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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이쌤 Jul 09. 2020

차 마시는 여인의 여유

아침마다 투쟁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울리자마자 손은 자동으로 핸드폰으로 향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올려 시간을 확인한 나는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아, 더 자고 싶다. 5분만 더 잘까? 6시까지 좀 더 누워있을까?

그래. 지금 32분이니까 40분에 일어나자.'

이상하게 5분, 10분 간격이 맞지 않는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그 단위를 맞추고 싶다.

'그래, 10분만 잠깐 누워 있다가 40분에 일어나자. 너무 힘들다.'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눈은 다시 감기고, 잠시 감았다 눈을 떴을 뿐인데 시간은 한 시간 넘게 훌쩍 지나 7시가 었다.     

다시 나는 생각한다.

'아.. 잠들었었네. 7시가 넘었네.

오늘 새벽 기상은 글렀지만 일어나야지.'

하지만 나의 눈은 다시 감긴다.     


매일 아침 나는 일어나는 시간이 참 힘들다.     

왜 나는 미라클 모닝을 해내려고 이렇게 애쓰는 걸까?     


왜 꼭 해야 하는데?


그러게? 나는 왜 꼭 새벽에 일어나려 하는 거지?

알람을 끄고 버티고 버틸 때까지 누워 있다가 일어나긴 했지만, 그 시간은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시킬 수 있는 나의 최대 마지노선과 같은 시간이기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침시간이 분주하긴 했지만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출근 준비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왜 새벽 기상을 못하면서, 매일 스트레스받으면서도 어떤 이유로 계속하려 하는 걸까?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왜 알람에 눈이 떠졌음에도 안 일어나는 걸까?     

생각해보니,

아이가 잠들어 있는 아침시간의 고요함이 참 평온했다.

그 시간을 깨고 싶지 않고 그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 즐기고 싶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순간부터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침의 평화를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함께 숨 쉬고 살결이 닿게 누워있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에 그동안 일어나지 못했던 것 이었다.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여유 있게 차를 마시는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나를 반성하게 한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차 마시는 여인>, 1735년

부스스 세수도 하지 못하고 테이블에 앉아 숙제하듯 공부하고 책 읽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림 속 여인처럼 옷을 갖춰 입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예쁜 찻잔을 들고 아침시간의 여유를 느끼고 싶었다.     

기상에 대한 잘못된 습관의 관성으로 매일 아침 나는 투쟁한다.

그래서 가끔 새벽 기상에 성공해서 꿈꿔왔던 미라클 모닝을 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독서를 잠깐 하고, 정보를 찾고, 공부를 하고, 하루를 준비하는데 그 여유로움이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생체리듬도 다르고 생활패턴도 다르다. 나는 하루 7시간은 넉넉하게 자야 눈이 떠진다. 늦게 잠이 들면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잠든 순간부터 7시간을 세고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새벽 기상은 힘들기만 하다.    

 

저 그림 속 여인의 미소를 보라.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삶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아침 기상에 승리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참으로 부러운 미소다.

저 여인처럼 나도 웃는 그날을 상상하며 내일 새벽 기상을 다시 다짐해 본다.


새벽 기상 후 부스스한 모습이 아닌 옷을 갖춰 입고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날이 꼭 올 것이라 생각한다.


차 한잔 마시는 여인의 여유를 내일 아침에는 꼭 누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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