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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May 13. 2022

고모랑 나중에 또 여행 가자!!

4N년차 여자사람_조카와의 여행

제주 한달살이를 계획하고 숙소를 예약한 날, 나의 사랑 큰 조카 - 짱구1에게 얘기했다.

“고모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제주도에 있을 거야. 놀러 와”

그랬더니 짱구1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아니, 체험학습이 그렇게 길게 되나? 음… 될 거야 고모!” 라고 대답했다.

“너 한 달 동안 오려고?”

“응, 괜찮아 고모. 좋아”

“아니야, 엄마 아빠랑 일정 상의해서 정하자. 학교도 학원도 가야 하니까” 하고 얘기했지만 그 이후 짱구1에게는 제주 한 달 계획이 자기도 모르게 세워져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짱구를 너무나 사랑하고 같이 있는 것은 너무나 좋지만, 그래도 겨우 처음 혼자 살아보겠다 계획 세웠던 나의 제주행을 위하여 그 이후 짱구1과 통화를 할 때마다 일주일로 못을 박았었다. 자기는 일정이 되는데 엄마 아빠가 길게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심통이 나던 짱구1.


제주로 출발하기 전날 어버이날 모임으로 부모님 집에서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남편과 함께 짱구1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은 있지만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온 적이 없었는데도 녀석은 불편해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짱구1은 예뻐라 하기 때문에 고모부의 마음도 알고 그렇게 반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날 저녁을 시켜먹고 다음날 출근인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짱구1과 남아 차를 마시며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근데 이 녀석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간다. 어디가 안 좋은 것인지 걱정이 되어 물었더니 너무나 설레어서 그런다고 말했다.

고모는 설레고 떨리면 화장실 가고 싶지 않냐고…


그러면서 얘기의 주제는 2년 전 호주 여행으로 돌아갔다. 짱구1이 10살 되는 기념으로 짱구1 엄마랑 나랑 짱구1과 호주 여행을 갔었다.

물론 그 여행은 짱구1이 아주 어릴 적 나 혼자 갔던 호주 여행에서 올린 캥거루 사진에 올케가 우리 짱구1에게도 캥거루 보여주고 싶다고 단 댓글에 내가 짱구1 열 살 되면 같이 여행 가자…라고 답을 하며 시작이 되었으나, 올케와 나의 주요 목적은 초3이 될 때까지 영어 공부가 싫다고 하는 짱구1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설 연휴가 마무리되는 즈음 출발하여 약 일주일 가량 시드니 여행을 했었는데 당시 기온이 38도까지 치솟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고 안 그래도 더위에 약한 짱구1에게 겨울나라에서 날아가 떨어진 여름나라는 아무래도 힘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짱구1의 짜증과 늘어짐은 우리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였고 중간중간 즐거운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그 이후 중간중간 짱구1이 호주에서 있었던 일,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본인이 본 신기한 광경들을 얘기할 때는 그래도 의미 없는 돈지랄은 아니었구나 위안 삼을 뿐이었다.

이 호주 여행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짱구1이 불쑥 “그때 고모랑 엄마랑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라고 얘기했다.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느끼냐고, 왜 그랬던 것 같냐고 했더니 “나는 그때 너무 더워서 기운이 너무 없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라고 답한다. 그래, 너도 처음 그렇게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듣고 처음 보는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긴장도 했을 텐데 날씨도 너무 더워서 힘들었겠지. 그런데 이제 자기가 힘들었다는 얘기보다 그래서 엄마랑 고모가 힘들었을 것을 먼저 생각할 만큼 많이 컸구나 생각하니 대견했다.


그러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이번 여행은 우리 둘이 (물론 이틀 후에 동생네 가족들이 제주에 여행을 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둘만의 여행은 단 이틀이지만) 하는 여행이고 내가 너의, 네가 나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도와줘야 하고, 나의 보호자로서 고모가 한 달 동안 살 숙소가 괜찮은지도 잘 봐줘야 한다고 부탁했다. 걱정 말라는 짱구1. 이제 내일을 위해서 자야 한다고 했더니 계속 설레어서 잠이 안 온다고 미소를 참지 못하는 짱구1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행복해졌다.


여행을 떠나는 당일 아침, 김포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아이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아 원체 흥이 없는 녀석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들려줬더니 앉아있는 엉덩이를 들썩이고 노래를 (작게 고모 귀에다 대고) 따라 부르고 난리였다.

근데 이때부터 이 녀석은 다른 녀석이 되어 버렸다.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힘들다 투정 부리지 않고 들고 옮기고 혼자서 알아서 다 한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롯데리아에서 주문 후 음식이 나왔을 때 벌떡 일어나 가서 음식을 찾아 아주 천천히, 사이다가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안전하게 올려놓았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숙소를 구경하는 것 같더니 “고모, 수압이 좀 약한 것 같은데?” “고모,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데 사장님한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챙겨준다. 여기서 심쿵 한방 맞았다. 이후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할 때도 셀프 반찬을 소중히 담아서 서빙을 하고, 마트에 장를 보러 갔더니 본인이 카트를 밀겠다고 하더니 내가 고르는 족족 자기가 알아서 카트에 차곡차곡 담고 집에 돌아올 때도 다 들어준다. 낑낑대면서.

아침으로 미역국을 먹자고 하면서 미역 두 줌만 물에 불려놓으라고 하니 눈도 떠지지 않은 상태로 주방에 가서 국그릇 두 군데에 나란히 한주먹씩 미역을 넣고 물을 담아놓았다. 계란 프라이를 위해서 계란을 깨서 프라이팬에 올려주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러 갈 때마다 자기가 들어서 날라 주었다.

바다에서 놀다가 예정에 없이 물에 빠져 세탁이 필요하게 되어 세탁실로 움직이려고 하다가 담아갈 바구니나 봉지가 없어 고민하니 자기가 나가서 알아보겠다며 펜션 카페로 가서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물어봐서 가져왔다며 세탁바구니를 들고  세탁물을 담고 낑낑대며 세탁실로 앞장을 서기도 했다.

심쿵을 여러 번 맞으며 이런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그리고 초3과 초5가 이렇게 다를 수 있냐며 남편에게 올케에게 카톡을 보내고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가 바닷가에 가서는 게 한 마리 잡겠다고 굴을 파고 또 파고, “고모, 제주도가 이렇게 좋았나?” “고모, 제주가 이렇게 예뻤었나?” “고모, 너무 즐거운데…”하면서 웃음이 끊이지가 않는다.  일주일만 지내고 보내는 게 안타까울 만큼 좋아하니 안타깝다. 하지만 나의 한 달 살기도 지켜야겠기에 그 마음을 꾹 눌러 담아 놓았다.


짱구야 사랑해. 고모랑 나중에 또 여행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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