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랙스완 Feb 14. 2023

생계와 욕망의 갈림길에서(Feat. Rainy Day)

투자하는 여행자의 넋두리

오늘은 용케 비가 내린다.
초여름을 알리는 상쾌한 비.

10여일간의 긴 해외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기분은 사뭇 지치고 현타가 온다.

3년 만에 떠난 길다면 긴 해외출장
길에서 설레임보다는 노쇠한 체력과
보이지 않던 것들에 눈을 뜬 자신을 발견한다.

오늘 내리는 비는 그런
깨달음을 끄적거리기에 최적의
타이밍을 제공한다.

출장 기간 내내 시장은 역대급 폭락을
거듭하며, 시장참여자들의 멘탈을
박살냈다.
주식이며, 코인이며, 채권이며
모든 투자자산은 바닥없는 싱크홀마냥
땅굴을 파고 계속 내리고,
어쩔수 없는 투자자들은 저점에서 잡은
며칠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시장에 다시 내놔야 했다.

시장은 늘상 그렇다.
잔인하다고 생각하면 더 잔인하게,
자비롭다고 생각하면 더 잔혹하게,
결국 야성적 충동을 해부하는 쪽으로 시장은
움직인다.
결국 우리네 부모님이 늘 이야기 하던
그저 저축하고 열심히 살면 된다던
웬지 한심하고 고루한 그 말이
더욱 맞는 말처럼 느껴지는 극악의 시간이다.

출장 내내 스콜 같은 비 한 두번이
다 였을만큼 미세먼지 한 톨 찾아보기
힘든 맑은 하늘의 호사를 누렸다.
거기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필름같은
짧은 행복의 순간들은 돈과 권태에 찌든
멘탈을 재정비하기에 더 없이 좋은 시간들이었다.

남국의 작열하는 태양과 습기 가득한
기후에 몸은 지치지만 그래도 삶이 최소한
여기저기서 이렇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실들을 진지하게 반추할 수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여행이란 얼마나 큰 호사이며 이기심인가.
바닷가 마을의 허름한 생선 썩는 냄새와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거지들의 틈바구니 속은
잘 보려 하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여행자에겐 호기심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생계이며 생활이다.
그들은 여행자를 보며 타국의 신비를 잠깐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생각마저 호사다.
그들에게 비행기와 주식시장은 평생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분면이다.
그들에게는 여행자들이 쥐어 주는 한 두푼의 동전과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위한 생선 다듬기, 조개 잡기가 삶에 더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도 돌아가는 금융시장에
사뭇 우려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우월감마져 느낀다.
과연 그들이 미개한 것인가. 내가 미개한 것인가.
자본주의라는 허울좋은 비단으로 칭칭 감싼
자비롭지 않은 투자자.
그리고 더 가지기 위해 알수 없는 가상의
전쟁터에서 공격하고 비난하고 자책에 빠지는
한 사람.


템플 앞에서 더위에 지쳐 잠든 고양이와 강아지들의 평화로운 나태함. 그들이야 말로 오늘 지금 행복이 뭔지 아는 존재들 같아 보였다.
우린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맹목적인 경제 발전. 끝없는 자기 발전. 무한한 소유와 소비.
나와 우리에게 뇌에 가득한 욕망의
마약을 주입하는 이상 진정한 쉼과 만족이란 있을까.

수도원 앞에서 잠에 취해 꾸벅거리며 조는
노승은 그냥 그렇게 하루를 산다.
그에게 비행기와 주식시장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타국에서의 신비로움이 얼만큼 대단한 것이겠는가.

우리는 맹목적으로 욕망하고 장식하는 부작위적인 존재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욕망하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생계가 힘든지. 넉넉한지.
그 자체가 뭔지를 모른다.
우리가 말하는 생계는 욕심의 변형된 표현이며
우리가 말하는 욕망은 그저 고도화된 이기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 부족해서 불행한가
욕망으로 마음이 가난한 것인가.

화려한 도시의 밤에 휘황찬란한 호텔 앞에
거대은행의 ATM 앞에 어울리지 않게
두 아이를 안고 슬픈 눈빛으로
멋스럽게 차려입은 여행자들에게 손을 내밀던
가난한 타국의 어머니.

편의점 앞에서 외국인이 버리고 간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정신없이 퍼 먹던
남루한 예쁜 어린 소녀.

우린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린 여행자들 이기적인 자들.
누리고 장식하는 자들.
그리고 더 큰 욕망으로 삶을 구동하는 자들.

호주머니에 남아 있는 동전 몇개를
던져보며 안스러운 눈빛을 보내보지만
아이는 아이스크림에 빠져 아무 관심도
없다. 감사함도 없다. 그것 역시 나의 간사한 기대일 것이다.
삶이 최악이니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라는
동전 몇 푼의 클리셰.
그 아이는 그것조차 권태롭다.
감사함을 느끼기에는 삶이 너무 가혹하다.

수 십만원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지만
돈 천원을 던지며 자비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여행자. 그리고 5초 간의 연민은 어느새
여행의 배경으로 빨려 들어간다.

우리는 투자를 한다.
거대한 부를 꿈꾸며, 멋들어진 장식적인 삶을
꿈꾸며.
하지만 우리는 매순간 죽어간다.
거대한 부도 장식적인 삶도
죽음 앞에선 부가 기능에 불가하다.

우리는 여행을 한다.
즐기기 위해 혹은 깨닫기 위해.
허세를 위해 혹은 감사함을 위해.

우리는 여행하며 파괴하고
즐기며 연민한다.
그게 본성이다.
하지만 가끔 본성데로 살지
않아야 사람답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날을 유난히 좋아한다.
세상에 화려함을 비의 장막에
가두고 그 안에 숨을 수 있어서.
혹은 비오는 소리에 재즈를 틀고
위스키 한 잔에 분위기를 부리며
남국의 불쌍한 거지 소녀를 생각하며
연민을 느낄 수 있어서.
내 안에서 발견한 이기적인 자아가
나를 슬프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해야만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