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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선 Jan 09. 2024

인도인이 말하는 친구란

고자질쟁이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현지 직원이 들어와 타부서 직원을 험담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별일도 아니었다. 굳이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작은 일이었다. 그 직원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졌다. 두 직원이 평소에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나에게 와서 고자질하는 직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도인은 원래 그런가? 이 친구의 진짜 마음은 어떤 건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뭔 말인지는 알겠어. 근데 내가 보기에는 별일도 아닌데 굳이 얘기하는 이유가 뭐야? 둘이 친하잖아.”

“일이니까 같이 하는 거지. 그렇게 친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사람 잘못하는 게 많아요.”

“싫어하는 거야? 둘이 말도 많이 하고 잘 지내잖아.”

“같은 사무실에 있으니까 말하는 거죠.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아요.”

“암튼 알았어. 이 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


직원의 고자질을 보면서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학창시절에 나쁜 일을 저지른 친구를 선생님께 알린 적이 있다. 당연히 선생님은 그 아이를 혼내고 벌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에게도 벌을 주셨다. 잘못을 알린 것이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잘못한 것도 없는 내가 벌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얘기하셨다.


“잘못한 것도 나쁘지만, 고자질한 것도 나쁜 거야. 선생님께 얘기하지 말고 친구를 잘 설득했어야지.”


나는 선생님 얘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끼리 잘 해결할 수 있었으면 선생님께 얘기하지 않았다. 고자질이 아니고 선생님께 잘못을 바로잡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것인데 뭘 잘못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도 직원의 모습을 보니,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직원에게는 크고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치 내가 학창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큰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듯, 당시의 선생님도 그랬을 것이다. 당시의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것보다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직원의 고자질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왜 고자질을 했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융통성 vs 원칙

인도인들과 일을 하다 보면 자신만 챙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직장 동료가 어려움에 부닥쳐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기 전까지는 알아서 도와주지 않는다. 


거래처에 문제가 생겨 찾아가면 답답할 때가 많다. 품질팀에서 제시한 문제에 대해 생산관리팀에서 조금만 신경 쓰거나, 작은 설정을 변경하거나, 아니면 개발팀에서 도면만 조금 수정해줘도 쉽게 해결될 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품질팀은 그들의 원칙을 고수해 문제를 제시하고 생산관리팀, 개발팀은 도면에는 이상 없다는 말만 한다. 그럴 때는 직접 각 부서를 찾아다니며 최대한 간편하게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공차(제품 사이즈 편차의 허용 범위)로 품질팀에서 문제를 지적하면 개발팀에 가서 해당 부분은 공차를 좀 더 여유 있게 해도 문제가 없으니 도면 수정을 요청한다. 아니면 생산관리팀에 가서 가공 치수를 낮추거나 높여 도면에 맞게 세팅한다. 

내가 보기에는 문제 삼을 것도 아니고 어느 한 부서에서 조금만 수정하면 된다. 하지만 인도인은 그런 요청을 하지 않을뿐더러 막상 한다고 해도 잘 들어주지 않는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한국인만의 융통성 때문이었다. 반대로 인도인이 타부서에 요청하지 않는 이유는 원칙을 고수하고 자신의 룰에 따라 일하는 방식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저렇게 정이 없지? 너무 자기만 생각하는 거 아니야? 같이 일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나?” 한국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인의 생각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인도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고 특성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고, 잘못이 아닌 다름이다. 수십 수백 년간 이어진 생활 환경이 문화를 만들고 사회마다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문화에는 다름이 있을 뿐이지 옳고 그름은 없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정’의 문화

대한민국 사람이 인도인의 특성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만의 문화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인도의 문화가 특이한 만큼 우리나라의 문화도 특이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그때 들었던 얘기 중에 지금도 기억하는 말이 있다. “그림 그리다 배곯아 죽는다.” 화가의 꿈을 접고 기타리스트를 꿈꿨을 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딴따라 하다가 굶어 죽는다. 돈 버는 직업을 해야지.” 지금의 세대에게는 그저 비유처럼 들리는 ‘굶어 죽는다.’라는 말이 이전 세대에게는 빈말이 아니었다. 마치 ‘밤사이 안녕하셨습니까?’라는 가슴 아픈 질문이 인사말이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부모, 조부모 세대에게 가장 우선시 되었던 건 생존이었다. 일제 치하를 겪고, 전쟁을 겪고, 전쟁 후 피폐해진 한국에서 가장 우선한 문제는 생존 자체였다. 노력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세상을 살았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굶어 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잘살아야 했다. 비록 자신은 힘든 삶을 살더라도, 자손은 잘살아야 했다. 우리의 부모, 조부모 세대의 마음속에는 생존과 ‘지금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이들만큼은 배곯지 않기를 바랐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안정을 찾고 싶던 바람이 문화가 된 것이다. 


당시 생존의 문제는 일부 지역이나 가족이 아닌 국가 전반의 문제였고, 대부분 국민이 고달픈 삶을 살았다. 자신이 겪은 전쟁의 폐허 속의 비참한 삶을 다음 세대에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 전반이 바뀌어야 가능했다. 다음 세대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족 확장형의 문화를 만들었다. 내 가족이 아닌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잘 살기를 바라는 열망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다음 세대가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가족 확장성의 문화는 ‘정’이라는 독특한 코드를 만들었다. 전 세계 어느 사전에도 없는 정이라는 문화는 소속 집단을 가족으로 보는 문화에서 기인한다. 


식당에 가서 종업원을 부를 때 이렇게 얘기한다. “이모님, 저희 반찬 좀 더 주세요.” 아이에게 친한 친구를 소개할 때 뭐라고 하는가? “인사해. 이모야.” 친구에게 엄마 얘기를 할 때 뭐라고 하는가? “우리 엄마는~” 이런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다. 우리 엄마를 영어로 하면 our mother이다. ‘우리들의 엄마?’ 말이 안 된다.


욕쟁이 할머니 집이 인기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집에 가면 욕을 먹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욕을 하는 할머니 마음 속에는 가족처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욕보다 할머니의 마음이 중요하고, 정에서 나온 욕은 상처가 되지 않는다. 걱정해주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문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찌 보면 조직 구성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우리의 문화가 더 이상하다. 


한국의 가치 변화, 안정에서 만족으로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세대는 어떤 가치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는 이전 세대와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생존에 위협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생존의 가치와 안정의 가치는 지금 세대에게는 멀어져가는 얘기가 된 것이다. 이제는 안정보다 만족의 가치로 넘어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생존에 대한 걱정이 낮아지면서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향해 가치가 이동하고 있다. 지금 세대에게 가족 같은 회사는 더 이상 와닿지 않는다. 지금 세대는 왜 회사를 가족같이 생각하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가 성숙하고 물질적 풍요가 채워지니 사회적 발전에 신경을 덜 써도 된다.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깔린 것이다. 이제는 사회보다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시점, K-POP 문화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넘어가는 시점,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 1위에 올라서고 있는 시점이다. 가족 같은 사회의 관점이 아닌, 개인의 존재가 중요해진 시점, 우리가 지금부터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철학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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