. 강제로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쉽지 않은 ‘박수 칠 때 떠나라’를 몸소 실천했던 김재현 스포티브이(SPOTV)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나이가 들면서 방망이를 짧게 쥐었다. “더 이상 방망이를 빨리 돌리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짧게 쥔 방망이’는 중장거리 타자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변화를 택했고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와 함께 세 차례 우승(2007년, 2008년, 2010년)을 경험했다.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2010년) 직후, 그는 시즌 전 각오했던 대로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그의 나이 35살 때였다. 2002년 양쪽 고관절 수술 뒤 진통제와 수면제로 버티던 그였다. 그의 몸은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라운드와의 ‘작별’을 준비했는지 모른다. 2009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아쉬움 때문에 조금 더 버텼을 뿐.

 KBO리그 첫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던 이승엽 KBO 홍보대사는 은퇴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예전에 잘했던 것만으로 ‘내가 낸데’(경상도 사투리) 하고 플레이하면 분명히 기회가 와도 잘 살릴 수 없을 거예요. 지금은 20대의 몸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처럼 똑같이 하면 분명히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죠. 오프시즌 때도 ‘올해 잘했으니까 내년에도 똑같이 해야지’가 아니라 더 나은 성적을 내기 위한 조금 더 빠르고 간결한 스윙을 고민해야 하죠.”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미래를 위한 현재의 준비는 과거와 달라야 한다. 준비에 준비를 하더라도, 끝은 기어이 온다. 세월이라는 놈은 거스를 수 없다.누군가가 그랬다. “응원하던 선수가 은퇴하면 자신도 사회에서 은퇴당하는 기분”이라고. 아마 프로야구라는 매일의 스포츠가 가진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감정 이입도, 감정 기복도 제일 심하다.

 지금껏 수많은 선수의 은퇴를 지켜봤다. 그들 중에는 누구나 알 만한 스타급 선수도, 2군에서 조용히 현역을 마감한 선수도 있었다. 끝이 화려하던 선수도, 초라하던 선수도 있었다. 현역 마침표에 후련해하던 선수도, 아쉬워하던 선수도 있었다. 각각의 모습으로 그들은 모두 ‘끝’이라는 단어를 똑같이 마주했다.


준비됐을 때 작별을 고할 수 있기를

삶의 궤적 안에서 드물게 역전홈런도 날렸고, 병살타도 종종 쳤다. 앞으로도 계속 자의로, 타의로 들어선 타석에서 맞닥뜨릴 ‘오늘의 공’은 ‘어제의 공’과 분명 다를 것이다. 체감 속도 시속 130㎞였던 공도, 어느 날은 시속 150㎞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나날이 달라지는 환경에 ‘변해야 변한다’라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다른 방법도 모색하게 될 터. 하지만 몸의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배트 속도가 점점 떨어지면서 땅볼 타구가 많아지고, 삼진을 당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기어이 ‘끝’이라는 단어를 눈앞에 그리게 될 것이다. 타인의 입길에 오르면 더욱더. 

 ‘그때’는 거부할 수 없이 반드시 온다. 다만 충격파가 적기를, 준비됐을 때 작별을 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이대호의 짧아진 타구 궤적에 잡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봄이다. 다시는 못 올 ‘선수 이대호’의 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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