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랙스완 May 05. 2023

[Essay] 空虛; 어느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침 느즈막히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밤새 첫사랑과 뒹굴고 학창 시절 친구들과

감정싸움을 하며 현실 같은 꿈 속에서

아둥바둥했던 기묘한 감정들이 단 한 순간에

현실의 중력을 쳐 맞고 밑으로 꺼진다.


꿈은 잊혀졌던 설레임과 부작위스러운 욕망의

감정들을 한 번씩 불러 일으키는 신비로운 장치다.

가끔 그 감정이 그리워 일부러 낮잠에 들고 싶어진다.

물론 매우 포근하고 살랑거리는 시원한 바람에 고즈넉한 풍경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전제 아래.


눈을 뜬 곳은 어느 낯선 도시의 작은 호텔이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어렴풋이 생각이 나지만 굳이 자세하게 떠올리고 싶진 않다.


가끔은 치매같이 안개같은 정신 상태를 나도 원한다.

가끔 강아지처럼 본능만 남기고 모든 생각을 지우고 싶다.

창가로 빗줄기가 세차게 퍼부을 때마다 유리에 부딛치는 빗소리가 좋다.


보통 같으면 체크아웃 시간을 걱정할 때지만

오늘은 그냥 이렇게 더 수동적으로 누워있으련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지나면 하루 정도 더 있다가면 그만이다.

평일의 여유를 즐기는 여유로운 여행자인가.

평일마저 포기한 나태한 나르시스트인가.


핸드폰을 집어 끈적한 재즈를 한 곡 튼다.

오늘도 뉴스에는 누가 죽고 누가 속이고

누가 결혼을 하고 누군가 정치를 한다.

그 무엇인들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려나.

사실 나와 상관없는 말들이 매일 나에게

다가와 나의 머리에게 말을 건다.

내 삶에 아무 관계 없는 말들은 공중을 떠돌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내 머리로 다가와 머무려고 한다.


내가 낯선 도시에 날아 온 것도 어쩌면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지내는 공간과 시간과 사람들은 소중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무척이나 나를 가둔다.

내가 태어난 것도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많은 의무와 설득으로 갇힌 삶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난 그게 싫다. 그냥 돛단배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 침전하는 단순한 숙명이고 싶다.


사실 어젯밤 근처 위스키바에서 싱글 몰트 몇 잔을

거하게 마셨다. 이 지역에서만 생산된다는 한정판 위스키라고 하던데 그 맛은 기분 좋을 때 마시던 싸구려 버번 위스키만도 못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등급을 매기고 설득하는 것을 좋아한다.

맛과 감정은 나의 의지인데 설명서를 붙여 놓고 느껴보라고 말한다.  


비오는 날에 올라오는 풀냄새.

쳇베이커의 끈적한 재즈.

고독하지만 낭만적인 허세.

나는 아직도 사춘기처럼 그런 정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중2병을 사랑한다.


나는 그리고 디스토피아를 좋아한다.

포스트-아포칼립스도 좋아한다.

그리고 세상은 내가 원하는데로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 흐믓하다.

증오와 경쟁이 넘치고 힐난과 대결이 가득하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돈에 미쳐 돌아가는

꼬라지까지 너무 맘에 든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세상을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 볼 때 나는 그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희미한 먼지에 가려진 빛 바랜 태양과 잿빛 도시의 자태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이제는 화창한 날들보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들이

익숙하다. 나는 그것조차 아름답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비오는 날이 가장 맑은 날이 되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비 한방울 맞지 않으며 걷고 싶다.

그냥 이 정적인 어슴푸레한 우울한 풍경과

조금은 차가운 이 신선한 비비린내 나는 바람을

잠재 기억 속에 담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낯선 정신 상태로 뇌세포의 프레임을 조금 느리게 재생시키고 싶다.


가끔은 칠판의 분필 낙서처럼

자연스럽게 지워지며 사라지는 꿈도 꾼다.

인생이란 때론 모래 같은 것

내가 원치 않았던 것들로 가득하고 별 재미가 없어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들 떠든다.

나이가 들수록 공허의 속도는 빨라지고

프레임은 짧아져 나는 알아서 사라져 간다.

매우 고마운일이 아닐 수 없다.


난 누구에게도 감사할 것도 감사한 것도

빚지거나 빚질 것도 없는 그런 라이프다.

오로지 오롯히 나의 내면의 소리만 듣는

지독한 이기주위자. 나르시스트. 알콜 중독자.

삶이라는 뻔한 새장에 갇혀 죽어가고 싶지 않아

딱딱한 금속성 새장을 늘 부리로 부딪혀보는

어설픈 탈영병.  


오늘 이 낯선 도시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낯선 도시만이 나의 방문을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사라져도 또는 다시 돌아가도

낯선 도시와 군중들은 아무 관심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지구라는 메트릭스에

갇힌 한정된 자원 제한된 운명.

몸부림치는 생의 존재 확인.

그럼에도 사라져가는 칠판 지우개.


비 몇방을 맞으며 낯선 도시를 걸어본다.

하지만 이 곳의 풍경도 몇 분만에

정적과 권태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깊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돌아와 누웠다.

창가에 부딛는 빗물 소리가 더 좋다.

블러 처리된 희미한 창밖 전경과

지렁이처럼 흘러 내리는 비의 흔적들.

몽환적인 유리코 음악 볼륨을 잔잔하게 올린다.

낯선 도시에서 나는 결국 그렇게 다시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좋겠다.

지금 이대로 정적인 공기의 움직임과 빗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이 그대로일 수만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 무심한 잿빛 연민의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