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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레보 Feb 02. 2020

엄마가 만든 나

달이 보고싶으면 옥상으로 올라가볼까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읽는데, 개인 컴퓨터가 나오고 “타자기” 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부분에서 문득 떠오른 기억. 

 예전에 만났던 H를 엄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를 고생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내가 그의 선물로 수동 타자기를 준비해서 하나 하나 닦아야했을때, 엄마는 같이 내 옆에서 타자기를 닦고 포장하는 걸 도와줬다. 엄마 손도 그 잉크로 까맣게 물들면서 “와 그거 받으면 H가 엄청 좋아하겠다” 라는 말까지 해줘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고마웠지만 그 기억이 대단히 임팩트 있진 않았는데, 지금 문득 돌이켜보니 엄마에게 참 고맙다. 엄마는 성에 안차는 애인의 것을 닦아주며 뭐 그런걸 하고 있냐고 타박 한 번 하지 않고.

 내가 엄마와 있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틈만 나면 엄마 곁으로 달려가서 조잘대고 싶은 건, 엄마는 내가 하는 것 무엇이든 응원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게 혹여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더라도, 누군가는 분명히 한심해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내가 행복해하면 엄마는 지지해줬다. 

 어느 날 달이 너무 커서 가까이서 보고싶었을 때, 집 베란다에서는 나무와 창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서 속상해하던 내게 엄마는 그럼 옥상에 가서 볼까, 제안했다. 느닷없이 달을 보고싶다는 내 생각에 귀찮다는 기색도 없이 말이다. 책을 많이 읽고 싶어하던 초등학생 나에게는 매 방학마다 문학 전집들을 사줬다. 보아를 보고 배꼽티가 입고 싶었을 땐, 엄마와 같이 동대문을 돌아다니며 내가 원하는 배꼽티를 찾아다녔다. 원하는 것이 없자 엄마는 직접 티를 잘라서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티를 입고 피아노학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멋쟁이라고 해줬던 기억도 난다. 

나의 최고의 여행 메이트

 그런 말 없는 응원들이 나를 만들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지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나는 주눅들지 않고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엄마 앞에서 난 나에 대해 숨김이 없고 솔직하다.

 공부를 하기 싫던 고등학생 때도 선생님한테 아프다고 뻥치고 엄마랑 놀자고 하던 엄마가 있어서, 이십대엔 낮이고 밤이고 사랑만 열심히 하던 나에게 연애 열심히 많이해서 부럽다는 엄마가 있어서, 회사에서 사람들로 힘든 나에게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사람들이지 응원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됐나보다. 엄마가 만들어 낸 나라고 생각하면 나도 나를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네. 나의 가장 오래된 최고의 친구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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