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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Sep 02. 2021

조카바라기, 고모바라기

4N년차 여자 사람_조카 바보의 두려움

나는 자타공인 ‘조카바보’다!!!

(심지어 위에 쓰인 보라색은 조카가 좋아하는 색깔이다!!!)


나에게는 두 명의 조카가 있다. 그중 첫 조카와 나의 관계는 많이 밀접하고 특별하다.

태어난 조카가 너무 예뻐서 거의 매주 친정에 갔었다. 남동생네는 첫째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 부모님 옆집에서 살았고 출근한 동안 엄마가 애들을 보살펴주고 계셨다.

몸으로 놀아주는 스타일이다 보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고모를 많이 따랐다. 엄마 아빠 모두 조용한 사람들인데 고모가 한번 와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뛰어다니고 놀아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자기 의사를 밝힐 수 있을 때부터는 밥 먹는 자리에서 꼭 고모 옆에 앉겠다고 해서 매일 보는 엄마와 할머니를 서운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게 짱구는 항상 고모바라기였다.


첫째가 3살 때 둘째가 태어났다.

온 집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오다가 본인의 모든 사랑이 둘째에게 순식간에 쏠려버린 것이 나름의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내가 집에 들어서면 나에게 달려와서 내 손을 끌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고모는 여기서 나랑만 놀자고.

밥을 먹다가 둘째가 소리를 내거나 울거나 해서 둘째를 쳐다보면 나를 쳐다보던 짱구. 아마도 할머니와 엄마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라도 사수하려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짱구 엄마와 할머니와 논의 끝에 나는 끝까지 짱구1에 집중해 주기로 했었다. 그래서인지 짱구1의 나에 대한 애정도는 변함이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주말, 토요일 저녁까지 재미있게 놀고 나서 잠을 자면 일요일 새벽 일찍부터 깨서는 내 방 문 앞에 누워있다가 앉아있다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면서 고모가 일어나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짱구였다.


그런 짱구가 벌써 11살이 되었다.

아직도 짱구는 고모를 좋아한다. 그렇게 싫다고 싫다고 하는 영어 공부를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던 짱구 아빠가 어느 날 나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다. 누나가 짱구에게 조금씩이라도 영어를 가르쳐주면 안 되냐고. 믿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 보자고 하고는 영어 화상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모랑 매일 전화 통화하는 재미에 좋아하다가 영어를 조금씩 시작하니 침대에 드러눕고 하품하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화내지 않고 짱구가 움직이는 것을 모두 맞춰주고 웃어주고 칭찬해주면서 조금씩 조금씩 진행했더니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학교에서 하는 영어는 재미없는데 고모랑 하는 영어는 재미있어 라고 얘기해줬다.

그날 동생 부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한테 돈 내라!!’

 

얼마 전 저녁 영어수업(이라 말하고 수다 떨기라고 읽는다.ㅋ) 시간에 짱구가 말했다.

- 고모, 나 사춘기 인가 봐.

- 왜 그렇게 생각해?

- 저번에 고모가 말한 것도 있고 그냥 그런 것 같아...


아마도 작년 어느 때인가부터 짱구가 잠깐씩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생겨서, 사춘기냐고... 춘기님~이러면서 장난을 쳤었는데 그걸 생각하고 얘기한 것인가 보다.


- 짱구야, 너 아직 사춘기 아니야.

- 왜?

- 너 고모랑 전화 통화하는 거 좋지?

- 응!

- 그러니까 아직 아니야. 나중에 고모랑 전화 통화하기 싫어질 때가 올 거야. 그럼 그때가 사춘기구나... 생각하면 돼.


근데 그 통화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짱구가 어느 날 고모랑 전화 통화하기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사춘기가 되면 엄마도 아빠도 안중에 없다는데 겨우 고모 나부랭이가 머릿속에 남아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짱구에게 쏟아부은 나의 청춘과 젊음과 에너지를 그 녀석이 몰라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나는 그동안 짱구와의 시간 속에서 나의 청춘과 젊음과 에너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행복을 얻었지 않은가.

그 녀석은 그 10년 동안 나를 웃게 하고 설레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우리나라의,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기원하게 만드는 마음을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이렇게 받은 게 많은데 그 녀석이 나와의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떤가…


하지만, 바로 작년에 나와 했던 여행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느낀 어느 날의 영어수업 시간에   의미를 찾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조카 바보야!!!


언제까지 고모의 전화를 밝은 목소리로 받아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날까지 고모는 바보로 살련다.

짱구밖에 모르는 바보!!



<사진: 짱구 6살이 되는 1월, 8월에 있는 본인 생일파티 초대장을 보내줬다. 8월 생일파티 후 그림 그리기 놀이하다가 짱구가 써서 준 글 ‘고모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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