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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Feb 27. 2020

청소동물 독수리와 농약중독

두 번이나 농약에 중독되어 결국 세상을 떠난 독수리

매년 겨울철이면 최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독수리나 흰꼬리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가 여지없이 구조되어 들어옵니다. 녀석들은 덩치도 크고,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유유히 비행하는 습성을 지녔기에 누군가의 눈에 띄기 쉽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하나같이 법정보호종에 속해 당장에 보호를 필요로 하는 멸종 위기 야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쏘아대는 총에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적 테두리를 한참이나 벗어난 야만적 행태지요. 녀석들을 위협하는 것은 밀렵만이 아닙니다.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에는 교각이나, 전깃줄, 풍력발전소의 날개와 같은 인공구조물에 부딪히곤 합니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즉각적인 회피 비행이 어려워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난 구조물을 미처 피하지 못하는 것이죠. 

대형 맹금류이자 대표적인 청소동물인 '독수리'


대형 맹금류는 종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죽은 동물의 사체도 곧잘 찾아먹는 청소동물입니다. 이들은 생태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사체가 오래 방치되면 부패하기 마련이죠. 이는 질병의 확산, 해충의 집단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독수리와 같은 청소동물이 나타나 사체를 소비한다면, 오염이나 질병의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로 이어지는 겁니다. 만약 이런 청소동물의 개체 수가 급감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다면, 우리는 보다 많은 질병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사람이 제공하는 가축 부산물을 먹기 위해 모여있는 독수리들과 차량과 충돌해 폐사한 고라니를 섭식하는 독수리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체를 먹는 청소동물에게는 '먹이원이 되는 폐사체가 과연 어떤 이유로 폐사했는가'가 녀석들의 생사를 결정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 됩니다. 만약 농약을 먹어 죽은 동물을 먹는다면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로 농약중독이 발생합니다. 또, 누군가가 쏜 납탄에 맞고 죽은 동물을 먹는다면 납중독으로 이어집니다. 농약중독과 납중독이 가지는 여러 차이가 있지만 소량만 섭취해도 문제가 발생하며, 쉽게 분해되지 않고 축적된다는 특징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 서식하는 더 많은 동물이 같은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치명적인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절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문제겠지요.


최근 충남 지역의 한 농경지에서 독수리 폐사체 2구를 포함해 총 11개체가 농약에 중독된 상태로 집단 조난된 채 발견되었는데, 쓰러져 있는 독수리들 중에는 유독 낯이 익은 개체가 있었습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녀석은 우리에게 'DJ'라 불리었던,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자연으로 돌려보냈던 그때 그 독수리였습니다. 기대와 바람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현장에 쓰러져있던 독수리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DJ'라는 인식표를 부착한 낯익은 녀석을 마주했다.


몽골에서 태어난 이 독수리는 2018년 9월 8일 독수리 연구자들에 의해 날개에 인식표인 윙택(Wing-Tag, DJ)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찾아오면서 월동지인 우리나라를 찾아옵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1월 28일에는 충남 서산에서 다른 2개체와 함께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침을 흘리며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녀석은 '농약중독'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사체(오리류)가 이미 농약에 오염되어 있었고, 이를 섭식하면서 연쇄적인 농약중독으로 이어진 것이었죠. 

오염된 사체를 먹었을 경우 최대한 빨리 체내에서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잔존물을 꺼내어보니 기러기류로 추정되는 사체를 먹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낭 내부에 잔존하는 먹이(오염원)를 모두 제거한 후 중독을 완화하는 조치를 시행해주었습니다. 다행히 빨리 발견되었고, 정도가 심하지 않았던 녀석은 구조되어 약 2주가 지나지 않은 2019년 2월 11일 건강을 완전하게 되찾아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겨울이 다 지나 번식지인 몽골로 돌아가기 전까지 여러 탐조가들에 의해 DJ가 잘 지내고 있음을 종종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1년이 흐른 지금 녀석이 쓰러진 채 피를 토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겁니다. 또다시 농약에 중독된 상태로 말이죠. 녀석의 안부를 이런 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쉬이 지우지 어려운 좌절감을 느낍니다. 

똑같은 사고를 두 번이나 겪으며 결국 세상을 떠난 녀석에게 감히 뭐라 말할 수 조차 없을만큼 미안함을 느낍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두 번 구조된 독수리 'DJ'는 끝내 농약중독에 의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엔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큰 위험에 두 번이나 운을 기대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농약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농경지에 잔존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동물을 살상하기 위해 농약을 뿌려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설마 싶겠지만, 실제로 야생 오리류를 잡아먹기 위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농약을 묻힌 볍씨를 다량 뿌려놓아 집단으로 폐사하는 사고가 발생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광범위한 농경지에 버려지는, 또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뿌려진 독극물이나 농약에 의한 오염을 사전에 예방하고 감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현재로썬 결국 개개인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사람의 의도적 행위에 따라 발생하는 사고는 그 해결책이 명료하지만 다른 어떤 원인보다 해결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독수리의 겨울은 춥고, 배고프고 또 배아픈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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