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우 Jan 30. 2022

나 없이 혼자 잘 살 수 있지?

4N년차 여자사람_45년 평생 처음 혼자 살기


회사에 안식월 휴가가 생겼다.


그 휴가 규정을 만드는데 참여한 나는 처음에는 아직 작은 우리 회사 규모에 그게 가능한 일일까 걱정이 되었다. 20명 남짓의 작은 조직, 이런 조직에서 개인들은 어쩔 수 없게도 일당백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맡고 있는 고유 업무의 담당자이며 책임자이기 때문에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그만큼 개인에 대한 회사의 의존도가 높으며, 개인도 큰 부담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큰 조직에서는 시스템 적으로 오버랩되는 업무들도 많고 한 사람이 빠진다고 해도 그 사람의 업무를 여러 명이 조금씩 나눠가서 커버해 줄 수 있지만, 작은 조직에서는 한 사람이 빠지면 그 일을 커버해 줄 다른 사람들에게도 업무적인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조금 더 큰 조직이 될 때까지는 한 달 보다는 1주일, 열흘 정도의 휴가로 제정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 주요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냥 통 크게 지르자! 우리 직원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다음 사람들이 가기 위해서라도 서로서로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등의 마음으로 한 달 휴식 규정이 제정되었다.


최종적으로 규정이 승인되고 직원들에게 공표가 된 후, 나도 고민을 시작했다. 언제 휴가를 갈까. 사실 이 회사에서 지난 6년 반 동안 일 년 열두 달 바쁘지 않은 달이 없었고,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쉰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가 한 사람 빠진다고 안 굴러가지는 않는다! 아파서 휴가를 내면서 걱정하는 직원이나, 이직을 하게 되면서 회사를 걱정하던 (너무 아이러니 하지만^^) 직원들에게 나가 매번 했던 얘기니 나도 내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마음을 다잡아갔다.


결국 잡은 일정은 5월 둘째 주부터.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4월까지 있을 결산, 감사, 이사회, 인사, 급여 조정, 예산 추경, 공시업무 등을 마무리하고 4월 마감 결산까지 끝낸 5월 둘째 주부터 한 달 동안,

난 쉬기로 했다.

물론 그 중간 필수 불가결하게 업무를 하게 될 수는 있지만 가능한 빠이~


다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였다.

만약에 코로나 상황이 아니라면 진심 고민 없이 남미로 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봤을 거였다. 나의 오랜 꿈, 로망. 하지만 코시국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아 보이기에 마음을 접고 접었다. 그렇다고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다. 그 생각이 들자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제주 아일랜드!!!

코로나 전에는 거의 일 년에 한 번씩은 여행으로 갔었는데 지난 2년간 가보지 못한 곳,

남편에게 매번 '우리 제주도 가면 먹고 살 게 없을까?'라고 외치는 곳,

꼭 가서 살아보고 싶은 곳, 오케이!! 여기로 결정!!!


그러면서 걱정이 되는 것은 남편이었다.

나와는 너무 다르게 치킨, 피자, 족발, 햄버거, 콜라, 탕수육, 튀김 등등 각종 우리가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 것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 사람. 내가 야근하거나 저녁 약속이 있는 날마다 신나하며 치킨을 주문하는 이 남자.

내가 없는 한 달이면 아마 치킨집, 족발집 쿠폰을 냉장고 가득 붙여놓을 사람. 매일 햄버거를 한 끼에 두 개씩 시켜 먹을 사람.

그는 행복하겠지만 그의 건강이 걱정되는 나는 잠시, 아주 잠시 이 여행이 이 남자에게 가져올 건강 상의 타격을 걱정하면서 주저하였지만 진짜 잠시였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 한 달 동안 제주도에 갈래. 한 달 동안 나 없이 혼자 잘 살 수 있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반대를 해 본 적이 없는 (물론 이건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나도 반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귀결된다) 남편은 긴 생각도 없이 '그래'라고 대답한다.


오 마이 갓! 나 혼자 제주 한 달 살기라니..........


지금까지 평생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었다. 결혼 전까지는 가족들과 결혼 후에는 남편과 같이 사느라 자취했던 친구들 후배들을 부러워하고 부러워했었는데, 내가 이제 그 혼자 살기를 그것도 심지어 제주도에서 하게 되다니!!!


여행마다 날씨 운이 따라주지 않아 그렇게 제주를 많이 갔지만 화창 화창한 날이 별로 없었는데, 한 달 동안 있으면 화창 화창 예쁜 제주가 나를 맞아주는 날이 있겠지.


가자. 제주로.


#해방타운 #첫독립 #제주도 #한달살기 #설렘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_길을 떠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