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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레보 Feb 08. 2020

세상에서 잠수 탈 용기

잠수는 겁쟁이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사라지고 싶었다. 열심히 하던 sns에서도, 카톡에서도, 그냥 내가 속해있는 곳에서도 조용히 사라지고싶었다. 배는 고프지만 팀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싶지 않고, 나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답하고 싶지 않고 친한 친구 아니고서는 먼저 오는 연락들이 부담스럽고. 필라테스에 가서도 날 알아보고 웃으며 인사해주는 선생님마저도 싫다. 조용히 있는 듯 없은 듯 지내고싶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몇몇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동창 K,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밟다가 갑자기 모든 SNS를 끊고 연락처를 바꾸고 사라졌다.

고등학교 동창 S,
졸업 이후 재수를 시작하며 뭐하고 지내는지 동창회 등에서도 전혀 알길이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 H,
군대 입대와 동시에 사라지고 몇년만에 SNS 친추를 걸었다.

K는 의학전문대학원을 합격하고 SNS에 돌아왔다.
S는 재수하고 합격한 대학까지도 자랑스럽지 못했는지 조용히 지내다가 메이저 은행사에 합격하자 동창회에 돌아왔다. H는 군입대 이후 유학을 갔다가 연봉이 쎈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고 연락을 보내왔다.
 

 섭섭하다 싶을 정도로 잠수탔던 그들이 원랜 이해가 잘 안됐다. 야속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봤다. 그들은 자기의 상황이 구려서 친구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기보다 한발짝 내딛기위해 세상에서 잊혀질 용기가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 내가 관계 맺은 것들에서 사라지고 싶을까?

첫번째, 앞으로 뭘 하면서 즐겁고 의미있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변의 잡음 없이 혼자 골똘히 생각해보고 싶다.
두번째, 누군가와 대화할 때, 고민하고 속상해하고 힘들어하는 나는 보이고싶지 않다. 자존심이라기보다 대화를 처지게 만드는게 미안해서 그렇다. 그러나 대화는 해야하고 그럼에도 거짓 미소 지으며 말하고 싶진 않다.

 우린 자신의 지위가 스스로에게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었을때 비로소 남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일까? 모두들 비슷한 이유들로 친한 친구들까지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게 할 정도로 독한 마음을 먹고 사라질 수 있는건가. 그들의 대부분은 돌아오고 나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드러내고 살아간다. 동창회를 직접 추진하고, 졸업 이후 처음으로 여러 모임에 모습을 드러낸다.

 솔직히 S가 동창회를 추친한다고 했을때 우리끼리는 재수없다고 했다. 그간 연락 한번 안하고 살다가 왜 이제와서 갑자기 연락이야? 자기 잘나가는거 자랑하고 싶은거아니냐며 비아냥거렸다. 그땐 대부분 취준생들이라 더욱 예민했다.

 세상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조금은 이해됐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조용히 애초에 없었던 사람이 되는 이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떠나는 건 무섭다. 잠수타기, 아무래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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