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우 Sep 02. 2021

Going Grey, 몇 살이면 어색하지 않을까?

4N년차 여자 사람_백발은 몇 살부터?


아빠는 40대 중반부터 백발이셨다. 지금보다 염색약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원래 약한 아빠의 피부 탓이었는지 아빠는 염색을 하면 옻이 올라 가렵다며 그 젊은 나이에도 염색을 하지 않으셨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대학교 입학원서를 내러 아빠와 같이 서울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옛날이야기.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지 않았던 옛날에는 직접 입학원서를 가지고 대학교에 기간에 맞추어 방문해서 각 과 부스 앞에 줄을 서서 입학원서를 접수했다.) 앉아있던 분이 아빠한테 자리를 양보해 주던 장면이다. 그때 아빠 나이 47세, 지금의 나보다 두 살 많은 상태셨다. 그 대학들이 어땠는지, 입학원서 제출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의 감정이 어땠는지 등의 모든 기억은 전혀 없는데 아직도 그 기억은 생생히 각인되어 있다. 이건 엄마가 돋보기를 쓰고 계신 것을 처음 본 그날의 기억과 비슷한 것 같다.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잠시 회사를 쉬면서 휴식시간을 가지고 그동안 못했던 운동(수영)도 하고 그런 때가 있었다. 매일 보는 수영장 언니님들이 염색 얘기를 하시면서 30대 후반 들어서니까 어쩜 그렇게 흰머리가 확 생기냐며 모두 공감하시던 날이 있었다. 거울을 보고 있던 나는 그래도 아직 괜찮네 안심하며, 정말 여기서 1~2년 지난다고 확 생길까 하는 의심, 그리고 체질의 많은 부분을 아빠를 닮은 나라는 것을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즈음 남편은 내게 자꾸 머리를 잘라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하고 있었다. 스타일 변화 등을 얘기하면서… 예전에는 자르지 말라고 그러더니… 답변은 긴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청소담당인 자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라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더 그 의견을 들어주기가 싫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 남편에게 듣게 된 진짜 이유, 뒤통수 쪽에 긴 흰머리들이 이미 많이 자리를 잡아서 좀 짧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으나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겠어서 청소 핑계를 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났고, 난 5년 전부터 1 달반이나 2달에 한 번씩 뿌염을 하러 미용실을 찾고 있다. 나는 진짜 진짜 곰손이기도 하고, 내 머리카락이 뭐가 이상한지 처음 가는 미용실들은 유독 내 머리카락을 잘 태워먹는다. 그래서 한번 도전했다가 머리를 태워먹지 않는 미용실을 발견하면 거기가 비싸건 싸건 커트를 잘하건 말건 상관없이 계속 다닌다. 헤어 디자이너님이 없어지기 전까지… 사실 다니던 미용실의 디자이너 쌤이 이동을 하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지만 가르쳐 주질 않는다. 그러면 또 새로운 헤어쌤을 찾는 스트레스의 여정이 시작된다.

잠시 얘기가 빠졌지만, 그래서 매번 주기에 맞춰서 미용실을 방문하는 것이 너무너무 귀찮고 또 막상 가려면 시간이 잘 나질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집에서 염색을 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큰 불안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용실을 찾는다.

오늘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본 내 머리, 미용실 갈 시기가 좀 지나서 또 하얀 머리들이 많이 올라왔다. 염색을 안 하고 그대로 기르면 완전 백발까지는 아니지만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거의 1:1 비율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레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염색을 한다고 혹은 하지 않는다고  얼굴이 바뀌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흰머리가 많이 올라왔을 때는 너무 힘없어 보이고 우울한 얼굴이 염색을 하고 나면 갑자기 어려지고 밝아진  같아 보이는  마법을 아직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몇 살 정도가 되면 그레이 혹은 백발의 머리를 그대로 내놓아도 불편하지 않을까? 나이의 기준이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아직 40대 중반은 조금 이른 것 같다는 그냥 나 스스로의 기준으로 오늘도 나는 미용실을 예약했다.


언제쯤 나도 Going Grey를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Going grey의 좋은 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 가수 이은미]


작가의 이전글 조카바라기, 고모바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