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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아이디어의 공통점 5가지

아이디어는 많은데, 왜 자꾸 서비스까지 못 가는지에 대하여

by 제나로

서비스 기획 일을 하다 보면,
“새 서비스 아이디어가 있는데 한 번 봐주시겠어요?”
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AI의 발전으로 '메이킹' 의 허들이 많이 낮아졌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많은 것들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십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요즘은 1인 창업자나 강사, 크리에이터 분들까지.. 환경은 다 다른데, 신기하게도(?) 이건 안 되겠다 싶은 아이디어 패턴은 거의 똑같이 반복됩니다.


제가 현업에서 반복해서 봐온 '안 되는 아이디어의 전형적인 공통점' 을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혹시 구상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머릿속에 떠올려놓고, 여기에 해당되는지 한 번씩 대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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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해주는 앱이요

첫 번째는 기능부터 들이밀 때 입니다. “AI로 요약해주는 앱이요”, “챗봇으로 상담해주는 서비스요”, “푸시 알림으로 알려주는 서비스요” 같은 이야기에요. 듣고 있으면 전부 기능 이야기 입니다. 정작 중요한 누가, 언제, 왜 이걸 쓰는지는 빠져 있죠.


서비스는 보통 문제, 상황, 사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단계는 스킵해버리고, 어떤 기능을 붙이면 멋있어 보일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아이디어를 설명할 때, 기능 이름을 빼고도 설명이 되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에서의, 어떤 답답함을 해결해주고 싶다. 여기까지 말이 안 나오면, 그 아이디어는 아직 기획의 출발선에 서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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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깃이 모두일 때

두 번째는 "남녀노소 누구나, 20~50대 직장인 전체" 를 타깃으로 하는 패턴입니다. “20대부터 50대 직장인 모두가 대상이에요”,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쓰는 서비스로...” 라고 말하면 멋있어 보일 지 몰라도... 아무도 제대로 타깃이 아니다라는 말과 거의 같습니다.


타깃이 넓을수록 좋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구체적이지 않으면 어떤 기능을 먼저 넣어야 할지, 어떤 말투와 어떤 화면 구조로 보여줘야 할지, 심지어는 어떤 가격대를 잡아야 할지 모든 것이 다 애매해집니다.


내가 이 서비스를 설명할 때, 딱 떠오르는 실제 인물 한 명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단 한명도 떠오르지 않고, 대충 이런 사람들이라는 뭉뚱그린 그림만 있으면, 그 아이디어는 아직 너무 넓게 풀려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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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뭘 하다가 이걸 켤까?

세 번째는 장면이 안 보일 때 입니다. 자기계발 앱, 관계개선 플랫폼, 마음 건강 서비스... 다 가능성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말만 듣고 있으면, 유저가 실제로 언제 어디서 뭘 하다가 이 서비스를 켤지 장면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까지 말이 되어야 합니다.

밤 11시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 끄고 '오늘 하루는 뭐했지?' 생각날 때

퇴근길 지하철에서, 인스타 스크롤 내리다가 갑자기 불안해질 때


이정도의 시점과 상황이 함께 떠오르면 그제서야 첫 화면에 뭐가 보여야 할지, 어떤 버튼을 먼저 보여줘야 할지, 어떤 플로우를 따라가야 자연스러운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사용자가 앱을 여는 하루의 순간을 한 장면으로 그려보세요. 그게 안 보이면, 아직 아이디어 단계에서 더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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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걸 매일 돌릴 거죠?

네 번째는 운영에 대한 감각이 아예 없는 경우입니다. '매일 엄선한 콘텐츠를 보내주는 서비스', '전문가가 일대일로 피드백을 계속 보내주는 플랫폼', '유저가 올린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속 학습하는 AI 서비스' 같은 것들이 있겠는데요. 아이디어만 보시면 멋있죠? 그런데 이걸 혼자, 혹은 두세명이서 6개월~1년 운영한다고 생각해 보시면 바로 현실감이 사라집니다.


콘텐츠를 매일 큐레이션한다고 했을 때 그걸 누가, 몇시에, 어떤 기준으로 고를 건지, 그 사람이 아프거나 바쁠 때는 어떻게 할지 같은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전문가가 피드백을 해준다고 하면 그 전문가들은 왜 여기 와서 시간을 써야 하는지, 그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 구조를 줄 건지를 고민해야 하고요.


아이디어가 그럴듯하다고 해서 내 시간과 체력, 돈까지 자동으로 따라오는 건 아닙니다. '이 서비스가 잘 돼서 사용자 1,000명이 쓴다' 라고 가정했을 때, 그때 내가 하루에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을 글로 한번 적어보세요. 이걸 6개월 동안 버틸 수 있겠다면 계속 가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디어를 줄이거나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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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좋다고 했어요

마지막은 이겁니다. “주변에 보여줬더니 다들 좋다고 했어요”, “친구들이 나오면 무조건 쓴다고 했어요”, “지인 대표님도 아이템 좋다고 하셨어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돈 내겠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에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좋다고 말합니다. 돈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런 리액션은, 감사하지만, 호의일 뿐이지 수요의 증거는 아닙니다.


지금 이 서비스에 당장 소액이라도 결제하겠다는 사람, 무료라도 진짜 써보겠다고 연락 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나요? 이 한 명도 없다면, 아직 시장에서 검증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인들의 좋다는 말은 감사하게 듣되, 그걸 근거로 개발비를 수백만~수천만 원 쓰는 건 기획자가 보기엔 꽤 위험한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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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문제인지 먼저 찾아보자

정리해보면, 안 되는 아이디어는 보통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기능부터 말하고 있고

타깃은 모두고

실제 장면은 안 보이고

운영은 현실성이 없고

검증은 지인 리액션뿐인 상태


아이디어 자체가 별로라서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 다섯 가지가 뒤엉켜 있어서 어디부터 손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 다섯 가지를 하나씩 대입해 보세요.


나는 기능부터 말하고 있지 않은가

구체적인 한 사람 얼굴이 떠오르는가

그 사람이 이 서비스를 켤 하루의 순간이 그려지는가

이게 잘 됐을 때, 내가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인 말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디어는 꽤 많이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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